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깍'으로는 바뀌지 않는 변화

지난해 봄부터 친구들의 바이브 코딩 간증이 시작됐다. AI를 활용해 원하는 걸 말만 하면 ‘딸깍’하고 개발이 된다는 거다. 직접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교육을 들었고, 30분 만에 내 마라톤 기록을 맞히는 이벤트 페이지를 만들 수 있었다. 함께 마라톤을 뛰는 가족에게 보낼 주요 정보와 주변 맛집 정보 페이지는 10분도 안 걸렸다. 이전에는 며칠, 몇 주가 걸리던 일이 이제는 몇 시간이면 끝난다. 그 이후로 확실히 일하고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하루하루 AI 기술에 경탄하는 글들이 올라오는 SNS 피드에는 앞으로 아날로그한 경험의 값이 높아질 거라는 이야기도 자주 등장했다. 기술이 아무리 좋아져도 서로 다정한 말을 건네고 안부를 묻고 돌보는 일은 결국 직접 해야 하니까. 팬데믹 이후 다시 한 번 큰 변곡점이 될 거라는 이야기와 함께 기술 변화에 따라 앞으로는 연결되는 경험이 더 귀해지고 비싸질 거라는 전망도 따라붙는다. 인간으로서 당연하게 누리던 관계와 연결에 불평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까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사회구조적 문제를 다루는 책을 읽다 보면 문제의식으로 끌고 가다가 결국 대안으로 언급되는 건 늘 비슷하다. 오프라인에서의 만남과 연결. <고립의 시대>에서 노리나 허츠는 “외로움과 고립감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이 사회를 소외와 배제, 양극화와 정치적 극단주의로 이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 과제는 다양한 사람이 함께 시간을 보낼 방안을 찾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그냥 만나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만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는 말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이게 ‘딸깍’ 한다고 곧바로 되는 일은 아니다.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다. 무엇보다 꽤 불편하고 귀찮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는 기대감도 있지만, 어떤 사람과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지 모른다는 긴장감과 부담이 늘 따라온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대화를 나누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관계와 연결의 기술은 아직 발전이 미진하다. 이 사실에 조급함이 드는 건 관계와 연결은 개인과 개인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를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빼어난 기술과 메시지 방식이 등장해도 정치에서는 결국 오프라인에서 모이는 사람의 수와 그 사람들이 내는 의견에서 출발한다. 문제는 그 자리에 누가 올 수 있는지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많이 모이고 자주 말할 수 있는 사람에게 더 영향력이 쏠리게 된다. 매년 1월이면 구청장들이 동네를 돌며 신년인사회를 연다. 계획을 공유하고 주민 의견을 듣는 자리라 담당 공무원이나 시·군·구 의원도 함께한다.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나 역시 그랬다. 일정을 찾아보니 우리 동네 신년인사회는 모두 평일 오전 10시, 오후 1시와 4시에 열렸다. 모이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의 시간에 맞춰지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외되는 사람들이 생긴다. 서울의 한 젊은 구의원이 들려준 이야기도 떠오른다. 정치를 바꾸려면 문화를 바꿔야 하고, 문화를 바꾸려면 새롭고 다양한 사람들이 와서 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얼마 전 지역의 청년센터와 관련한 간담회에 참석했는데, 60~70대 어른들 60여 명이 모였고 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했다. 평일 낮이라는 시간을 생각하면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그 간담회에서는 청년들이 많이 드나들면 위험하고 더러워진다는 의견이 나왔고, 결국 청년센터는 관변단체의 회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결정됐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얼굴이 찌푸려지고 불쾌감이 들었다. ‘욕심 많은 어르신들’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다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노인은 청년을, 청년은 노인을 혐오하는 세계가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 만약 그 자리에 청년들이 함께 있었다면 혹은 그 전부터 동네에서 더 자주 마주쳤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기회를 조금 더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모이고 연결된다는 건 변화를 만드는 시작이 된다. 제대로 모이고 연결되면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 간편하지도, 빠르지도 않겠지만 여전히 ‘딸깍’ 하고 바꿀 수 없는 영역에 큰 변화의 잠재력이 있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만 누리고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 아닐까. 기존 방식으로는 귀찮고 재미없다면 새로운 방식의 관계와 연결의 기술이 필요할 때다. 이런 질문을 안고 우리부터 동네를 좋아하고, 더 좋은 동네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부터 모아보기로 했다. 올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우리가 정치를 미워하고 피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마주하며 모였을 때 엄청나게 멋진 일이 생길 거란 기대감을 안고서. 서대문구, 노원구, 동대문구, 강동구, 강남구, 마포구에 살고 있는 분이라면 조만간 뉴웨이즈가 만든 자리에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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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전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