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영의 술 권하는 사회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어린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내 기억 속의 어린 시절은 골목길에 닿아 있다. 숨바꼭질도 하고 총 싸움도 하던 곳이다. 추운 겨울이면 동상에 걸린 손가락이 퉁퉁 붓도록 골목길을 뛰어다녔다. 어스름 어둠이 내리면 가족들이 나를 찾아 나선다. "기영아, 밥 먹자!" 밥은 무슨. 그저 그렇게 뛰어다녔다. 파란 겨울 하늘이 어둠과 별을 내릴 때까지. :: 엘르,편안한,친근한,골목길,동네,저녘,일상,엘라서울,엣진,elle.co.kr :: | :: 엘르,편안한,친근한,골목길,동네

어린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내 기억 속의 어린 시절은 골목길에 닿아 있다. 숨바꼭질도 하고 총 싸움도 하던 곳이다. 추운 겨울이면 동상에 걸린 손가락이 퉁퉁 붓도록 골목길을 뛰어다녔다. 어스름 어둠이 내리면 가족들이 나를 찾아 나선다. "기영아, 밥 먹자!" 밥은 무슨. 그저 그렇게 뛰어다녔다. 파란 겨울 하늘이 어둠과 별을 내릴 때까지. 골목길에 드리운 아련한 추억을 떠올릴 때면, 생각 나는 술집이 있다. 술집 이름도 골목길이고 가게 위치도 골목길(논현동 을지병원 뒤편)에 있다. 이미 강남에선 장안의 맛집으로 소문 난 곳이다. 4년 전 지인과 처음 이 집을 찾았을 땐 그다지 알려진 곳이 아니었다. 주계(酒界)의 고수들만이 찾는 곳이었지만, 이젠 줄을 서야 한다. 예약도 안 된다. 그저 여섯시 땡 치기 전에 가서 먼저 자리를 잡아야 한다. 늦게 가면 줄을 서거나 장부에 핸드폰 번호를 적어 놓고 근처에서 시간을 죽여야 한다. 골목길에 들어서면 딱 그 분위기다. 어린 시절 골목길에 아른거리는 그 추억 말이다. 그래서 일까? 오랜만에 기분 좋은 술 파트너와 배가 맞으면, 골목길에 가야 한다. 이 집의 대표 메뉴는 푸짐한 조개찜이다. 무엇보다 그 싱싱함이 경쟁력이다. 해감도 쏙 빠졌다. 가리비는 다른 조개찜과는 종자가 다르다. 조개를 찌면서 내린 국물엔 칼국수를 끓이는데, 이 육수가 궁극의 맛이다. 알코올 기운이 멀찌감치 달아난다. 김치칼국수 보다는 맑은 국물의 칼국수가 좋다. 조개 육수를 제대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대학 시절 후배를 골목길에서 만났다. 1년 6개월 만이다. 오래 전부터 술 약속을 하고도 여러 차례 펑크를 냈었다. 그 미안한 마음에 또 반가운 마음에, 막걸리와 조개가, 다시 소주가 '술술' 들어간다. 그 날의 술 안주는 늘 그렇듯 '사는 얘기'였다. 그 후배는 고1과 중3 딸을 둔 '딸딸이' 엄마다. 대학 시절, 새벽까지 이어진 남자 선배들과의 술자리를 단 한번도 마다하지 않은 씩씩한 여자 후배였다. 그 고집이 세기로는 따라올 사람이 없었는데, 여전했다. 예전에도 선배들을 고개 꼿꼿하게 세우고 상대했는데, 지금 그녀의 상대는 딸들이다. 큰 아이는 성악, 작은 딸은 디자인에 남다른 재능이 있는데, 문제는 학업 성적이었다. 전교생 160명 가운데 135등. 그럼에도 후배는 느긋했다. 그 자신감은 딸 아이의 인생은 온전히 그들의 것이란 믿음에서 나왔다. 엄마의 역할은 든든한 조력자에 그쳐야 한다는 가치관 때문이었다. 100% 공감했다. 아이들은 풀어놓고 방목해야 한다는 내 생각과도 같았다. 어린 시절, 나를 키운 5할은 골목길이었다. 사람과 어울리는 법을 배운 곳, 함께 사는 법을 배운 곳, 골목길이다. 부모님께서 나를 방목하셨던 곳이다. * 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1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