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에 움튼 모더니즘, 간송미술관 다시 살피기.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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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에 움튼 모더니즘, 간송미술관 다시 살피기.

낡은 것은 고치고 덜 갖춘 곳은 기워낼 것이다. 6월 5일까지 열리는 <보화수보> 전을 끝으로 간송미술관이 길고 긴 치유의 시간을 갖는다.

이경진 BY 이경진 2022.05.25
 
칠이 벗어지고 녹슬었지만 가지런한 건축적 질서가 드러나는 외관. 둥근 부분은 비공개 영역인 미술관장실이다.

칠이 벗어지고 녹슬었지만 가지런한 건축적 질서가 드러나는 외관. 둥근 부분은 비공개 영역인 미술관장실이다.

계단은 두 종류의 회백색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계단은 두 종류의 회백색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2014년 가을 이후 7년 6개월 만에 재개관한 간송미술관의 전시 〈보화수보-간송의 보물 다시 만나다〉(이하 〈보화수보〉). 소담한 1층 전시실을 메운 유구한 보물 사이에서 ‘삼일포’를 보게 됐다. 18세기 조선후기 화가인 현재(玄齋) 심사정이 금강산의 실경을 그린 그림이다. 높이와 너비가 27.6cm, 30.8cm인 작은 한 폭에는 스승이자 ‘진경산수화’로 독창적인 화풍을 이룬 겸재 정선의 영향이 뚜렷하다는 평도 따른다. 하늘빛 색지 바탕에 그려진 고즈넉한 장면 위로 하얀 눈송이가 흩날린다. 옛 강가의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 다소곳하고 잠잠한 겨울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시선을 내려 작품 설명을 읽고 머리가 번쩍했다.  ‘충식(蟲蝕)으로 인해 마치 눈이 내리는 모습처럼 보여…’ 눈송이인 줄 알았던 흔적이 벌레 먹은 자리로 더해진 낭만적 정취였던 것이다. 충식의 흔적도 오랫동안 뭇사람들에게 그림의 일부로 인식돼 왔기에 보존 처리 시 결손부를 모두 메우지 않고, 바탕색과 완전히 색을 맞추지 않은 채 남겨두었다고 한다. 오랜 시간을 살아낸 보물에는 항상 놀라운 이야기가 숨어 있다.
 
담쟁이덩굴이 벽을 탄 흔적.

담쟁이덩굴이 벽을 탄 흔적.

이제는 희귀한 창틀.

이제는 희귀한 창틀.

금속을 꼬아 만든 유리창. 1938년부터 지금까지의 세월이 남긴 자연스럽고 낡은 운치.

금속을 꼬아 만든 유리창. 1938년부터 지금까지의 세월이 남긴 자연스럽고 낡은 운치.

간송미술관은 2020년부터 문화재청의 ‘문화재 다량 소장처 보존관리 지원사업’을 통해 소장 유물 중 비지정문화재 5건 142점을 보존 처리하고 280여 점을 예방적 관리 차원에서 정비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이 중 향후 지정 가치가 높고 작품성이 뛰어난 문화재 8건, 32점을 공개한 전시가 바로 이번 전시 〈보화수보〉다. 아득하게 오랜 유물의 미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지속해 온 노력의 연장선으로 간송미술관은 또 하나의 거대한 보수 계획을 목전에 두고 있다. 전시를 마친 뒤에는 미술관이 지닌 보물 중 가장 큰 규모인 이 건축물, 간송미술관의 ‘하드웨어’를 대대적으로 보존 수리한다. 80년 넘는 시간 동안 수장과 연구, 전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세월에 풍화된 건물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다.
 
보존 수리한 소장 유물이 전시된 1층.

보존 수리한 소장 유물이 전시된 1층.

심사정의 ‘삼일포’.

심사정의 ‘삼일포’.

2층의 둥근 공간은 고스란히 1층 출입구의 천장이 된다.

2층의 둥근 공간은 고스란히 1층 출입구의 천장이 된다.

담백한 간송미술관의 전면 외관.

담백한 간송미술관의 전면 외관.

