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물꼬를 트자!

©Kelly Sikkema by Unsplash

©Kelly Sikkema by Unsplash

늙는 게 죽는 것보다 더 무섭다. 내 나이 고작(?) 내일모레 마흔에 불과하지만, 벌써 죽기보다 싫은 늙기. 오래 늙느니 죽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시건방진 생각은 이미 핏덩이처럼 어릴 때부터 품고 있었다. 이 공포의 내면에 솔직히 외모에 관한 것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오로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외모적 요소는 오히려 마이너한 이슈인 편. 내가 나이 드는 게 두려운 이유는 그것이 실제로 아프기 때문이다. 노화는 필연적으로 신체적 고통을 동반하며 나이 들면서 오는 대부분의 심적 고통 역시 신체적 고통에서 비롯된다. 정신을 담는 그릇이 몸이라지만, 이를 바꿔 말하면 내 몸이 곧 내 영혼의 감옥이다. 우리는 어쩌다 부여받은 육신 안에서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벗어날 수 없다. 나는 정확히 몇 살인지 기억이 안 나는 꼬마일 때부터 문득문득 이런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한번 그 생각에 사로잡히면 감각하는 모든 것이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갑갑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남보다 더 구르고, 박차고, 뛰어내리고, 하여간 “너는 여자애가 왜 이렇게 왈가닥이니?”라는 말을 들을 만한 모든 행위에 몰입한 건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어 사회적 체면을 차리게 되면서 팔다리를 마구 휘둘러 표현하던 자유로움에 대한 갈증은 폭음이나 말도 안 되는 연애 등등 보다 은밀한 내면적 행위로 치환됐다. 조용한 ADHD처럼 일단 겉으로는 큰 문제가 없고, 언뜻 보면 점잖아 보이지만 속은 엉망이었다. 도대체 그 근본 없는 답답함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그때 나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물론 돌아보면 그래도 많은 순간 즐거웠다. 확실히 남보다 많은 도파민에 노출된 건 사실이다. 그게 대부분 불건강한 도파민이어서 그렇지. 도파민과 희열이 절정에 다다르는 순간, 꼭 다치거나 아팠다. 크게는 어딘가의 파열이나 골절 혹은 수술과 입원이 요구되는 질환으로, 작게는 지긋지긋하게 한 번을 거르지 않고 매달 시달리는 생리통 따위로. 고통은 매번 얼굴을 바꿔가며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것은 육신이라는 감옥이었다. 나라는 개념의 외곽을 구성하는 수없이 많은 물질 파트 중 아주 작은 하나라도 어긋나면 전체 시스템에 경계 경보가 울렸다. 불행히도 나는 이 알람 센서가 평균 이상으로 예민하게 타고난 사람이었다.


아프면 ‘아프군’ 하고 말아야 하는 게 정답이지만, 그게 안 된다. 물꼬가 터진 우울은 항상 꼬리를 물고 덩치를 키운다. 스스로 병이 날 수밖에 없게 살았으면서 ‘왜 만날 나만 아픈가’ ‘도대체 언제까지 아파야 하냐’며 답도 없는 질문을 해댔다. 그리고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수록 이 우울은 늙음에 대한 공포로 전이됐다. 젊은 지금이야 언젠가는 나을, 끝이 보장돼 있는 아픔임을 알기에 그나마 견디지만, 더 나이가 들어 완전히 노인이 되면? 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지금의 일시적인 짜증스러운 상태가 24시간, 365일 내내 이어질 거라는 상상을 하면 차라리 기절해 버리고 싶었다.



©Shamblen Studios by Unsplash

©Shamblen Studios by Unsplash

돌고 돌아 운동을 만나고, 또 푹 빠지고, 결국 운동과 관련된 직업을 선택하게 된 건 운명보다 구원에 가까운 일이었다. 운동하면서 무기 징역수가 자신의 독방을 어떻게든 아늑하게 꾸미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내가 갇힌 이 몸이라도 손끝, 발끝까지 의도하는 대로 최대한 자유롭게 움직여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연습 끝에 고난도 동작을 해내거나 조금씩 부하를 높여 끝내 어려운 중량을 해치우고 나면 퀘스트를 보상받는 듯한 쾌감이 따랐다. 다시 마구 구르고 뛰던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기분이랄까.


움직임의 수용치가 늘자 일상에서 자잘한 부상이 줄었다. 몸의 내구도가 향상되니 확실히 덜 삐끗하고, 더 잘 버텼다. 몸을 더 잘 쓰고 싶어지니 조금 절제된 생활도 가능해졌다. 양질의 식사와 수면을 챙기자 내과적 통증의 빈도도 꽤 줄었다. 가장 좋은 점은 이 모든 과정이 건강한 도파민을 생성한다는 것이다. 건강한 도파민은 불건강한 도파민보다 지속 시간이 길고, 심지어 중단했을 때도 금단현상 같은 리바운드마저 없다. 기분 탓이 아니라 여러 논문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한 예로 요즘 제니마저 한다는 콜드 플런지-아이스 배싱으로 분비되는 도파민 수치는 실제로 마약을 할 때와 같거나 그 이상이다.


어느 순간부터 옛날만큼 아픔과 늙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지 않게 됐다. 근섬유는 찢어지고 나서 다시 더 크게 붙는다는 걸 깨달았을 때부터일까. 살다 보면 또 다치고 아플 테지만, 언제든 스스로 돌보고 케어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내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나라는 자아의 관념적 사이즈도 커진다. 나는 이제 내가 사는 몸이라는 방이 어두운 독방이 아니라 조금씩 확장된다는 것을 안다. 쇼생크 탈출처럼 숟가락으로 조금씩 벽을 파내다 보면 언젠가 완전한 자유에 다다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노화는 나이나 신체가 아니라 태도와 멘탈의 개념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아직 늙는 게 죽기보다 싫다. 이제 내가 두려워하는 건 더 이상 변화하지 않으려는 나, 이런저런 핑계로 주저앉으려는 나, 아프기 싫다고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으려는 나일 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아니라 당신이 두려워하는 모든 일이 일어난다.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 움직이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다고? 그렇다면 계속해서 막힘없이 흐를 수 있게 하자. 흘러야 하는 물이 고이면 썩는다. 닫힌 물꼬를 트자. 움직이자, 당신!


Writer

작가 이미지

에리카

여성 전용 헬스장 샤크짐 공동대표. 사무직 직장인으로 살다가 30대에 완전한 ‘운동인’으로 각성했다. 더 많은 여자가 운동해야 한다는 믿음 하에 <떼인 근력 찾아드립니다>를 펴냈다.

Category

Credit

  • 에디터 이마루 · 전혜진
  • 작가 에리카
  • 아트 디자이너 김민정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