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걸으며 천천히 그 풍경과 기운을 담을 수 있는 곳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의 찰진 도시 런던과 파리를 오가며 상기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면 그 들뜬 에너지를 토닥거려줄 두 곳의 도시가 기다리고 있다. 느리게 걸으며 천천히 그 풍경과 기운을 담을 수 있는 곳. 바로 에딘버러와 도빌이다.::웅장한, 견고한, 멋이있는, 영국,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도빌, 여가, 휴식, 여행, 일상, 스카치 위스키, 엘르, 엣진, elle.co.kr:: | ::웅장한,견고한,멋이있는,영국,스코틀랜드

에딘버러, 공존의 길을 걷다 에어 프랑스(www.airfrance.co.kr) 미니 제트기 창으로 빼꼼히 내려다본 에딘버러는 흥미로웠다. 생각했던 것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그것은 바로 논리적 아름다움이다. 자연과 건축, 전통과 현대가 꼭 끼워 맞춘 듯 잘 조립돼 있었다. 어릴 적 방 안에서 레고 블록으로 그려냈던, 막연한 과거가 펼쳐내는 판타지를 그대로 옮겨놓았다. 잿빛 돌길에 두 발을 옮긴 순간 세기를 거치며 도시가 견뎌냈을 풍화가 체온으로 전달된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선 비가 뚝뚝 떨어진다. 내리는 비도, 비를 맞는 이들도 요란스럽지 않다. 아삭아삭한 얼음 셔벗에 막 스푼을 올릴 때의 기분처럼 차갑고 청명한 공기가 도시를 감싼다. 이곳의 하늘과 가장 가깝게 맞닿아 있는 에딘버러 성의 아침도 물기를 머금었다. 다시 젖은 돌길을 따라 오르고 또 오른다. 뿌리 깊은 역사가 요새와 같이 견고한 성 안에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절벽 위에 있는 성 안에선 조금 더 생생하게 성 밖의 에딘버러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말이 없는 회색 빛 바다와 HDTV보다 더욱 명쾌한 푸르름을 드러내는 곳곳의 공원. 에딘버러는 현명하게 보낸 젊음을 천천히 회상하는 노인과 같다.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이 도시엔 시간의 궤적이 그대로 담겨 있다. 에딘버러의 현재는 과거와 함께 그 모습을 드러낸다. 총천연색의 자동차와 간판, 광고물들이 무채색 도시와 대비를 이룬다. 둘은 그대로 공존하며 마구 뒤섞이지 않는다. 근사한 저녁식사를 즐긴 러틀랜드 호텔(The Rutland Hotel, www.therutlandhotel.com) 레스토랑도, 하룻밤을 묵은 말메종 호텔(Malmaison Hotel, www.malmaison-edinburgh.com)도 그랬다. 경건하고 엄숙한 고딕풍 건축물 안에서 가장 세련된 방식의 스타일을 맛보는 식이다. 은근한 조명만이 어둑한 거리를 비추는 밤, 러틀랜드 호텔의 레스토랑은 그 ‘시크한’ 속살을 마음껏 드러낸다. 레드와 블랙 컬러의 호화로운 인테리어와 어우러지는 신선하고 새침한 지중해식 요리는 쉽사리 젠체하지 않는 에딘버러의 또 다른 이면을 경험하는 코스 중 하나다. 게다가 5시30분까지 오픈 하는 점심 코스 요리는 9파운드에서 13파운드로 꽤 저렴하다. 에딘버러의 논리적 아름다움은 미각에도 살아 있다. 채식 전문 레스토랑인 헨더슨(Henderson Restaurant, 94 Hanover Street Edinburgh EH2 1DR)은 이 도시의 ‘맛과 멋’을 압축해 놓은 곳이다. 1962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47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낮은 천정 아래 고풍스런 촛대로 장식된 소박한 탁자들이 옹기종기 자리를 잡았다. 젊은 이부터 노인까지 신선한 유기농 재료로 만든 음식들을 즐긴다. 샐러드와 커리를 비롯한 주메뉴도 메뉴지만 이곳의 알짜 메뉴는 과일 주스다. 입 안에서 알갱이들이 간헐적으로 터지는 걸쭉함을 맛보고 있노라면 그간 섭취해온 케케묵은 카페인의 체증이 내려가는 신기를 경험할 수 있다. 이곳의 모든 음식들이 그렇다. 순도 높은 재료의 맛을 살리는 것이다. 비스트로와 함께 운영되는 델리에선 유기농 야채와 샐러드 등을 판매하며 베이커리에서는 아삭한 핸드메이드 빵을 맛볼 수 있다. 고집스럽게 지켜오고 있는 ‘헨더슨 가’의 전통 또한 어김없이 에딘버러의 현대와 만난다. 비스트로 안에서는 젊은이들을 위한 공연이 지속적으로 진행되며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헨더슨 갤러리도 운영 중이다. 에딘버러는 이렇듯 시간이 공존하는 도시다. 음산하고 무뚝뚝한 원형 속엔 스코틀랜드인의 뜨거운 현재가 흐른다. 자갈이 메워진 좁은 골목길을 오르고 내리다 보면 이들의 조화로움에 흠뻑 취하게 된다. 에딘버러 성에서 웨벌리 역으로 내려오는 길, 걸음을 멈췄다. 킬트를 입은 젊은 남자가 장엄한 도시의 풍경을 뒤로한 채 백파이프 멜로디를 뿜어낸다. 먹먹했던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조금씩 화사하게 빛을 낸다. 