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HOOD 강영진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연에서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생활공간은 수익성을 우선으로 추구하며 변모했고, 우리는 자연을 접할 수 없는 환경에서 오랜 기간 지내야 했다. ‘틈틈집’은 중정형 배치와 좁고 긴 발코니를 계획해 같이 쓰는 외부공간, 나만의 외부공간을 만드는 데 집중한 프로젝트다. 삶 속에 작은 ‘틈’을 만들어 짧은 시간이나마 자연을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아키후드의 대표적 주거 건축인 ‘서림연가’와 ‘부암동 두 집’에선 공간 곳곳을 다니며 느낄 수 있는 낭만적이고 극적인 인상이 빼곡하다
아키후드의 설계는 늘 대지의 특성에서 시작된다. ‘서림연가’ 대지는 멀리 아름다운 산세가 보였고, 상대적으로 근경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이런 특성을 최대한 이용해 숨기기와 보여주기 방식을 선택했다. 나는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극적으로 건물을 만날 수 있는 동선을 많이 고민한다. 사찰 건축에서 대웅전은 낮은 문을 통과하거나, 높고 좁은 계단을 통해 어렵게 진입하는 길 끝에 있거나, 바로 보이지 않는 자리에 배치돼 극적으로 마주하는 것처럼.

무주의 ‘서림연가’. 울창하고 키 큰 나무들과 수량이 풍부한 계곡, 뒤로 보이는 산까지 주변의 다양한 원경을 살리는 설계에 중점을 뒀다.
소쇄원은 높은 대나무 숲을 통과할 때 일상과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기분이 든다. 그 길을 통과해 마주하는 건물과 자연은 한층 더 아름답다. 피터 줌터는 발스 온천을 계획할 때 편안하게 거닐 수 있는 환경, 지시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유혹하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했다고 한다. 실제로 방문했을 때 건물 안에서 이동하는 동안 본 빛과 어둠, 자연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온천으로 향하는 동네 길도 인상 깊었다. 너와지붕 건물이 길 옆으로 낮게 지어져 있었고, 주변 풍경을 만끽하며 고불고불한 길을 거쳐 건물에 닿았다.
근래 주택 프로젝트로 시도하고 있는 것은
시간이 지나 쓰임을 다한 건물도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많은 주택은 변형이 어려운 벽식 구조다. 다른 필요가 생기면 허물고 다시 짓는다. 자원 낭비다. 그래서 최근에는 주택에 철골구조를 적용해 구조 변화가 가능한 건물을 계획하고 있다.

복정동 셰어 하우스 ‘틈틈집’의 드로잉.
건축은 대지와 만나지 않으면 완성될 수 없다. 그리고 대지는 모두 다른 개성을 지닌다. 대지의 개성과 본질을 잘 파악하는 것이 건축가에게 가장 중요한 감각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집을 설계할 때 사용하는 핵심 언어가 있다면
추억. 집의 추억은 안락함과 연결되는 내밀한 경험이다. 개인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집을 계획할 땐 오감을 열고 그 공간을 경험하며 좋은 추억이 깃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수정원과 중정을 자주 설계하는데, 물은 시각적 · 청각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주고, 중정은 나만의 자연을 편하게 느낄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한 가족이면서 두 가족이 사는 ‘부암동 두 집’. 1층에는 중정, 2층에는 근사한 전망을 몰아주었다.
노을을 좋아하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노을 색이 바다와 산, 건물과 만나는 장면에 언제나 매료된다. 설계한 공간에서 시간 흐름을 느낄 수 있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데 이런 취향에서 온 것 같다.
여성 건축가로서 개인적인 자각
여성 건축가라는 자각보다 건축이라는 행위가 큰 위력을 갖고 환경과 사람을 바꿔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힘이 폭력적으로 발휘되지 않게 노력한다.

외부 환경과 다양한 접점을 만드는 ‘부암동 두 집’의 중정. 네모난 수공간에 하늘이 반사돼 보인다.
설계한 건물을 오랜 시간에 걸쳐 사용해 본 경험이 없다. 생각한 대로 완성됐는지 온전히 알기 힘들어 직접 사용할 건물을 지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든다.
건축적으로 ‘잘 살기’란 무엇일까
건강하게 사는 것. 또한 잘 쉬는 것. 나 역시 신체와 정신을 재정비하며 잘 쉴 수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좁고 긴 길, 풍경의 프레임이 되는 벽. 공간에 난 길을 따라 이동하면 다채로운 장면을 목격할 수 있는 ‘서림연가’.
구보건축 조윤희

