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삼의 도시 건축 탐험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도시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건축은 그 이야기의 상형문자다. 서울역사 앞에서 압도적 크기로 위용을 과시했던 대우빌딩이 달라졌다. 어떻게? 바로 이렇게.:: 엘르,화려한,야경,미디어,서울,서울광장,데이트,일상,밤,엘라서울,엣진,elle.co.kr :: | :: 엘르,화려한,야경,미디어,서울

Profile전진삼은 건축비평가로 격월간 건축리포트 발행인 겸 광운대 겸임교수다. 1960년 생. 최근 네 번째 비평집 『건축의 마사지 1, 2』를 냈다. 1980년 6월, 시 를 월간 시문학에 발표하면서 등단한 시인이다. 건축여행-미디어아트의 전진기지서울역 앞. KTX역사를 빠져 나오는 사람들이 잠시 멈칫 거리며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저녁 8시, 퇴근 길 서울시민들의 시선도 서울스퀘어의 거대한 미디어캔버스가 보여주는 장관에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이 건물 전면 벽 가로 99미터, 세로 78미터 판에 4만2000개의 LED(발광다이오드)조명등으로 이루어진 초대형 미디어판이 뿜어내는 영상이 저들의 발걸음을 묶어놓은 것이다. 미디어아티스트 줄리앙 오피의 그리고 동계열의 한국작가 양만기의 의 작품이 번갈아 올려졌다. 현상설계 당시 이미 미디어캔버스의 디자인 의도를 건축디자인에 반영시킨 건축가 김정임(42, 아이아크 파트너 소장)씨는 개보수과정에서 미디어아트와 관련한 미술계 인사들과의 연속 미팅을 통해 이것이 전 세계 미디어아트페스티벌의 코어로 기능할 수 있겠다는 확신과 종국엔 미디어아트의 메카로서 우월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득 안데르센의 동화가 떠올랐다. 유난히 크고 보기 싫게 태어난 오리새끼 한 마리가 세상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기나긴 터널을 통해 어느 날 공중을 날 수 있게 되면서 자신이 미운 오리새끼가 아닌 아름다운 백조의 새끼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동화는 마치 대우센터빌딩의 개보수를 맡은 건축가가 경험한 우여곡절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크다. 대수선을 전제로 추진했던 디자인이 행정제재로 물거품이 되면서 사무소에서조차 내놓다시피 한 프로젝트를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건져 올리는 과정이 그랬다. “사실 처음의 현상설계안은 건물의 볼륨이 너무 큰 것을 의식하고 있었으면서도 튀는 디자인으로 일관했어요. 그대로 되었다면 당장은 눈길을 끌었겠지만 시각적 폭력성의 위험은 이전의 대우센터빌딩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서울스퀘어는 건축의 존재감을 일깨우면서 미디어아트의 현대성을 접목시켜 시민사회 일원에게 누적도시의 가치와 미래도시의 예감을 동시에 가져다 주었다는 점에서 상찬할 만하다.초대형 미디어캔버스로 인해 또 하나의 ‘세계최대’ 수식어를 서울시에 선사한 서울스퀘어. 이 건물의 특이점은 사실 건물외부의 스킨(표면)에만 국한시킬 일이 아니다. 건축가는 개보수 과정에서 이 건물의 감춰진 공간 요소들을 속속 드러냈다. 공간그룹의 창립자 김수근(1931∼1986)선생의 지하아케이드 벽돌벽면 일부를 시간의 흔적으로 남겨놓았고, 높은 담장으로 인해 시민 다수의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던 북서측 선큰 정원을 공공의 품으로 돌려놓았다. 건축의 과정은 언제나 공공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과정이란 묵계를 이 건물이 잘 보여주고 있음이다. 건물 내에 설치한 많은 미술품과 건축가의 디자인 감각을 느낄 수 있는 1층 메인 홀 등 인테리어 디자인의 요소까지 새로 단장한 이 건물로 인해 한동안 서울은 ‘디자인의 말들’로 시끌벅적할 것이 예견된다. 시간여행-1970년대 서울의 현관옛 대우센터빌딩의 출발 기점은 이렇다. 대지가 속한 동자동 일대가 1968년 2월 서울역 앞 불량지구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된 것을 전후로 서울역 근대화 및 서울도시계획사업의 용역이 발주되고 1971년 철도청에 의해 교통센터빌딩(동부역사 기능)으로 건립되면서부터다. 신축대지는 철도청이 현물출자하고, 공사비는 당시 교통부 산하 기업들과 외국자본의 차입금으로 추진된다. 이 건물의 건립목적 중 눈에 띄는 대목이 있는데, ‘도시현관으로서 입지적 표현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건물외관의 경우, 당시 국내 건축기반과 기술의 총화로 시대감각을 반영시킨다고 하며 ‘현대식 건축양식’일 것을 주문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지하 2층, 지상 23층, 3만 평 규모의 철골조로 기준층 기준 전면길이 100미터, 측면 폭 36미터의 건물로 탄생한 것이다.흥미로운 것은 당시의 건립추진보고서(철도청, 1972)에 현재의 옛 서울역사와 지하로 연결하는 1만 1천 평이 넘는 대단위 지하대합실 및 점포 공간이 장기계획으로 수립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또한 당시 도심 내에 고층 건물 건립 붐을 타고 공급과잉에 의한 입주희망자 모집에 곤란을 겪고 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데 공사비 확보에 난항을 겪고 있던 교통센터빌딩은 준공이전에 저층부 4층까지 제한적으로 입주사용하기도 했다. 