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의구심을 가득 안고 주변의 방송 관계자나 비슷한 일을 하는 이들에게 질문을 던지면 늘 돌아오는 답이 있다. 전문성을 가진 여성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답을 들을 때마다 나 또한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전문성을 가진 여성이 정말 그렇게 부족한가? 혹시 아무 문제의식 없이 눈에 보이는 전문가들을 섭외하는 기획자의 게으름이 진짜 문제는 아닐까? 미디어 스타트업 디퍼(Deeper)가 컨퍼런스에 여성 강연자의 숫자가 현저하게 적은 것에 문제의식을 갖고 진행했던 인터뷰에서 한 기획자는 “검증이 안 된 여성 스피커들을 무대에 세우는 리스크보다 검증된 전문가로 양질의 무대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얘기했다. 대체 누가 검증한다는 것인지 의아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검증받을 수 있는 무대가 애초에 여성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문제를 간과한 답변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력 있는 신입사원을 찾는다’는 말과 뭐가 다른지? 애초에 이미 무대에 섰던 소수의 남성에게 검증에 통과했다는 자격을 준다면 그 이후의 시도는 비슷한 사람들로 이뤄진 뻔한 무대를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뿐이다. 지금은 자신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여성을 발굴하고 무대에 세우는 모험을 감행해야 할 때다. 앞으로는 이 모험이 기획자의 전문성이자 그 능력을 ‘검증’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이런 시도가 더 나은 콘텐츠를 만들게 할 뿐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가 가득한 사회를 만드는 토대가 될 것이라 믿는다.
올해는 한쪽 성별로 가득 찬 무대를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문제의식을 갖는 기획자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무엇보다 여성들 또한 ‘여성에게 좋은 제안을 하고, 좋은 제안을 받으면 덜 망설이고 수락하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우리가 하는 모든 작은 실천과 도전이 세계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라는 마음으로,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만드는 데 내가 참여한다는 책임감을 가지자는 의미다. 우리의 목소리가 담긴 콘텐츠, 우리가 올라선 무대를 통해 세상은 더 많은 여성의 이야기를 가지게 될 테니 말이다. 멋진 제안과 흔쾌한 ‘예스!’가 난무하는 한 해가 되길.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더 많은 곳에서 더 자주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이보다 더 2020년다운 풍경은 없을 것이다.
writer 홍진아
밀레니얼 여성들의 일과 삶을 위한 커뮤니티 서비스 ‘빌라선샤인’ 대표. 8명의 여성 창업가를 인터뷰한 〈나는 오늘도 내가 만든 일터로 출근합니다〉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