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만난 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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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있다. 빼삐와 랑이. 둘은 인간들의 결정으로 어느 날부터 갑자기 함께 살게 됐다. 친구가 데려온 빼삐는 검은색 턱시도 고양이. 몸매가 날렵하고 사람을 몹시 좋아한다. 살과 털을 맞대는 것도, 이야기하는 것도, 안겨 있는 것도, 쓰다듬어주는 것도 엄청 좋아한다. 내가 데려온 랑이는 흰색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치즈 고양이다. 가끔 거대한 풍선처럼 보일 정도로 통통하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늘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외출했다 돌아오면 벌써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졸졸 따라와서 한참 쓰다듬어 달라고도 한다. 그리고 곧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러 사라진다. 안겨 있거나 무릎에 앉아 있는 건 잘 견디지 못한다. 두 고양이 모두 사람과 함께 침대에서 자는 걸 좋아하는데 빼삐는 인간이 침대에 누워 있으면 그게 어느 때이든 상관없이 함께 눕지만, 랑이는 자신만의 루틴이 있어서 정해진 때가 아니면 함께 자지 않는다.


랑이가 내 옆에 없던 시절, 가끔 궁금했다. 강아지나 고양이와 사는 사람들은 똑같은 외모의 동물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을 구별해 낼 수 있을까? 랑이를 만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그런 악몽을 꿨다. 랑이가 없어져 찾으러 가니 노란색 치즈 고양이가 100마리쯤 있었고, 나는 그중에서 애타게 랑이를 찾지만, 끝끝내 랑이는 보이지 않는 꿈 말이다. 지금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확신한다. 한 공간에 치즈 고양이가 엄청나게 많이 있어도 나는 랑이의 얼굴을 단번에 알아볼 것이다. 나는 이미 랑이의 눈매와 얼굴 생김새, 몸짓의 패턴과 습관에 익숙해 있다.


다행히 감각을 작동할 필요도 없이 랑이와 빼삐는 한눈에 봐도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달라서인지 둘은 자주 싸운다. 처음엔 ‘꿰오오’ ‘그르르르’ 소리를 내며 싸우더니 이제는 소리도 없이 싸운다. 너무 조용하다 싶어 거실에 나가 보면 스크래처 안에서 서로를 붙잡고 뒹구는 식이다. 이것이 싸움인가 노는 건가, 헷갈리지만 얼마 전 이것이 걱정할 일이란 확신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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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자고 일어나 보니 사방에 검은 털과 노란 털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랑이의 귀가 찢어져 상처가 나 있었다. 금쪽같은 고양이가 다친 것도 속상했지만, 둘의 사이가 이렇게까지 나쁘다는 게 더 속상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낯선 고양이와 함께 살아야 하는 상황이 고양이들에게 화가 나는 일이었을까? 그 후로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는 목걸이를 채우고, 이것저것 시도했지만 둘의 사이가 눈에 띄게 좋아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직도 랑이나 빼삐를 쓰다듬을 때 목덜미를 만져 보면 서로 목을 문 상처 같은 것들이 남아 있다.


그래도 둘은 꼭 한 공간에 같이 있으려 한다. 집이 넓은 건 아니지만, 각자 쓸 수 있는 방이 하나씩 있는데 굳이 같은 방에 머문다. 잠을 잘 때도 한 침대에서 잔다. 아주 친하지는 않지만, 거리를 두고 그럭저럭 지내고 싶은 마음일까? 합사를 시작할 때 여러 유튜브를 보면서 성공을 굳게 다짐했다. 지금까지의 신호로 미뤄보면 빼삐와 랑이의 합사는 실패에 가까워 보인다. 랑이와 빼삐는 아주 친한 사이도, 서로 그루밍을 해 주는 사이도 아니다. 그냥 서로 데면데면해도 괜찮지 않을까?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세상에 나타난 낯선 고양이가 불편하고 마음에 들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 나도 우리 집 고양이들이 꼭 친해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가끔 싸우고 뒹굴더라도 각자에게 한가로이 털 고를 시간과 창밖의 TV를 구경할 시간이 있고, 다리를 사이에 두고 서로 등돌리고 자는 것만으로 괜찮다. 우리 삶이 성공과 실패로 나눠지지 않듯이 빼삐와 랑이의 관계도 그렇다. 어떤 경험은 실패도 성공도 아닌 회색지대에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건 꼭 좋거나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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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희

엘르보이스의 최신 소식을 전하는 에디터입니다. 다양한 소식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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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전혜진
  • 글 이강희
  • 아트 디자이너 민홍주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