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의 셰어하우스 체험기를 기록한 이유 #60세미만출입금지 #이승주PD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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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의 셰어하우스 체험기를 기록한 이유 #60세미만출입금지 #이승주PD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개인의 삶도 성장하죠” 이승주 PD가 노인의 이야기에 주목한 이유

전혜진 BY 전혜진 2021.10.19
이승주가 입은 수트와 셔츠는 모두 Zara. 시계는 Aigner. 목걸이는 Roaju.

이승주가 입은 수트와 셔츠는 모두 Zara. 시계는 Aigner. 목걸이는 Roaju.

이승주
91년생. EBS 소속 6년 차 PD. 독립운동에 헌신한 청년들을 주목한 〈다큐 프라임-역사의 빛, 청년〉 10부작으로 존재감을 알린 그는 최근 〈다큐 프라임-60세 미만 출입금지〉로 제249회 이달의 PD상 TV 시사교양 특집 부문 및 2021 휴스턴국제영화제 TV 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다큐 프라임-60세 미만 출입금지〉. 각각의 이유로 혼자가 된 60대 여성 셋의 셰어 하우스 체험기를 담았다. 함께 화투를 치고 있는 영자, 수아, 경희의 모습.
<60세 미만 출입금지>는 이혼, 사별, 미혼 각각의 이유로 혼자가 된 60대 여성 영자, 수아, 경희의 셰어 하우스 체험기를 담았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여자친구들끼리 “마흔 넘어서도 혼자면 같이 살자”는 말 자주 하지 않나. 근데 막상 주변을 둘러보면 함께 사는 사람이 별로 없다. 해외의 경우 프랑스의 65세 이상 저소득층 여성 노인을 위한 임대주택 ‘바바야가의 집’처럼 제도적 지원을 받는 시스템이 있는데, 한국은 아직이다. 내가 환갑이 됐을 때 이런 시스템이 갖춰져 있으려면 지금부터 제도의 필요성을 의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형화된 틀을 벗고 새로운 삶의 형태로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환갑이라는 단어는 인생의 한 바퀴를 돌았다는 뜻이다. 특별히 60세 이상으로 연령을 설정한 이유는
60세에 퇴직한 아빠에게 할머니가 “나는 환갑에 내 인생이 끝난 줄 알았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때가 제일 좋은 때였어. 절대 늦은 나이가 아니니 무엇이든 시작해 봐”라고 하시더라. 그 말이 마음 깊이 닿았다. 40대라서 할 수 있는 일과 60대라서 할 수 없는 일과 같은 구분은 없구나 싶었다. 나이 듦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로 다른 세 사람의 생활 면면을 담는 관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가장 유념했던 부분은 
촬영 전 제작진과 몇 가지 수칙을 공유했는데, 모든 참여자의 호칭을 ‘선생님’으로 통일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우리는 나이 든 여성을 아주 자연스럽게 ‘어머님’이라고 부르지 않나. 그런데 참여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어머니가 아닌 노년 여성이 정말 많다는 점을 발견했다. 또 실내 관찰 예능 프로그램에서 사용하는 거치 카메라를 설치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일반인은 누군가 늘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의식하지 않는 순간 나누는 대화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고 느껴서 그들만의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신경 썼다.  
서로 존댓말을 하며 어색한 인사를 나누던 사람들이 어느새 말을 놓고, 농담을 주고받고,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관계의 변화를 목격하는 건 어떤 경험인가 
솔직히 한 달이라는 시간이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기에는 짧다고 생각했는데, 그 안에서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더라(웃음). 화투를 치다가 갑자기 미묘한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또 아무렇지 않게 함께 밥을 짓고 식사하고. 한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는 건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작은 생채기를 내고 또 그걸 보듬어주고 다시 살이 차오르면서 끈끈해지는 과정이다. 그런 면에서 선생님들도 같은 시간을 통과하면서 조금 더 가족에 가까워지고 있구나 싶었다.
촬영현장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출연자 영자가 수박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 집에 거의 도착했는데 갑자기 힘들어서 못 걷겠다고 주저앉더니 두 분에게 전화를 걸어 마중을 나오라는 거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는데 ‘이건 무조건 찍어야 한다’는 생각에 집에 있던 촬영팀에게 전화해서 방금 전화 받는 거 찍었냐고 집요하게 물어봤다(웃음). 영자의 하루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셋이 함께하는 하루였던 거다. 사실 연출자의 입장에서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게 가장 어렵다. ‘이거 하나를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끊임없이 고민하는데, 이 장면을 찍고 그런 걱정을 말끔히 거뒀다. 내가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이미 그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알아서 숨 쉬고 있었던 거다.  