그때, 에딘버러는 시시각각 자세를 고쳐 앉는 귀부인처럼 또 다른 매력을 드리우고 있었다. 1 시간의 퇴적을 보여주는 에딘버러 성의 외벽은 도시의 압도적 풍경을 만들어낸다.2 ‘러틀랜드 호텔’ 레스토랑 내부. ‘스코티시 호텔 오브 더 이어 어워즈’에서 가장 흥미로운 레스토랑으로 선정됐다.3 차가운 바람을 가르며 도심의 전경을 만끽하려면 이층버스가 제격.4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의 공식 레스토랑 ‘헨더슨’ 2층의 갤러리. 도빌, 여백의 길을 걷다도빌은 덤덤하고 평온하다. 작심하고 만들어진 휴양지임에도 빽빽히 구겨 넣기보다는 비워 놓은 구석이 많다. 잰걸음으로 하루 정도면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작은 도빌은 파리지앵들이 가장 즐겨 찾는 휴양지 중 하나다. 파리 생 라자르(Paris Saint-Lazare) 역에서 기차로는 두 시간, 도빌(Trouville- Deauville) 역에서 시내까지는 도보로 7-8분 거리다. 발길 닿는 곳이 목적지가 되는 셈이다. 대서양을 끼고 있는 도빌 해변에 다다르면 왜 이곳이 ‘비움의 도시’인지 알게 된다. 위협적이지도, 달콤하지도 않은 도빌의 바다는 체온과 같은 온기로 이방인을 맞는다. 유난히 길고 넓은 백사장은 천천히 바다와 맞닿을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한다. 태평양 여느 섬들의 법석스러운 ‘웰컴’과는 다르게 너그럽고 차분하다. 명물로 자리 잡은 원색의 파라솔만이 살가운 표정을 드러낸다. 그래서일까? 도빌의 해변엔 트로피컬 프린트의 선드레스 보다 보더 스트라이프 티셔츠에 와이드 팬츠 차림이 더 어울린다. 시내 중심가에선 이런 차림의 여행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루이 비통과 에르메스, 랄프 로렌 등의 부티크가 줄줄이 이어지는 거리다. 콧대 높은 브랜드 에르메스도 도빌에선 그저 도시의 일부일 뿐이다. 노르망디 양식의 소박한 목조 건물에 자리 잡은 숍은 브랜드 로고가 아니라면 도빌의 호텔과 식당, 가정집과 전혀 다른 구석이 없다. 넓디 넓은 골프장을 갖춘 사성급 호텔 골프 바리에르(Hotel du Golf Barriere, Le Mont Canisy BP 63500 Saint-Arnoult 14803 Deauville Cedex FRANCE)도 마찬가지. 소녀의 말간 얼굴 같은 소박한 창문엔 색색깔의 꽃들이 손을 내밀 뿐이다. 욕망조차 아련하게 포장되는 도빌은 오후 3시를 닮은 도시다. 최대치의 나른함이 허용되는 시간. 도빌의 하루는 그렇게 지속된다. 천천히 먹고 마시며, 여유롭게 거니는 일이 반복된다. 3시간 여의 장기전(?)을 치렀던 레스토랑 레성시엘(L’Essentiel, 29-31, rue Mirabeau Tel : +33 (0)2 31 87 22 11)에서의 점심식사는 그 정점을 찍는다. 코르동 블루 출신 한국인 셰프 김미라 씨와 그녀의 피앙세 두이앙이 운영하는 이곳은 아시아와 프랑스 요리의 풍미를 동시에 선보인다. 직접 한국과 일본 등지에서 구한 재료를 사용하는 정성은 간단한 요리에서도 깊은 맛을 느끼게 한다. 또 운이 좋다면 라면과 짜파게티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타지 음식에 지친 한국 여행객을 위로하는 셰프 부부의 배려로 일행들은 밤 11시에 다시 이곳을 찾았다). 느리게 걷기의 천국 도빌. 하지만 폼 나는 여흥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잭팟’이 기다리는 카지노 바리에르(Casino Barriere, 22 rue Edomond Blanc, www.lucienbarriere.com)로 발걸음을 옮긴다. 350개의 슬롯 머신과 클럽, 영화관을 갖춘 이곳은 ‘씬 시티’의 환락보다 왕국의 우아함에 가깝다. 카지노 입구 쪽에 자리한 O2 sofa bar의 붉은 커튼과 보랏빛 소파는 홀로그램 빛깔을 내는 칵테일과 어우러져 매혹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다양한 종류의 핑거푸드와 산소 흡입기는 꿀맛 같은 휴식을 부추기는 이곳만의 특별 서비스다. 어느덧 도빌의 태양이 지고 있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처럼 이 풍요의 땅은 지금의 안락함을 약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장르를 막론하고 매달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지는 건 그 때문일 거다. 9월의 아메리칸영화제에 이어, 2월엔 푸드 페스티벌이 개최된다. 시드르(탄산이 섞인 사과주)와 치즈 맛이 끝내주는 도빌을 다시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다. 큰맘 먹지 않아도 기꺼이 반겨줄 곳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1 커다란 몰 같이 평온한 도빌의 거리. 동선이 크지 않아 여유로운 여정이 가능하다.2 동화의 집으로 오세요. 도빌의 온기는 루이비통마저 나긋나긋하게 만든다.3 도빌 거리 곳곳에는 탐스럽고 풍성한 꽃들이 있다.4 도빌 해변의 원색 파라솥. 여름철의 만개한 모습보다 더 인상적이다.*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