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샌들의 커팅과 장식 요소를 적용한 레더 재킷. 가격 미정. Maison Martin Margiela.
“그녀가 23세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게 믿어지세요?” TV 시리즈 <가십 걸> 촬영차 진행하는 레이디 가가의 콘서트 시작 전, 공연장 앞을 지키고 있던 한 팬이 외쳤다. 이날 촬영분은 극 중의 블레어가 학교로 초대한 레이디 가가를 초대해 학생들 앞에서 공연을 펼치는 내용이었다. 촬영은 한때 유대인 이주자들이 몰려 살던 맨해튼 남동쪽 유대교회당에서 진행됐다. 그녀의 헤어스타일은 파란색 바탕에 구름이 그려진 유대교회당의 천장을 닮은 아치형이었다. 저글링 묘기를 뽐내는 남자 백댄서들 사이에서 가가는 정신 반쯤 나간 듯한 그녀 특유의 비틀거리는 춤을 추고 있었다. 마치 그녀의 귓가에서 아른거리는 악마의 목소리를 몰아내려고 발버둥 치는 듯한 그녀의 모습은 정상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이상한 천사 같았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헤어스타일을 하고,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의상을 입고 천장에서 피아노 연주와 동시에 라이브로 노래하며 무대로 내려오는 그녀. 그녀가 바로 23세의 레이디 가가다. 집 밖으로 한 발짝만 나와도 주위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가가에게는 언제나 수많은 질문이 따라다닌다. ‘레이디 가가는 얼마나 똑똑한 것일까?’ ‘그녀의 음악은 가볍지만 담긴 메시지는 심오하다. 왜일까?’, ‘그녀가 정말 이 모든 걸 스스로 다해 내는 것인가?’ ‘그녀는 넥스트 마돈나인가, 넥스트 카일리 미노그인가 아니면 그녀가 닮고 싶어 하는 넥스트 데이빗 보위인가?’ ‘그녀는 정말 23세인가?’ ‘그녀는 사실 자웅동체인 게 아닐까?’ 하는 물음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가가의 음악을 좋아하는 전 세계의 사람들이나 아니면 적어도 그녀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들의 반응을 고려해볼 때 그녀가 ‘주류 문화 비틀기’로 대박을 터뜨렸다는 평가는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면 안 돼는 사실이 있다. 가가는 망망대해에서 불쑥 튀어나온 게 아니라 오랫동안 완벽하게 다듬어져 만들어진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녀가 귀로 음악을 들으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네 살 때부터 지금의 레이디 가가가 탄생하고 있었던 셈이니.
2 플라스틱 소재의 베일 톱. 가격 미정. Karl Lagerfeld. 블랙 브리프. 22달러. Frederick’s of Hollywood. 퓨처리스틱한 프레임이 인상적인 선글라스. 가격 미정. Linda Farrow Projects.
가가는 어릴 때 자신이 자라온 곳을 보여주겠다며 맨해튼 69번가에 있는 웨스트사이드 레스토랑에서 일요일 아침식사를 하자고 했다. 그녀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1세대인 부모님과 여섯 살 아래의 여동생과 함께 이곳에서 몇 블록 떨어진 어퍼웨스트사이트 아파트에서 살았다고 했다. 레스토랑은 전통적인 그리스 음식점의 모습이었다(그리스 전통 음식을 팔아서가 아니다. 뉴욕음식협회는 자동차 휴게소에서 파는 것과 같은 미국 음식을 취급하는 곳을 대부분 그리스 이민자들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곤 했다). 내부는 나이 든 여자들과 조깅하는 사람들, 아이들을 데리고 온 아빠들로 북적거렸다. 따로 예약도 받지 않는 곳이어서 나는 테이블을 지키기 위해 미리 주문을 해야만 했다. 레스토랑 앞에 기사가 딸린 브랙 에스컬레이드 SUV가 멈췄을 땐, 나는 이미 식사를 끝낸 상태였다.
“미안하지만 정말 무례하시네요.” 나는 화려한 옷차림에 비해 꽤 조용하게 도착한 레이디 가가에게 말을 건넸다. 가가는 남성용 빈티지 이브 생 로랑 코트 안에 티에리 무글러의 90년대 빈티지 블랙 파워 숄더 드레스를 입고, 역시 이브 생 로랑의 그레이 스웨이드 웨지힐을 신고 있었다. 그녀답지 않은 유일한 아이템은 아래 위로 붙인 거미 같은 속눈썹과 황급히 테이블 아래로 숨긴 새 시바 이누 강아지였다.
“죄송해요. 전 이탈리아 사람이잖아요. 음식을 미리 드시고 계셔서 다행이에요.” 그녀가 레스토랑을 휙휙 둘러보며 대꾸했다. “조린 달걀 두 개랑 해시 브라운, 통밀 토스트를 드셨군요.”라며 내가 비운 접시에 있었던 음식을 정확히 집어냈다. “예전에 웨이트리스 일을 몇 번 했었거든요. 그 일을 정말 잘했어요. 항상 팁도 많이 받았죠. 전 일할 때도 항상 하이힐을 신고 있었어요. 동료들은 물론이고 손님들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었고요. 저에겐 그것도 일종의 퍼포먼스었거든요.”
3 스트라이프 패턴의 오르간자 소재 하이웨이스트 팬츠. 530달러. 구조적인 느낌의 와이드한 챙이 특징인 모자. 가격 미정. 모두 Hussein Chalayan. 과감하게 굽을 강조한 스웨이드 소재의 플랫폼 슈즈. 640달러. Vivienne Westwood.
