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선택의 제1원칙으로 대도시의 익명성과 편리함, 거기에 이국적인 분위기 한 스푼을 원한다면 지금 시점에서 방콕 만한 곳을 찾기 힘들다. 주변에 백화점과 전통 시장이 함께 있어야 하고, 교통도 편리해야 하며, 식음료의 맛이 어느 정도 보장되고, 숙소가 지나치게 낙후되지 않은 여행지를 꼽는다면 그건 방콕이다. 즉, 절대 도시를 떠나 살 수 없는 도시 태생의 시민들에게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곳이란 뜻이다.

수완나품 공항에 내려 40분 가량 차를 달리면 방콕의 중심지인 스쿰빗에 도달한다. 이곳은 그야말로 호텔 천지다. 글로벌 체인부터 로컬 브랜드까지 고층 호텔이 즐비하다. 그렇기 때문에 호텔의 서비스나 객실 컨디션은 대개 상향 평준화돼 있다. 아무 데나 골라 잡아도 중간은 가지만, 미세한 차이를 비교하면 더 편하고 즐거운 여행이 가능하다.
그 수많은 호텔 중 이번 여행에서 묵게 된 곳은 메리어트 마르퀴스 퀸즈파크였다. 우선 시내 인기 관광지와의 접근성이 거의 압도적 수준이다. 도보 10분 거리 내에 없는 것이 없고, 조금 욕심내서 걷는다면 더 많은 걸 보고 즐길 수 있다. 무려 1287개의 일반 객실과 101개의 스위트룸을 보유한 이 호텔은 모던한 분위기 속에 조명과 도자기 등의 소품을 비치해 현지의 느낌을 가미했다.

딱히 바깥 음식을 먹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는 레스토랑들도 메리어트 마르퀴스 퀸즈파크의 장점이다. 먼저 아침에는 로비층의 올데이 다이닝 레스토랑 고지 키친&바(Goji Kitchen & Bar, 이하 고지 키친)에서 조식을 즐길 수 있다. 뷔페와 단품 요리가 고루 마련된 고지 키친에서는 즉석에서 면을 삶아 제공하는 쌀국수와 재료를 아끼지 않는 오믈렛을 반드시 먹어야 한다. 찰기부터가 다른 베이글로 커스텀 샌드위치를 만들 수 있는 파트도 있다.



로비층의 시암 티 룸(Siam Tea Room)에서는 깔끔한 태국 현지식을 맛 볼 수 있다. 특히 피쉬 소스로 맛을 낸 볶음밥과 팟타이가 별미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태국 북부 언덕에서 생산되는 고급차와 디저트를 먹을 수 있는데, 동남아시아 지방에서만 나는 과일 산톨(Santol) 셔벗을 추천한다.

산톨 셔벗





이 밖에도 광둥식 고급 중식 요리가 있는 4층의 파고다(Pagoda)나 최상층의 아키라 백(Akira Back)을 찾는다면 멋진 식사가 가능하다. 또 방콕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루프탑 바, 에이 바(A Bar)에서 전문가들이 엄선한 진(Gin) 베이스 음료들을 마시며 야경을 즐길 수 있다.

'더 큐리어시티 룸 바이 테드(The Curiosity Room by TED)'
메리어트 마르퀴스 퀸즈파크에서 했던 가장 특별한 경험은 '몰입형 객실' '더 큐리어시티 룸 바이 테드(The Curiosity Room by TED)'다. 우리가 잘 아는 그 지식 강연회 테드(TED)와 메리어트 호텔이 협업해 만든 이 객실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태국 방콕, 영국 런던에만 있다. 쉽게 말하면 방 탈출 게임과 비슷한 체험을 할 수 있는데, 객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퍼즐을 맞추는 듯한 색다름이 느껴진다.



테드의 교육 프로그램인 테드-에드(TED-Ed)의 손길이 닿은 만큼 매우 지적인 문제들이 가득하고, 예상치 못한 곳에 힌트가 존재해 즐거움을 안긴다. 총 4명이 객실에 놓인 '큐리어시티 저널(Curiosity Journal)' 안의 힌트를 보며 초 집중 상태로 1시간 반 가량 문제를 풀었으니 간단하지는 않지만, 뜻밖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는 체험이다. 그렇다고 체크인과 동시에 문제를 모두 풀지 못하면 나올 수 없는 시스템은 아니니 안심하고 투숙하는 1박2일 동안 천천히 게임을 즐겨도 된다. 도전을 마친 투숙객에게는 수료증과 호텔 레스토랑의 무료 디저트가 제공된다. 호텔 객실이니만큼 하루에 한 팀 밖에 이용할 수 없으며, 올 11월15일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한다고 하니 여행 가기 좋은 가을 연휴 예약을 노려 봐도 좋을 듯하다.

스파는 호텔 안에도 마련돼 있지만, 방콕의 풍경을 보며 산책하다가 불쑥 마사지 숍에 들어가 피로를 푸는 것도 여행의 우연한 즐거움 중 하나다. 아무리 고급스러운 스파여도 한국과 가격을 비교하면 천지 차이니 한 번은 방문을 권한다. 현지인도 혀를 내두를 만큼 압이 강한 타이 마사지를 받고 나면 귀 밑까지 올라온 승모근이 말랑해져 내려가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렇게 '1일 1마사지'까지 달성하고 나니, 리조트의 조용함보다는 도시의 백색 소음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비로소 방콕을 추천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