구보는 1930년대 도시인 경성을 배회하며 평범한 소시민의 시선으로 도시를 관찰한다. 일상적이고 친근한 도시 관찰기라 마음에 들었다. 건축으로 일상의 가치를 발견하고 주변 사람과 행복을 공유하는 건축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다.
건물의 뒷면과 골목길을 연결하는 등 구보건축의 작품에선 도시와 길, 동네가 어떻게 만나는가에 대한 관심이 읽힌다
내게 좋은 건축은 홀로 빛나는 건물이 아니라 주변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건물이다. 좋은 건축은 좋은 도시를 만드는 기본이 되며, 좋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더 행복할 것이라 믿으며 건축 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소셜스탠다드와 협업으로 시작한 사회주택 ‘청운광산’.
건축과 도시의 관계 맺음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건축이 도시와 만나는 지점을 ‘문지방’이라 이름 붙이고, 특별하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주택부터 공공시설까지 다양한 용도와 규모의 설계를 진행하고 있는데, 주택의 문지방과 주민센터의 문지방이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도 흥미로운 주제다. 건축물은 결국 공공적 속성을 가진다는 것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느낀다.
2021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했다. 여섯 개의 출품작 중 11명의 사회 초년생을 위한 집 ‘청운광산’은 완공과 함께 많은 관심을 받았다
11명의 거주자가 주방과 화장실을 공유하고, 방을 개별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의 공유주택이다. 동시에 머무는 사람은 10명 남짓이지만, 긴 시간을 두고 본다면 수백 명에 이르는 청년들이 이 집에 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단독주택에 비해 훨씬 많은 사람이 경험하는 집을 설계한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특히 그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젊고, 좋은 집에서 살아볼 기회가 더 적은 세대라 간절한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 빠듯한 공사비와 제한된 면적에서 더 좋은 재료, 더 좋은 공간, 더 좋은 비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긴 시간 동안 다양한 사람들이 좋은 삶을 만들어나가는 토대가 됐으면 한다.

‘청운광산’ 남쪽으로는 무궁화공원과 청와대 사랑채, 북쪽으로는 북악산, 서쪽으로는 인왕산의 풍경이 조망된다.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족이 단독주택 단지에서 집을 지어 살아야 한다면, 그 집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지 고민했다. 도로와 만나는 집의 전면은 과감하게 닫고, 집으로 들어가는 동선을 길게 만들었다. 자칫 어두울 수 있는 집의 중앙에 큰 외부공간(중정)을 설계하고, 큰 슬라이딩 도어를 활용해 중정의 개폐를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꼭 활짝 입구를 열어야 건물이 도시와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거리 두기를 선택하고, 그 방식을 세심하게 다뤄 좋은 도시 풍경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랐다.
집을 설계하는 건축가에게 중요한 감각이라고 여기는 것
집은 일상을 보내는 곳이다. 일상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경험이 건축가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집은 우리의 맨살이 닿는 곳이다. 주거의 스케일은 다른 종류의 건물들과 완전히 다르다. 천장의 높이와 문의 폭, 가구의 깊이 등에 대해 계속해서 연습하고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서계동 빌라집’. 지하와 지상 1, 2층은 콘크리트 구조이고 3, 4층은 조적식 구조여서 최대한 내부 벽체를 살렸다.
방향성이 없는 기술 사용과 건축가의 과장된 자아실현
집을 설계할 때 구사하는 통상적이고도 핵심적인 언어가 있다면
적당히 불편한 집. 아파트가 제공하는 편리함과 효율성이 과연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었는지 자주 질문한다.

낙후된 다가구주택이었던 빌라 집이 주민들의 거점 시설로 탈바꿈했다. 도로에서 건물로 진입하는 문지방 부분에서 섬세한 계획이 엿보인다. 건축이 어떻게 도시와 길, 동네와 만나는가에 관한 구보건축의 관심이 드러나는 프로젝트.
비목적의 공간을 넣곤 한다. 크지 않고, 특별한 목적이 없는 공간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고 숨통을 틔워준다. 사람에게는 풍부한 전이공간, 그저 비워둔 공간이 주는 위로가 필요하다.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가족을 위한 단독주택 ‘죽전동 회백나무 집.’
구보건축을 개소하고 내 이름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여성이라는 특징이 부각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사소한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가끔은 억울하고 어떤 때는 뿌듯하다. 내게 어린 딸아이가 한 명 있다. 그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됐을 때는 여성 건축가라는 말 자체가 매우 어색한 세상이면 좋겠다.

도로와 만나는 집의 전면을 과감하게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