그것이 71년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보고서는 건물의 본격적인 사용에 앞선 시기에 임대 등 수익성 저하 예측으로 건물의 매각에 대하여도 진지하게 검토한 바 있음을 확인해주었다. 그런 정황에 근거해 이 건물은 사업 확장의 기로에 서있던 대우그룹의 김우중 전 회장에게 매각되었고, 김 회장의 주도 하에 대우센터빌딩으로 1976년 세상에 등장했다. 건물의 태생이 특정기업의 목적에 부합한 것이 아니었던 까닭에 이후에도 크고 작은 개보수가 이어지는데 1986년에 이르러 대우그룹은 대대적인 개보수계획을 검토하게 된다. 세계무대를 선점한다는 그룹의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미래지향적인 건물로 만들어야 한다는 방안이 집중 논의되었던 것이다. 그런 배경 하에 이루어진 1990년대 초반 공사도 개보수에 의한 내부공간의 변화를 주는 선에서 그치게 되었다. 70년대 후반 이 일대의 건축사업시행 시 부과하기로 한 기반시설부담금 등이 짐이 되었을 성싶다. 눈여겨볼 것은 대우센터빌딩 지하층에 김수근 선생이 관광아케이드 인테리어작업을 수행한 바 있고, 수차례 이어진 이 빌딩의 개보수작업에 서울건축을 이끌던 김종성(1935∼)선생의 손길이 묻어있다는 것이다. 김종성은 힐튼호텔 등의 설계가 인연이 되어 오랜 동안 대우그룹과 밀착되어 다수의 동 그룹계열사 오피스를 설계한 건축가로 김수근, 김중업과 함께 1세대 한국현대건축의 리더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공간여행-폭력적 정면성에 저항한 건축“어? 외벽 청소를 그리 오래 동안 했던 건가요?” “정말 다행이에요. 사라지는 줄로만 알았어요. 이전처럼 제 자리를 지켜주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대체로 이 건물, 서울스퀘어가 공사장 가림막으로 닫혀 있을 때, 지나가는 행인들은 한국고도성장시대의 상징이자 세계화를 선창하던 대우그룹의 성공신화와 몰락의 생생한 현장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었다. 그런데 1년 10개월간의 개보수공사를 마친 이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이는 건물의 외관으로부터 아이러니하게도 안도의 한숨들을 내쉬었던 것. 옛 대우센터빌딩의 무지막지한 볼륨의 정면성과 외관의 경직된 디자인이 도시공간의 흉측스러운 오브제로 각인되어 온 것은 오래 전부터의 일이다. 그것은 종종 서울역에서의 남산을 향하는 시선을 막고 서있는 개발독재시대의 산물로도 인식되어왔다. 그러했기에 도로 하나를 사이로 건립된 김수근 선생의 유작, 옛 벽산125빌딩은 마치 웅크리고 앉은 곰의 등허리를 건물의 정면성으로 제안하고 있다. 설계를 담당했던 건축가였던 장세양(1947∼1996)은 벽산125빌딩이 어떻게 하면 대우센터빌딩의 폭력적인 볼륨감에 대항하며 건물의 존재감을 살릴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런 이유로 대우센터빌딩의 강력한 직선체계와 반대로 복잡한 계산을 통한 곡률의 구불구불 흐르는 입면의 선을 주무기로 도입했고, 건물의 높이에도 여러 개의 단차를 두었으며, 외장재 또한 은회색 알루미늄 패널을 적용하며 최대한 건물 자체의 볼륨감을 억제시키면서도 당당한 건물을 짓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로 탄생한 벽산125빌딩은 스케일의 분절을 통해 건축공간의 휴머니즘을 완성시키려 노력한 김수근 선생의 유작으로서 남을 수 있었다. 이 지점에서 지금의 장대한 병풍건축이 초대형 미디어캔버스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제도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서울시는 2001년 ‘도심재개발기본계획’에서 ‘도심의 건물이 조망을 차단하는 것을 방지하고, 시각적 개방감을 확보하기 위해 과도하게 넓은 성냥갑 모양의 판상형 건축물을 지양한다’는 목표아래 10층 이상의 고층부에 대해서 건물의 가로와 세로가 50미터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이후 2004년에 이르러 앞의 기본계획이 ‘도심 및 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으로 바뀌면서 50미터가 55미터로 조금 완화되었다. 그 바람에 2000년대 서울 도심에 지어지는 고층건물들은 종종 쌍둥이 타워의 형식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제가 없진 않다. 동전의 양면과 같이 거대한 건물이 던지는 시각적 부담감은 줄어든 대신 서울 시내 고충건물들에서 또 하나의 기이한 변종을 양산하는 우를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건축가는 대우센터빌딩이 가진 현재의 거대한 볼륨과 장폭의 외관이 그 자체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현대한국건축의 역사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런 연유로 이 건물이 지닌 과도한 크기의 판상형 고층건축의 특징이 한 시대를 증거하는 특이성으로 남을 수 있었다. * 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1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