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식객의 맛집 놀이 막회를 아시나요?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이 회도 싫고 저 회도 싫을 때는 막회가 최고다. 바닷바람에 꾸들꾸들 말린 과메기를 미역에 돌돌 말아 싸 먹는 맛. 겨울이 아니면 제 맛이 안나지. 아무렴. :: 엘르,편안한,친근한,신선한,모임,푸드,맛집,엘라서울,엣진,elle.co.kr :: | :: 엘르,편안한,친근한,신선한,모임

[Profile]이름: 낭만식객성별: 스테레오 타입을 거부하는 양성성 소유자취미: 한 종목에 꽂히면 석 달 열흘간 한 놈만 팬다.특징: 사주팔자에 맛 미(味) 자가 있다고 용한 점쟁이가 일러줌과제: 어지러운 중원에 맛의 달인, 진정한 고수 찾기 별명이 용궁나라 공주님이었다. 바다식구들을 너무너무 좋아해 매일 그들의 몸 보시를 흠향해야만 평화로운 정무를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바다에서 난 것이면 굴, 꼬막, 새조개부터 광어, 우럭, 숭어, 감성돔 어종불문하고 먹어치우는 식성 탓에 한 때 바닷사람과 결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다. 바다의 맛을 알게 된 것은 어린 시절, 낚시 좋아하는 아버지를 따라 통통배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서 아가미 아직 발랑거리는 놈을 탁 쳐서 기절시킨 후 켜켜이 살을 발라먹는 회 맛을 보고 난 다음이다. 아직도 선연하다. 과도 한 자락으로 껍질을 벗겨낸 후 듬성듬성 썰어서 인절미 나눠주듯 그릇에 담긴 회를 보고 호기심에 집어먹었던 기억이. 입 안에서 쫀득한 껌을 씹듯 쫄깃쫄깃한 질감과 향그러운 바다향이 매머드급 충격으로 해일을 일으키더니 이후 30여 년 동안 찰랑찰랑 회만 보면 심장이 벌렁거리는 잔물결에 휩싸여 살게 되었던 모양이다. 평소 과식하지 않는 편이지만 회만 보면 조절이 안 되는 탓에 위 용량 무제한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총을 받기도 한다.문제는 그렇게 먹성 좋던 본 식객이 요즘 좀체 회에 흥미를 잃어간다는 것이다. 회 맛은 칼맛이라는 말에 적극 동의하며 잘 썬 고급회를 입에 넣어도 예전만큼 강렬한 동요를 일으키지 못한다. 육고기보다 물고기의 매력에 빠졌던 것은 바다의 무한한 생명력, 그 요동치는 자연의 맛에 반한 것이었는데 어째 요즘 것들은 펄펄 넘치는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가 없다. 양식장에서 친구들과 몸 부대끼며 살아서 그런지 스트레스 기운도 느껴지고 갖은 살찌는 약과 병 안 걸리는 약들을 먹고 살아와 그런지 탄력도 덜하고 맛도 예전 같질 않다. 점점 회에 흥미를 잃어갈 즈음, 생각난 것이 있으니 바로 막회. 이 회도 아니고 저 회도 아니고 막회다. 말 그대로 바닷사람들이 좋고 실한 놈들은 팔려고 다 내놓고 인근 해안에서 잡히는 잡어들을 모아다 쓱쓱 썰어서 미역이나 야채들과 함께 먹는 바다 보양식. 원래 이밥에 고깃국 먹는 양반보다 보리밥에 총각김치 올려 먹는 머슴들이 더 영양이 좋듯 회도 현지에서 바닷사람들이 먹는 회가 최고다. 좋은 살만 발라내 한 점 한 점 혀 안에서 굴리고 음미하고 목으로 넘기는 회보다 싱싱한 해초와 야채들을 함께 먹는 것이 영양학상으로 우수하단 얘기다. 인근에서 막 잡은 회이니 물론 자연산. 양식이 아니다. 어종은 철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별나지 않고 누구나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녀석들이다. 겨울철이면 놓칠 수 없는 바다의 진객이 있으니 바로 과메기. 남도에 홍어가 있다면 경상남도에는 과메기가 있다. (왜 전라남도는 남도라고 하고, 경상남도는 경남이라 하는지 나에게 묻지 마라. 문화적 지역적 자존심이 걸린 이야기니 본 식객은 피해가겠다.) 여하튼 난위도로 치면 홍어가 좀 세긴 하다. 과메기도 지역과 방법에 따라 난위도가 차이가 나긴 하는데 요즘엔 서울 사람 입맛에 맞추느라 크게 겁 먹지 않고 도전해봐도 될 만하다. 과메기는 원래 청어를 말린 것이라 '관목(貫目)', 즉 꼬챙이로 청어의 눈을 뚫어 말린 고기라는 뜻에서 과메기로 불렸다. 요즘은 청어가 귀해 꽁치를 쓴다. 차가운 겨울, 바닷바람을 맞으며 푸짐한 햇볕을 받고 꾸들꾸들 잘 말린 과메기는 바다의 홍삼이라 불릴 만큼 맛과 영양이 좋다. 