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가족이면 다야? 정상성을 탈출한 여자들

가족과 연끊기, 이혼하기. 가족의 범주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신을 찾은 여자들에 대한 책. #출구총서

 
 

가정의 달에는 가족 탈출!  

 
가족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는 일은 어렵다. 집에서 어떤 일을 당했고 어떤 좌절을 겪었든, 특히 성인이 부모 욕을 하는 것은 제 얼굴에 침 뱉기로 여겨진다. 그렇다 보니 스트레스의 원인인 가족 그 자체를 문제로 삼고 해결을 모색하기보다 ‘좋게 좋게’ 생각하기 위해 노력하거나(그래도 이럴 땐 잘해주니까) 스스로를 탓하는(내가 좀 더 참을걸, 좀 더 살갑게 말할걸) 쪽이 맘 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날로 가족주의가 약해진다는 현대에도 여전히 가족은 성역이며, 부대낌 끝에 얻는 관계성이 아름답다는 관념은 건재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 많은 사람이 ‘가족 때문에’ 병든 채 살아간다. 알코올 의존증, 거식증, 공황장애 등 다양한 정신질환을 다룬 책이 환자들의 공통분모를 찾은 결과, 〈병명은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상징적인 경우도 있다. 많은 이가 가족을 평생의 짐처럼 짊어지고 산다. 서로를 사기 고소하고 폭행하고 성 착취하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 정신마저 앓게 만드는 친족 간 폭력은 가까운 만큼, 끊기 어려운 만큼 많은 이에게 무시무시한 상흔을 남긴다.
 
때문에 ‘그래도 가족이잖아’라는 말은 가혹하다. 핏줄로 얽혔다며 사람들을 한 꾸러미로 묶어놓고 어떻게든 끝까지 부둥켜 살아보라는 이 사회의 주문은 특히 구성원 중에서 가장 ‘약자’에게 불리하게 마련이며, 사회가 가정에 안배한 대표적 희생양은 여성이 되기 일쑤다. 맞는 아내, 구박받는 며느리, 가스라이팅당하는 딸이 ‘그럼에도 네 가족을 사랑하려 노력하라’ ‘너만 참으면 된다’는 메시지에 포위당한 채 평생을 산다. 여자들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가족을 끊어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올해 첫 선보인 에세이 시리즈 ‘출구 총서’는 스스로 탈출해 자기 삶을 되찾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펴내자는 기획에서 시작했다. 첫 권은 ‘탈가족’(〈죽으려고 살기를 그만두었다〉)을, 두 번째 권은 ‘탈혼’(〈결혼 탈출〉)을 이야기한다. 〈죽으려고 살기를 그만두었다〉는 가족과 관계를 끊고서야 죽을 생각으로 살기를 그만두고 살 생각으로 살 수 있게 된 여자의 이야기다. 저자는 신용카드 한 장 들고 집을 뛰쳐나왔다. 어떻게든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보려 애쓰기를 멈춘 뒤, 그는 생애를 뒤덮고 있던 불행감을 비로소 끝낼 수 있었다. 〈결혼 탈출〉은 말 그대로 결혼에서 벗어나는 여자의 이야기다. 그의 이야기에 ‘이혼’보다 ‘탈혼’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이유는 저자가 겪은 결혼 탈출의 실상이 서류에 도장을 찍고 배우자와 갈라서는 것 이상으로, 결혼한 여자로 사는 동안의 다양한 심리 상태, 두려움, 자기혐오, 우울 등 모든 자기파괴적 감각에서 마침내 빠져나오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책을 만들며 편집자로서 원고를 반복해 읽는 동안 거듭 나를 섬뜩하게 한 것은 저자가 겪는 개별적 사건보다 온갖 국면에서 오직 그 한 사람만이 너무 많은 노력을 한다는 점이었다. 〈결혼 탈출〉의 맹장미 작가는 믿고 좋아하던 오랜 연인과 결혼 후 빠르게 모든 신뢰를 잃기까지, 지지 않아도 될 책임을 지고 모든 것을 홀로 감수한다. 짧지만 극적인 그의 결혼 이야기에서 저자가 겪는 감정과 결정들은 바닥 없는 수렁에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용기를 털어넣는 일처럼 보였다. 그의 고독한 분투는 너무 ‘현실적’이라는 점에서 공포였다. 비행을 저지르는 사람이 따로 있고 책임과 고통을 지는 사람이 또 따로 있다. 어떤 관계도 이리 일방적으로 돌아가선 안 될 텐데, 이미 오만 형태의 가족에서 여자들이 그렇게 사는 이야기를 나는 잔뜩 안다. 감정노동, 가사노동, 돌봄노동을 살뜰히 해내며 가정을 지키는 과업을 혼자만의 십자가처럼 짊어지는 수많은 여성을 떠올렸다.
 
저자들은 십자가를 지는 대신 탈출을 택했다. 그리고 자기 삶을 찾았다. 하지만 탈출이 해피 엔딩을 약속하지는 않는다. 탈출이 옳은 결정이었다고 확신을 담아 말하는 것과 별개로 사회에서 이 여자들은 축복보다 비난받기 쉽다. 가족과 사랑을 뒤로한 여자는 매정하고 이기적이며 문제가 있다는 손가락질과 동시에 자기검열에 시달릴 것이다. 그렇기에 오직 자신을 위해 탈출구를 찾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필요하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라며 공평한 불행으로 불공정한 착취를 넘기지 않는 서로의 존재만이 또 다른 여성의 출구를 열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은 더 이상 ‘몇 살에 졸업, 몇 살에 결혼, 몇 살에 첫 출산’ 같은 식으로 줄 세워지지 않는다. 여성의 직업적 생존, 연애 불가능성, 비혼과 탈혼은 점차 넓혀지는 화두다. 각자가 이런 변화 속에서 제 살길을 창조하고 있다. 〈죽으려고 살기를 그만두었다〉의 허새로미 작가는 초고를 보내면서 ‘엄마 욕이 지나치지 않은지’ 봐달라고 요청했다. 가족을 떠나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가진 저자조차 가족이라는 성역을 부정하는 글이 세간에 얼마나 불손하고 유난하게 비칠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가족 경험이 결코 어떤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은 출간 후 많은 독자가 보낸 단단한 공감의 말들로써 증명됐다. 가족은 여러 숭고한 미담을 낳지만 사랑과 인내라는 말로 포장된, 특히나 여성을 착취해 온 대표 온상이기도 하다. 시리즈가 나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밀도 높은 서평을 읽으며 다시금 확인했다. 제 삶을 찾아가는 이 이야기들이 여성을 십자가에서 구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두루 출판사 ‘봄알람’ 대표. 베스트셀러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와 〈김지은입니다〉 등을 펴냈다. 현실 이슈를 다룬 텍스트와 논의가 여성의 삶에 즉각적으로 개입하는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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