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넛을 나누듯 저를 나눠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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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린이의 방에는 수준에 맞지 않는 시집이 서너 권 열려 있다. 책갈피도 제멋대로다. 물론 아이는 끝까지 읽지 않는다. 읽다가 멈추고, 다시 펼치고, 마음에 남는 리듬을 소리 내 읽는다. 뜻을 다 알지 못해도 멈추지 않는 얼굴 옆에서 나는 그저 낭랑한 목소리를 들을 뿐이다. 하필 읽고 있는 시집이 <도넛을 나누는 기분>이다. 사두고 다 읽지 못한 새 시집인데, 문득 여섯 살 아이가 왜 이 시집을 골랐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얼마 전 남편이 사온 도넛 상자가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아무도 건들지 않은 예쁜 도넛에 아들이 덥석 손을 뻗었다. “엄마가 싫어하는 달달이를 아빠가 사왔네?” 아들은 내 눈치를 보다가 도넛 하나를 반으로 가르기 시작했다. 빵은 뭉개지고 표면의 시럽은 깨져 한 사람은 헐벗은 빵 조각을 먹어야 했지만 괜찮다는 얼굴이었다. “나눠주는 거잖아.” 아이는 내게 웃으며 건네줬다. 물론 조금 큰 부분을 꼬맹이가 차지했지만. 정확하지 않은 그 나눔은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그렇지. 그냥 ‘나누는 기분’이 중요하지. 언젠가 아이와 읽은 동화가 생각났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사는 꼬마의 이야기였다. 아이는 할머니가 점점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같은 말을 반복하다 마지막엔 아기처럼 울고 행동하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 아이 부모님이 말했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나이를 나눠 주셔서 다시 어려진 거란다.” 나눈다는 것은 꼭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대상만은 아니다. 시간과 지혜, 인생, 수명까지도 가능하다. 아이에게 당장 이해시킬 수 없었지만, 설명 대신 우리는 감정으로 느꼈다.
또 이렇게 연고가 없는 낯선 지역에서 1년을 살아냈다. 군인 가족으로 지내며 나는 또 부지런히 무언가를 나눌 수 있는 이웃을 만들었다. 한 번도 이별하지 않은 사람처럼 헤벌쭉 또 사람을 만난다. “너는 지치지도 않니? 인생에 꼭 필요한 사람은 세 명이면 충분하다더라.”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에게 대꾸 대신 여섯 살 아들처럼 웃었다. 내 글을 읽어봤다며 반가워하는 독자도 이웃으로 만났고, 엘리베이터 없는 5층까지 올라와 김치를 두고 가는 동생도 생겼다. 차가 없어 걸어서 아이를 등원시키는 새댁과도 말을 나눴다. 개중에는 내게 가장 큰 울림을 준 이웃이 있다. 분명 이 땅에 존재하지만 지도에는 없는(보안 때문에) 군사시설 안의 작은 도서관을 지키는 사서 선생님. 아이들을 이끌고 관사 안 작은 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아이와 이곳을 방문하게 된 계기, 양평 라이프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감을 선생님께 고백했다. 그때마다 그녀는 하던 일을 손에서 내려놓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알고 보니 이 작은 도서관은 군인 가족의 아지트이자 대나무 숲이었다. 아이를 막 대학에 보낸 인생 선배이자 불안과 삶에 대한 고찰을 끊임없이 듣고 쓸어 담아 이골이 난 그녀는 이곳을 지키는 정령이었다. “한자리에 오래 머물면서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과 기분을 좀 알아요.” 점심을 먹으면서 그녀의 인생 얘기도 들었다. “처녀 적에 아이들을 센터에서 교육한 적 있어요. 그때 한 스님이 찾아오시더니 절에 한번 와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거예요. 좋은 일 때문은 아닌 것 같아 주저하다가 근처에 갈 일이 있어 가보니 부모에게 버림받은 남자아이가 있더군요. 그 아이를 글이라도 깨치게 해달라고 스님께서 부탁했어요. 뿌리칠 수 없어 주 1회씩 가서 지도했어요. 방학 때는 집에 1주일씩 데리고 있기도 했고요. 그 험한 산길을 걸어 아이를 보러 가는 동안 사고 한 번 나지 않은 것도 참 감사하죠. 저는 그래요. 나누는 건 생각 없이 해야 하더라고요. 주지 스님이랑 겸상해 먹는 밥도 맛있었어요. 지금 그 소년은 멋진 스님이 돼 있을 것 같아요.” 그 말씀을 듣는 동안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가진 걸 나누고 싶어졌다. “선생님, 이번에 김장해서 이웃에게 나눠주고 일부는 집에 가져가는 이벤트를 하면 어떨까요? ‘척’하는 것이 아닌,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을 나누면 어떨까요? ‘육아’하는 어머니들에게 어떤 동아리를 제안하면 좋을까요?” 그녀 덕분에, 좋은 이웃들 덕분에 나눠주고 싶은 마음, 행하는 것에 의미조차 찾지 않는 선함을 느꼈다. 한 입이라도 맛봤으면 하는 양의 반찬. 4분의 1통의 시원한 수박, 쪽파만 들어간 김밥, 여리고 푸른 상추, 굴러다니던 생필품까지 모두 우리 5층 집 앞으로 배달됐다. 덕분에 올겨울은 유난히 달았다.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게을러지기도 했지만, 겨울은 그동안 내 경험과 감정을 되씹고, 정리하고, 감사함을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5층 계단 덕분에 심장이 튼튼해진 건지, 매년 두 번씩 입원하던 아이들은 처음으로 입원하지 않았다. 삶의 아이러니는 이렇듯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현관 앞에 놓인 마음처럼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덩그러니 눈앞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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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겨울방학이 끝났다. 아침과 점심의 경계가 느슨해졌던 겨울. 아이들이 신고 잠든 두꺼운 수면 양말은 점심 무렵엔 소파 밑에서 발견돼 늘 청소기 주둥이를 막았다. 겨우내 내 기분이 딱 그랬다. 그러나 겨울 동안 웅크린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씩씩하게 추위를 떨쳐내며 완벽한 하루를 살아내는 건 어른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방학 숙제 좀 해라” “계획표대로 해라!” 잔소리를 할 때마다 뜨끔했다. 그러나 이젠 봄이 왔고, 나와 시간을 나눠 쓰던 어린이들도 세상 밖으로 나갔으니 엄마 여자 사람은 늘 하던 대로 다시 힘을 내면 된다. 시 단어의 뜻보다 말이 만들어내는 기분을 먼저 느끼는 어린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인생은 정확한 논설문이 아니라, 은유와 비유로 더 온전히 느껴지는 작품이라는 것을. 아이들처럼 시를 읽듯 인생을 대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중간에 덮어도 되고, 다시 펼쳐도 되고,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도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나는 설명하는 사람보다 지켜보는 사람이고 싶다. 우리가 계단을 오를 때 어깨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모습이 멀리서 봤을 때 어쩌면 춤추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 각자 자신만의 리듬으로 움직이는 우리들이 나는 사랑스럽다.
전지민
전 에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그린 마인드> 편집장. 지금은 경기도 양평에서 가족과 함께 여성, 엄마로서 지속 가능한 삶을 고민하고 있다.
Writer
전지민
전 에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그린 마인드〉 편집장. 지금은 강원도 춘천에서 가족과 함께 살며 여성과 엄마로서 지속 가능한 삶을 고민하는 내용을 담은 〈육아가 한 편의 시라면 좋겠지만〉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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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전혜진
- 글 전지민
- 사진 unsplash
- 아트 디자이너 강연수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