설립자인 간송 전형필 선생이 이곳에 보물을 들인 사연을 헤쳐보면 가슴이 저릿하다. 당대 최고의 고미술 감식가였던 위창 오세창을 만나 본격적으로 안목을 키운 그의 문화재 수집 열정은 상상을 초월했다. 미곡상이었던 부친이 물려준 막대한 재산으로 한국의 문화재를 수집했는데, 일본인에 의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고자 수집한 문화재 중에는 일제강점기인 1942년, 안동에서 기와집 열 채를 살 수 있는 거금을 주고 일본인의 눈을 피해 구입한 〈훈민정음〉 해례본도 있다. 간송의 수집품 중 10여 점 이상이 국보다. 그는 1932년 고서점 ‘한남서림’을 인수해 고서화 수집의 기지로 삼고, 1934년에는 성북동의 부지를 매입해 ‘북단장’을 지으며 본격적으로 문화재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38년, 북단장 안에 보화각(寶華閣)을 설립하고 심혈을 기울여 모은 문화재를 이곳에 보관하기 시작했다. 보화각은 간송미술관의 옛 이름이다. 모더니즘 양식의 2층 콘크리트 건물로 지어진 보화각은 1932년 종로에 박길룡건축사무소를 개업한 1세대 근대건축가 박길룡이 설계한 모습을 지금껏 간직해 왔다. 단순한 형태와 장식의 배제, 수평성의 강조, 평지붕 사용까지 한국에서 처음 움트기 시작한 모더니즘 건축을 간송미술관에서 엿볼 수 있다. 박길룡의 건축관은 작가 김소연의 책  〈경성의 건축가들〉에 이렇게 묘사되기도 했다. “(박길룡은) 장식을 배제한 기능주의 미학 등 기술의 진보를 표현하는 구조와 재료, 공업화와 산업화로 이룬 생산 시스템 등 모더니즘 건축을 구성하는 요소에 반했다.” 박길룡의 이름을 널린 알린 경성의 명물 ‘화신백화점’처럼 간송미술관 역시 그 시대의 현대성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그러나 수직적인 서양의 고전주의 양식을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짓고 1층 쇼윈도는 화강석으로 두른 화신백화점과 달리 보화각의 외관은 수평적이고 수수하다. 바우하우스 건축의 선과 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준공 당시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대리석으로 지었다는 회백색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랐다. 대리석 계단은 보화각의 소박한 외관과 상반되게 묵직하고 당당한 인상을 주면서도 건물에 조화롭게 스며든다.
 
〈보화수보〉전에서 2층 전시실은 진열장을 비운 채 관람객에게 공개됐다.

〈보화수보〉전에서 2층 전시실은 진열장을 비운 채 관람객에게 공개됐다.

보화각의 개보수 프로젝트를 담당한 학예연구사는 얼마 전 창고에서 대리석 조각 몇 개를 발견했다. 인테리어 재료의 샘플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건물 1, 2층을 잇는 계단은 두 가지 종류의 회백색 대리석으로 이뤄졌는데, 이는 총 일곱 개의 대리석 샘플 조각 중 3번과 4번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고 한다. 개중에는 검은색 혹은 금색이 섞인 조각도 있었다. 보화각이 은은한 회백색 계단 대신 화려하게 반짝이며 위용을 자랑하는 계단을 가질 확률은 과연 얼마였을까. 계단을 자박자박 오르니 오랜 마찰로 반질거리는 마룻바닥 위에 18점의 텅 빈 목재 진열장이 배치된 2층 전시장이 펼쳐진다. 이곳은 보수 정비 전 보화각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진열장은 간송 전형필이 오사카 상점에 주문하고 중국 상하이에서 제작해 들여온 것인데, 이번 전시 후에는 몇 점만 남겨두고 보화각 옆에 신축된 수장고로 들어간다. 2층의 3면에 난 길쭉한 직사각형의 창문 중 얇은 금속을 마름모꼴로 꼬아 만든 창문 틀 두 점은 미술관 건립 당시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80년 넘는 세월을 살았다. 목재 마룻바닥의 곳곳, 닳고 닳아 색이 바랜 자리는 전시 관람객들의 발길이 만든 동선이다. 희귀한 보물을 더욱 가까이서 보겠다는 열성을 증명하듯 진열장이 놓인 자리를 따라 한 줄로 희끗거린다. 보수 공사를 통해 2층의 한 벽은 엘리베이터 타워가 설치돼 창이 없어지고, 얇은 창틀과 단열재 없는 벽면은 단열 기능을 보강하고 신식 창문을 덧대어 전시공간으로서의 기능을 회복시킬 예정이다. 보화수보(寶華修補). ‘보화’는 보배로운 물건, ‘수보’란 낡은 것은 메우고 덜 갖춘 곳은 깁는다는 뜻이다. 개발에 밀려 사라지는 근대건축물이 얼마나 많았던가. 보화각의 개보수 공사는 전시 제목이 품은 뜻대로 낡은 것은 메우고 덜 갖춘 곳은 기우며 이뤄질 예정이다. 오랜 세월을 산 근현대의 보물이 긴 치유의 시간을 지나 우리 곁에 오래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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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이경진
    사진 김재훈
    디자인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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