[엘르보이스]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죽음

모든 커리어의 목표에 '죽지 않기'가 포함되어야 할까?

 
 

죽지 않는 커리어

 
황정은의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읽다가 책장을 덮은 적 있다. 공장에서 톱니바퀴에 말려드는 사고를 당한 남편의 마지막을 상상하는 장면이었다. “그 회전. 빈틈없는 그 모든 회전 사이에 너희 아버지가 있었던 거야. 처음엔 작은 모서리 하나였겠지. (…) 뭔가가 그를 낚아챘겠지. 시작은 그렇게 작은 것이었을 거야. 그렇게 말려들었겠지. 그리고 그 뒤엔 더 크고 더 단단하고 더 좁고 더 정교한 것들뿐이었겠지. 어, 할 새가 있었을까? 어, 할 새도 없었을까? 누구도 모르지.”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laborhell_korea)’이라는 트위터 계정을 팔로하고 있다. 그 장면을 묘사하는 데 두 페이지 넘게 할애한 소설과 달리 이곳에 기록된 죽음은 훨씬 짧고 간단하다. 계정에 따르면 오늘(7월 13일)은 울산조선소와 부산 기장군의 음식물 폐기물 처리 업체에서, 7월 10일에는 평창군 도로 공사현장과 공주시 시멘트 공장에서, 9일에는 부산 사하구와 해운대구의 공장 그리고 제주도 건물 공사현장에서, 8일에는 전북 장수군에서 사망 소식이 올라왔다.
 
거의 매일 올라오는 트윗을 볼 때면 당연히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내가 사는 서울과는 물리적 거리가 먼 곳에서 벌어진, 낯선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죽음이 어쩔 수 없이 머나먼 일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크레인 추락 사고로 세상을 떠난 친구의 영혼이 안은영(정유미)을 찾아온 에피소드를 펑펑 울며 본 뒤 이내 잊어버리는 감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그래서일까? 지난 6월 26일 서울대 기숙사 내 청소 노동자 휴게실에서 50대 여성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보고 충격에 빠졌다. 서울 소재 대학에서 일어난 일이라서? 노동자가 여성이라서? 솔직히 말하면 피해자의 이력 때문이었다. 신문사 기자로 16년을 근속한 뒤 남편과 함께 세네갈에서 15년간 NGO 활동을 하고, 귀국 후에는 도서관 사서로도 근무했던, 아주 공감할 수 있고 심지어 선망 가능한 커리어를 가졌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학교 측에서 미화원들에게 ‘관악학생생활관’을 한자와 영문으로 쓰는 시험을 보게 했다는 것을 강조한 기사 탓도 있겠지만, 청소 노동자는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안의 편견까지 낱낱이 들춰진 기분이었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분이 자신의 이력과 상관없는 노동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편 생각할수록  당연한 일이었다. 이른바 100세 시대. 집값이 수억 원 올랐거나, 로또에 당첨됐거나, 상당한 월세나 주식배당금 같은 정기 수익이 없는 이상 돈은 계속 벌어야 한다. 지금 사회는 70대도 ‘정정하다’고 하니까. 대기업 퇴직자의 희망 직업 1순위가 아파트 경비원이라거나 개발자의 최종 정착지가 치킨집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뼈 있는 농담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나는 아닐 거라고 여겼던 미래가 ‘훅’ 하고 다가온 느낌이었다.
 
주말 출근을 해야 했던 7월 3일 토요일에는 도로가 유난히 막혔다. 택시 기사는 집회 때문이라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다들 힘든데 월급 올려달라는 거냐. 저런 놈들은 다 죽여버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날 민주노총집회의 중요 요구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개정하자는 것이었다. 일하다 죽지 않게 해달라고 나온 사람들에게 죽어버리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주말에 차를 끌고 일하러 나온 기사님도 만약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 계정을 팔로했다면 그 집회에 그렇게 적대적이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미디어는 더 이상 평범하거나 궁핍한 삶을 보여주지 않는다. 갓 독립한 연예인의 한강 뷰 아파트나 근사한 드레스 룸이 있고 멋진 전원 라이프를 즐기는 모습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회사 메일 주소를 인증해야 하는 가입 절차 때문에 ‘썩 괜찮다’는 직장에 다니는 이들이 모여들게 된 직장인 앱 ‘블라인드’ 자유게시판은 그날그날의 비트코인이나 코스피 지수에 따라 요동친다. 금융회사, IT 회사, 공기업에서 벌어진 온갖 사건이 내밀하게 공유되지만 그 밖의 삶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물론 모두가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에 충실한 것은 온당하다. 나 또한 어떻게 하면 지금 일을 더 잘할 수 있을지, 커리어를 점프시키기 위해 뭘 배우면 좋을지가 일의 주된 고민이다. 당연하다. 지금 세상은 젊거나 성공한, 매끈한 삶만 이야기하니까. 내가 ‘더 넓은 시야’를 갖겠다며 읽고 보는 콘텐츠를 만든 사람 모두 성공적인 커리어를 (현재까지는) 영위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생각한다. 그렇기에 어느 순간부터 삭제된, 듬성듬성 보여지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구간을 일부러라도 찾아나서야 한다고. 그렇게 다른 사람의 삶을 기꺼이 상상하고, 그 삶이 내 삶과 분리돼 있지 않음을 마음 깊이 공감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일하다 죽지 않는 커리어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마루 〈엘르〉 피처 에디터. 지방 도시 출신으로, 세상이 말하는 수도권 기준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풍경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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