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을 살아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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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만 둘인 우리 엄마와 아들만 둘인 시어머니는 열 살 차이가 난다. 직업과 인생 경로는 물론 성격, 취향, 관심사 모든 면에서 겹치는 구석 하나 없는 두 사람의 공통점을 처음 발견한 건 시어머니의 책꽂이에서였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비롯해 박완서 작가의 소설집과 산문집 몇 권이 가지런히 꽂힌 모습이 어쩐지 낯익었다. 우리가 자라는 동안 세계문학전집이나 한국 근현대소설 단편선 등 수능과 논술시험에 도움될 만한 책 외에는 들여놓는 법이 없던 엄마가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사온 몇 권 안 되는 책들이 거기에도 있었다. 요즘처럼 인터넷 서점에서 간단히 책을 주문할 수 없던 시절, 번화가의 서점까지 나가 박완서의 책을 집어 계산한 뒤 집으로 가져와 집안일 하는 틈틈이 혹은 식구들이 제각기 할 일을 하거나 잠든 뒤에야 책장을 넘겼을 두 여자를 떠올리며 나는 적잖게 궁금해졌다. 한국 여성들에게 박완서라는 사람은, 그의 글을 읽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서울대 도서관에서 박완서 작가의 아카이브 조성 기념전이 열린다는 소식에 가슴이 설렌 건 그 때문이었다. 요즘 들어 먼 거리 외출을 부쩍 힘들어하는 엄마, 먼 지역에 사는 시어머니와 함께 갈 수는 없지만 봄이 다 가버리기 전에 친구와 길을 나섰다. 전시장 초입에서 눈길을 끈 것은 ‘500년을 산 작가’라는 문구였다. 1931년에 태어나 2011년 세상을 떠난 그가, 65세가 되던 1996년 어느 대담에서 ‘500년은 산 것 같다’고 회고한 데서 따온 말이다. 예전이라면 이해하지 못했을 말에 직관적으로 공감할 수 있다는 건 나도 나이를 먹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에 이어 AI에 대한 얘기도 따라가지 못해 덜컥 겁이 날 때마다 나는 70대 부모님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전에 태어나 한국전쟁으로 굶주리는 어린 시절을 보낸 아빠가 ‘국뽕’ 유튜브 영상에 감동하는 노인이 되는 동안, 십 리 길 산을 넘어 기차를 타고 통학하며 ‘단추를 누르면 앞으로 가는 신발이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엄마가 전동 킥보드와 카카오택시 시대까지 살아오면서 한국사회는 그야말로 ‘압축적 근대화’를 겪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박완서 작가 역시 개인이 감당하고 적응하기엔 너무나 크고 빠르고 잦았을 변화와 충격을 온몸으로 통과하며 500년처럼 느껴지는 삶에 대해 쓰고 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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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1970년, 다섯 아이를 낳아 키우는 틈틈이 어두운 방에서 혼자 엎드려 쓴 장편소설 <나목>으로 나이 마흔에 등단했다는 사실은 많은 여성에게 여전히 신화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일종의 위안이나 희망이 되기도 한다. 진열장 안의 빛바랜 잡지 당선 소감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그 글을 쓸 동안 조금 고단하고 많이 행복했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림하고 아이를 키우는 주부가 글을 쓴다는 것은 아마도 바로 그런 일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순간, 문득 엄마와 시어머니의 또 다른 공통점이 떠올랐다.
오래전, 안방 문갑 서랍에서 부치지 못한 편지를 발견한 적 있다. 엄마가 좋아했던 또 한 사람의 작가, 고(故) 김수미 배우의 수필집을 읽고 쓴 감상문이었다. 군산 동향이자 동년배였던 그의 이야기에 울고 웃으며 특별히 예쁜 편지지를 골라 정성껏 쓴 편지를 엄마는 어디에 보내야 할지 몰라 그냥 간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몇 년 전, 대학원 과제로 시어머니를 인터뷰할 때, 어머님은 예전에 이런 걸 쓴 적 있다며 낡은 편지 한 통을 수줍게 꺼내 오셨다. 라디오 프로그램 <여성시대>에 보내려던 사연이었다. 그 후 나는 가끔 부치지 못한, 그러나 완성된 두 통의 편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 편지들의 의미가 선명해진 것은 박완서 작가를 통해서였다. 오랫동안 주부로 살며 가계부가 아니면 무언가를 적을 일이 없지만, 생활의 부대낌에서 잠시 벗어나 가슴속 깊은 이야기를 글로 썼던 그때, 두 사람은 분명 조금 고단하면서도 오롯한 설렘과 행복을 느꼈을 것이다.
박완서 작가의 수많은 저작과 육필 원고, 인터뷰, 연재 당시의 삽화, 당대의 사회상을 파악할 수 있는 사료들을 찬찬히 둘러본 뒤, 마지막으로 박완서 작가의 서재를 보존해 옮겨온 공간을 찾았다. 등단 후 15년이 지나서야 들여놓고 평생 바꾸지 않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책상에는 누구나 쓸 수 있는 방명록이 놓여 있었다. 다양한 연령대와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이미 세상에 없는 작가를 향해 쓴 편지에는 진심 어린 고백과 다짐으로 가득했다. 그 가운데 ‘삶을 사랑하기엔 너무 혼란스러운 세상이지만 작가님의 글을 보며 사랑이라는 걸 다시 생각하고 있습니다’라는 누군가의 글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500년 중 한 조각을 마음에 담은 기분이었다.
Writer
최지은
10년 넘게 대중문화 웹 매거진에서 일했다. 〈괜찮지 않습니다〉와 딩크 여성들의 삶을 인터뷰한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를 펴냈다. 늘 행복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재미있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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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전혜진
- 글 최지은
- 아트 디자이너 민홍주
- 디지털 디자이너 민경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