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책을 읽지 않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대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한숨 섞인 기우는 사실과 다르다. 그들은 그 어떤 세대보다 열심히, 밑줄까지 쳐가며 책장을 넘기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어떤 책을 읽고 있느냐다.::ivory, red, saddlebrown, 서재, 방, 서점, 독서, 가을, 겨울, 엘르, 엘르걸, 엣진, elle.co.kr:: | ::ivory,red,saddlebrown,서재,방

“나쁜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좋은 책을 읽기 위한 조건이다. 인생은 짧고, 시간과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불세출의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독서관을 이렇게 정리했다. 그가 만약 대한민국의 2009년에 살아 돌아와 대학 도서관 대출 리스트를 본다면 뭐라 말했을까? 아마도 김구라식으로 있는 독설, 없는 독설을 마구잡이로 내뱉었을지 모를 일이다. 얼마 전 발표된 대학 도서관 리스트에는 단 한 권의 인문교양서도 랭킹되지 않았다. 리스트를 요모조모 뜯어보면 조금 더 놀랍다. 고려대는 1위와 2위 모두 시리즈이고, 3위는 이다. 이화여대는 1위가 , 2위가 , 3위가 로 말랑말랑한 서사의 ‘소설 잔치’를 벌였고, 서강대는 1위가 , 2위가 , 3위가 로 ‘제 9의 예술’인 만화를 당당히 서재의 전당에 등극시켰다. 올 한 해 이십대 젊은이들을 ‘정의’했던 말은 크게 두 가지로 간추릴 수 있다. 제 아무리 노력해도 월수입 백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88만원 세대’ 담론과 자기 언어를 가지지 못한 ‘똑똑한 바보’라는 서글픈 수식어가 그것이다. 어쩌다 이들은 자신의 서재 목록을 판타지와 만화, 그리고 오락이라는 이름으로 가득 채우게 되었을까?불과 10년 사이 ‘텍스트’ 지형도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 내가 스무 살이 되던 해, 1995년 한국에는 영화 비평 월간지 가 창간됐다. 현대 철학의 흐름을 대충이라도 꿰고 있지 않으면 ‘독해’가 불가능했던 이 현학적인 잡지의 글들을 읽으며 꼬리에 꼬리를 물듯 ‘좋은 책들’을 찾아다니는 게 그 때의 유행이라면 유행이었다. ‘현실문화연구’라는 출판사에서 펴내는 같은 책들을 탐독할 때 누군가는 리처드 부라우티건의 가 ‘끝내준다’며 자신의 지성(허영)을 마구 과시했다. ‘재수는 없어도’ 존 업 다이크의 같은 책들을 옆구리에 끼고 있는, 그런 치들이 멋져 보이는 시절이었다. 그때는 대학 평점 2.0을 맞아도, F를 맞아도 상관없는, 그러니까 지적 허영이 스펙보다 훨씬 더 ‘먹어주는’ 시절이었으니까. 어떤 영화를 보고, 누구의 시를 읽고, 소설가 아무개가 이래서 좋다는 식의 문화적 취향이 자신을 설명하는 가장 쉬운 방법 중의 하나였다. 모두가 문화 자본을 거들먹거리며 지적 허영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 청춘들이 꽤 많았다. 청춘이란 그런 건 줄로만 알았다. 이런 저런 텍스트들 속을 유영하며 내가 누구인지 찾아가는 철모르는 한 때. 이십대란 시행착오도 하고, 치기도 떨고, 모르는 것도 아는 체 하는 인생의 유일한 유예기간이라 여긴 것이다. 그런데 그 시기에 수업을 꼬박꼬박 듣고, 토익 점수에 목을 매고, 각종 컨테스트에 출전하고, 스펙의 일환으로 ‘봉사’도 부러 하며, 자기 개발서를 탐독해야 하는 이십대들이 등장했다. 이런 팍팍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문화적 취향’이란 어쩌면 배부른 소리에 불과한 것일 게다. 취직하기도 힘든데 사유할 시간이 어디 있냐는, 이들의 푸념소리는 마치 노동자 계급의 부르주아들을 향한 찝찌름한 냉소와 닮은 데가 있다. 출판평론가 장동석은 요즘 젊은이들이 대의가 사라진 시대를 살아가는, 유연함과 가벼움을 동시에 갖고 있는 세대들이라고 말한다. “386세대, 그 이전 세대들은 절차적 민주주의라던가 하는 대의를 이루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고민한 사람들이고, 예비 지식인으로서의 자기성찰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요즘 세대들은 명분이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 그들에게 대의명분이 있다면 취업 경쟁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금의 대학생들은 자기반성보다는 자기개발을 해야 하는 치열한 경쟁의 장에 내던져 있기 때문에 자신의 내면이 아니라 ‘역량’을 보여줘야 하는 존재들이다. 자신의 능력을 수치화해서 증명해야 하는 이들에게 인문교양서는 ‘뜬 구름 잡는’ 배부른 허영일 수도 있다는 거다. 그는 이십대들에게 자신들의 세대를 다룬 우석훈의 와 를 권하면서 와 같은 긴 서사를 가진 대하소설이 인식의 틀거리를 제시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의 하나라고 소개한다. 그가 또 하나 제시하는 책 읽기의 좋은 방법은 유시민의 다. 모두가 빼어난 고전인데, 정작 읽어보지 않은 책들을 유시민의 언어로 풀어준 이 책은 그들의 숨통을 풀어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권한다. 장동석이 추천책을 통해 지적하듯 이십대들의 독서 경향 중 하나는 수동성이다. 베스트 셀러니까, 상을 받았다니까, 하루키라서 읽는 것도 이들의 독서 경향 중 하나다. 웅진지식하우스 논픽션임프린트 권은경 편집장은 이십대가 스펙 경쟁의 결과로 스스로 책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퇴화됐음을 지적한다. “스스로 책 고르는 능력이 부족해졌다고 볼 수 있죠. 유명 포털 사이트 파워 블로거가 추천한 책을 읽는다던지, 상을 받은 사람들을 맹신하든가 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는 이십대들이 유명작가, 베스트셀러, 수상작 등 ‘타이틀’에 집착한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타이틀이란 실패할 확률이 적을 것 같은, 그러니까 이 또한 일종의 시간 경쟁의 결과인 셈이다. 