4 각도에 따라 다양한 컬러감을 만들어내는 메탈릭한 드레스. 975달러. Jil Sander. 과감하게 굽을 강조한 스웨이드 소재의 플랫폼 슈즈. 640달러. Vivienne Westwood.
무대뿐만 아니라 일상 자체를 퍼포먼스로 여기는 가가는 오래전부터 엔터테이너가 되기를 꿈꿨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아티스트들에게 둘러싸여 자랐을 것 같은 느낌과는 달리 그녀는 엄격한 사립 카톨릭 여학교를 나왔다(이곳의 졸업생으로는 캐롤라인 케네디, 니키 힐튼 등이 있다). 카톨릭 신자인 아버지와 감리교 신자인 어머니 아래에서 자란 환경은 “전통을 중시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진보적이었다.”고 그녀가 말했다. 아버지는 호텔에 무선 인터넷을 제공하는 회사를 운영했고 어머니는 통신회사에 근무했다. 그들은 비싼 학비를 댈 만큼 부유했지만 뉴욕 기준으로 보자면 부자는 아니었고 먹고살기에 불편함이 없는 정도였다. “전 자유로운 제 생각을 마음껏 표현하는 학생이었어요. 게다가 전 왼손잡이라고요!” 학교 내에서 주목받는 학생이였던 가가는 부모님의 격려 아래 하루에 피아노를 두 시간씩 연습하고 학교에서 공연을 하는 음악 천재이기도 했다. 그녀에게 학창 시절 가장 뚜렷한 기억은 ‘셔츠’에 관한 사건이다. “어느 날 저와 친구가 같은 화이트 크루넥 셔츠를 입고 있었죠. 그런데 한 선생님이 저에게만 셔츠가 부적절하다고 지적하시는 거예요. 전 너무 화가 났어요. 친구는 문제가 없었는데 왜 저만 그랬을까요? 제가 어깨를 쭉 펴고 고개를 치켜들고 걸어서였을까요? 제가 구부정하게 서 있었으면 괜찮았을까요?”
가가는 17세 때 뉴욕대 티시 음악학교 학생으로 조기 선발됐지만 1년 후 예술가가 되기 위해 학교를 그만뒀다. 이후 가가는 잠시 동안 여러 음악 장르 사이에서 방황하기도 했다. 하드 록 밴드에서 연주를 하기도 했고 유튜브에 떠도는 영상처럼 클럽에서 피오나 애플처럼 노래를 부르며 키보드를 연주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예술가들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그녀만의 색깔도 찾았다. 그녀를 스타덤에 올려준 프로듀서 롭 푸사리(Rob Fusari)도 만났다. 그녀는 그를 퀸의 노래인 ‘라디오 가가(Radio Ga Ga)’로 기억한다. 가가에는 ‘아기들이 옹알이하듯 말하는 것’과 ‘경배’라는 이중적인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 이상한 이름에서 잠재성을 발견하고 푸사리가 그녀에게 별명으로 붙여주었다. 한동안 코카인에 중독돼 기획사 데프잼과의 계약을 6개월만에 끝내는 어려움도 겪었지만 가족들의 도움으로 이겨냈고 이후 그녀의 ‘뷰티풀, 더티, 리치’ 비디오를 본 빈센트 하버트(Vincent Herbert)가 단번에 그녀와 계약을 맺었다. ‘더 페임(The Fame)’은 그렇게 탄생했다.
5 샌들의 커팅과 장식 요소를 적용한 레더 재킷. 가격 미정. Maison Martin Margiela. 블랙 레이스 장식이 섹시함을 연출해주는 언더웨어. 가격 미정. Agent Provocateur.
대화 도중 가가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냐고 물었다. “전 임신한 여자들이 겪는 증상을 모두 겪고 있어요. 일을 할 때마다 매번 아이를 낳는 것 같은 느낌이죠. 머리가 아프고, 피곤하고.... 하우스 팀과 작업하는 도중에도 눈앞이 흐려지기도 해요.” 그녀는 똑 부러지는 뉴욕 억양으로 “스트레스는 견디기 힘들다네…(Psychosomatic Symptoms, difficult to endure...)”라며 20년 넘게 브로드웨이를 주름 잡은 배우마냥 <아가씨와 건달들>에 나오는 ‘탄식의 노래’를 부르며 대답을 대신했다.
레이디 가가에게 있어 가장 흥미로운 점은 신예 스타를 반짝 띄워주고 이후 내팽겨쳐 버리는 미디어를 그 반대로 조종할 줄 알며 오히려 그보다 한 수 앞서간다는 것이다. 자신의 인기를 예상하고 앨범 이름을 ‘더 페임(The Fame)’으로 지은 것도 배짱 있는 행동이었다. 그녀가 앞으로 선보이고 싶다는 뮤직 비디오와 노래의 주제는 파괴적이면서 꽤 신선했다. “대중들에게 아티스트로서 제 자신의 실패를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요. 그럼 저에 대한 과대평가도 줄어들겠죠. 사람들도 기대하지 않을 거고요. 일부러 보여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런 저의 모습을 보여주면 사람들이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을 테니까요.”
WORDS Miranda Purves
PHOTO Tom Munro
STYLE Joe Zee
모델?Lady GaGa
헤어?Kevin Ryan for R Session
메이크업?Billy B @ Art Department / 매니큐어?Sheril Bailey @ Jed Root, INC.
세트 디자인?Mary Howard Studio / 어시스턴트?Sarah Schussheim, Malina Jose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