삶의 레퍼런스가 부족한 20~30대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나이 듦에 대해 걱정하게 된다. 우리가 겪어보지도 않은 나이 듦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사회가 그렇게 만드는 것 같지 않나? 서른이 되던 해에 ‘반육십’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20대 중반의 조연출은 ‘반오십’이라는 소리를 듣더라. 20대에는 서른이 되면 뭐라도 돼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서른이 되니 별거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리던 30대 모습이 아니라서 불행한가 생각해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고. 오히려 막연하게 두려워했던 시간이 더 불행했다. 지금이나 그때나 우리는 그저 행복한 일과 열받는 일이 공존하는 하루하루를 살 뿐이다(웃음).
세 인물을 가족 관계 속에서 주어진 역할의 이름이 아닌, 독립적인 개인으로 담았다. 연출자로서 의도한 부분인지
가족과의 관계성이 등장하긴 하지만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시청자가 그들을 누군가의 엄마, 아내가 아니라 오로지 그 사람 자체로 보길 바랐다. 기존 방식을 벗어나 새로운 시선으로 인물을 담아보고 싶었다. 촬영 장소를 북촌으로 정한 이유도 세 사람이 연고가 없는 곳에서 한 달 동안 오로지 자신으로만 살았으면 했다. 선생님들도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후에 “너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는 피드백을 많이 들으셨다더라.
기존의 정상 가족 틀을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많아지고 있는 요즘, 눈앞에 다가온 변화 앞에 사회적으로 어떤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혼자 사는 신청자 한 분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는데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중에야 겨우 아들이 발견해 병원으로 이송했다고. 이럴 경우 주변 이웃의 도움이 절실하지만, 타인에 대한 공포가 심해지는 세상에서 익명성이 보장된 공간도 포기할 수 없지 않나. 요즘 구청에는 적외선 탐지기에 일정 기간 사람의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으면 직원이 방문해 안위를 확인하는 절차가 있다고 하더라. 기계적인 시스템을 넘어 혼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절실하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앞으로 시청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나
언젠가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커리어에 육아는 정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지, 커리어와 육아 모두를 건강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아이가 주는 기쁨 말고는 어떤 개인적 이득도 없는지 궁금하다. 모성애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의아하기도 하고. 행복이라는 건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 생기는 게 아니지 않나. 얼마나 행복하고 동시에 얼마나 힘든 일인지 미리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내가 짊어져야 하는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 또한 여성들이 충분히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내가 만들거나 만들고자 하는 콘텐츠에 자연스럽게 내 삶이 투영되는 듯하다. 지금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이나 개인적 화두가 자연스럽게 반영되기도 하고.
장르에 상관없이 영향을 받은 여성 창작자가 있다면
아이유의 ‘빅 팬’이다(웃음). 리스너로서 애정하는 걸 넘어 한 명의 직업인으로서 존경한다. 나도 내 안의 감정과 생각, 고민을 콘텐츠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공감을 이끌어내고 싶은데 결코 쉽지 않거든. 그런 면에서 스쳐 지나가는 삶의 순간을 자신의 언어로 엮어내는 탁월함에 매번 감탄한다.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의 기쁨과 슬픔은
일은 언제나 슬프고 힘들기만 한 것 같은데(웃음), 종종 분노하기도 하고.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의 장점이자 단점은 과정과 결과가 일을 넘어 내 인생으로 스며든다는 점이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모든 게 끝나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조금씩 성장해 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크고 작은 과정들이 생활인 이승주에게 축적되는 것. 그 맛이 약간 중독적이라 괴로워도 계속해서 무언가 만들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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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전혜진/오채은
    사진 장한빛
    스타일리스트 오주연
    헤어 스타일리스트 서채원
    메이크업 아티스트 박수정
    디자인 민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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