권은경 편집장은 편집자 생활을 하면서 의외의 히트를 쳤던 책으로 안은영의 를 꼽는다. “잡지의 한 컬럼으로 소비될 수준의 내용이 몇십만 부 판매를 기록하는 베스트 셀러가 됐을 때 놀랐죠. 이 책을 이십대 초, 중반 여자들이 많이 구매했는데, 독자들의 독서 성향이라든가 수준을 가늠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죠.” 그는 이십대들이 웬 만해서는 ‘긴 글’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터넷 스크롤에 익숙한 세대들임을 알고 있기에 저자들에게 “쉽게 풀어 써 달라는” 주문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이십대들에게 추천하는 책은 세상의 가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와 박노자의 이다. 그는 이 책들이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키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이야기한다. “두 책 모두 자신을 둘러싼 사회와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이를 통해 자신을 바라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 요시모토 바나나를 인터뷰하기 위해 일본에 간 적이 있다. 그 때 요시모토 바나나는 미래의 독서 행위가 ‘소수의 취미생활’이 될 거라고 말했다. 그 때는 독서가 소수의 취미가 된다는 소리에 ‘설마’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를 쓴 소설가 이기호 역시 비슷한 진단을 하는 것을 보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소설가 이기호는 자신의 소설을 읽는 독자층들이 넓지는 않지만 마니아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진짜 독자’라고 이야기하면서 글을 쓰는 자신와 자신의 글을 읽는 독자가 그런 식으로 ‘공생’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영상을 포함한 대체 텍스트가 풍부한 지금 이 시대에, 어쩌면 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지적 사유를 종횡단하는 인문과학서라고 하는 ‘어려운’, 혹은 ‘독특한’ 책들은 그런 방식으로 자생할 가능성이 높다.이는 다시 이십대의 문제로 되돌아와 이들이 만약 작가가 되었을 때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느냐로 환원된다. 출판평론가 장동석은 문학계에 대한 전망도 위와 비슷한 맥락에서 진단한다. “신경숙과 공지영과 같은 거대한 아우라를 가진 ‘별’들의 탄생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행성에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하는 작은 작가들을 만나게 될 겁니다.” 사회과학서로서는 믿기 힘든, 11만부라는 초대박을 기록한 우석훈이 이십대에게 우려하는 것도 이것이다. 스펙 경쟁을 하느라 경험이 부재한 것, 이렇다 할 방황을 해보지 못한 것, 자신만의 언어를 가질 여유가 없다는 것. 그래서 그들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선배’ 사회과학서 저자로서 갖는 고민이 깊다. 누구보다 이십대를 향한 연민이 가득한 그가 ‘걸’들에게 추천하는 책은 움베르토 에코의 이다. 그가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에코만큼 공부를 많이 한 학자가 없고, 그러면서도 ‘달달한’ 재치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움베르트 에코라면 아마 쇼펜하우어라도 꼼짝없이 ‘강추’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을 것만 같다.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대학 도서관 대출현황은 사는 책과 빌려보는 책의 차이라고. 그리고 또 누군가는 말한다. 우리가 언제 깊이 있는 책을 읽은 적이 있냐고.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고, 그러니 괜히 이십대들을 빌미 삼아 잘난 척, 있는 척, 걱정하는 척 하지 말라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 이십대들에게 ‘아무도 책을 읽지 않는다’라고 단언하는 것은, 그들이 정말 책을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쓸모’와 ‘무쓸모’의 경계 속에서 가려 읽고, 그러는 가운데 자신만의 언어를 갖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들은 누군가 명명한대로 끌려 다니는, 기껏해야 파워 블로거에 의존하게 되는 피동적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 아무도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종내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김애란과 같은 젊은 작가들이 그들의 언어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좀 더 풍성하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중졸의 서태지가 문화혁명을 일으켰듯이 스펙경쟁에서 홀연히 벗어나와 출판계의 장풍을 달리는, 거대한 신인을 만났으면 좋겠다. 그 때쯤 88만원 세대 담론과 ‘똑똑한 바보’라는 호명은 끝이 날 것이다. 더 이상 ‘아무도 책을 읽지 않다’라는 기사 따위도 쓰지 않을 것이다. 결국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일어나는 것이다. 독립 칼럼리스트* 자세한 내용은 엘르걸 본지 12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