전국의 과메기 생산량의 80퍼센트를 담당하고 있는 포항의 겨울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지금은 명태가 잘 안 잡혀서 귀한 풍경이 되었지만 인제 용대리 황태덕장에 끝간데 없이 널린 명태를 보는 것만큼이나 진풍경이다.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야 폭신폭신 부드러운 속살을 자랑하는 황태가 되지만 과메기는 3~4일 정도 적당한 습도로 말라야 비린내도 덜하고 기름지게 맛있다. 포항이 과메기로 유명한 것도 실은 백두대간을 넘어온 북서풍과 영일만 해풍이 만나 절묘한 습도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요즘은 공장에서 건조시켜 나오는 것들도 많은데 대세는 자연건조와 인공건조를 병행하는 것이라고.자, 그럼 이런 막회와 과메기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이 어디냐. 허름한 낙원상가 골목을 지나 모텔골목으로 들어서면 포항 호미곶, 떠오르는 해를 받치듯이 바다에서 손바닥이 올라오는 상생의 손이 문 앞 포스터로 장식되어 있는 영일식당이 있다. 주인은 역시 포항사람이다. 매일 포항에서 공수되는 신선한 잡어회를 공급한다는 것이 이 집의 영업철칙이자 성공비결이다. 역시 성공한 집답게 서비스는 그리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주는 대로 먹고 수천번은 더 들었을 것 같은 질문은 인터넷을 활용하시길. 일단 오후 4시가 영업 개시 시간인데 저녁이면 자리 잡기가 쉽지 않다. 미리 가서 자리잡거나 예약하거나. 자연산 잡어회로 불리는 막회의 어종은 그때 그때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학꽁치, 참가자미, 미주구리, 전어 등이 주로 오른다. 모두 수심 150~200미터 미만의 연안에서 잡히는 어종들. 원형 접시에 각 어종들을 돌려가며 담고 사이사이에 배추속대, 쪽파, 양파, 깻잎 등을 푸짐하게 담았다. 백미는 역시나 미역. 항암과 해독작용으로 미역이 얼마나 좋은 음식인지는 세상 사람이 다 알지만 그렇게 생미역을 먹는 민족은 우리나라가 단연 최고다. 생미역만 먹나, 끓여먹고 데쳐먹고 잎도 먹고 줄기도 먹고. 아무튼 본 식객은 바다의 왕자로 미역을 추켜올리는 바이다. 과메기를 먹을 때는 미역과 김을 같이 올려 쪽파와 마늘을 함께 싸먹으면 파마늘의 알싸함으로 비린내를 살짝 가리며 씹을수록 고소한 과메기의 풍미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요놈들 맛의 비결은 다진 마늘을 넣은 초장이다. 횟집에서 파는 초 맛이 강한 초장이 아니라 마늘 양념을 넣고 숙성시켜 부드러우면서도 알알한 맛이 있어 계속 당기게 하는 비밀병기다. 이 집에 오면 막회와 과메기는 기본적으로 맛봐야 하지만 백고동구이와 새우구이, 문어까지 맛 보고 나면 포항 앞바다의 상생의 손을 그리듯이 꿈 속에서도 허우적거리며 몇일 지나지 않아 다시 찾고 싶을지도 모른다. 젓가락으로 폭 찍어 껍데기를 살살 돌리면 안쪽 내장까지 쏙 빠지는 백고동구이. 입 안에 넣고 오물오물거리면 입 끝이 귀에 걸리며 딱 상현달의 입 모양이 그려진다. 눈에서는 행복에 겨운 눈물이 줄줄. 헌데 이상하다. 백고동이나 새우나 모두 한겨울에 먹어야 맛있다. 밖은 얼어터지겠는데 후끈한 열기 뚫고 들어가 김 서리는 안경 내려놓고 살짝 탄 자욱 남아있는 고동이나 새우를 씹을 때. 아, 난 살아있구나. 살아서 이 맛을 맛보는구나. 새삼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목구멍이 침이 꼴깍하고 넘어간다. 오늘은 일을 작파하고 냉큼 달려가 상에 바싹 다가앉아 무한정 소주 안주 과메기와 진하게 사랑을 나눠 볼까나. 한겨울에만 찾아오시는 그리운 님과 함께. Information영일식당 742-3213. 공휴일은 무조건 쉰다. 오후 4시부터 저녁 10시 반까지. 재료가 다 떨어지면 더 일찍 끝나기도 한다. 막회 물이 유독 좋아 다 팔리고 난 날이면 다른 걸 먹는 수밖에 없다. 술기운에 영업시간을 늘여달라고 조를 수는 없다. 서빙 아주머니 단호해서 끝날 시간 되면 칼 같다. 낙원상가에서 테마모텔 골목.* 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1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