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예진이 입은 수트는 Andersson Bell. 셔츠는 Sy2c. 슈즈는 Zara.
오예진 95년생. KBS 춘천총국 소속 3년 차 PD. 6·25 여성 참전 용사들의 현재 삶에 주목한 〈연순, 기숙〉으로 야심 차게 입봉했다. 이 작품으로 제256회 이달의 PD상 지역 부문을 수상했다.
6·25 7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연순, 기숙〉은 참전 용사 중 여군 학도병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우연히 정기숙 할머니가 내가 발 딛고 사는 춘천의 여성 학도병이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 들어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사실이었다. 역사 속 인물들은 늘 위대하게 보이지만 조금은 멀게 느껴지고, 20대 여성인 내가 감정이입할 지점을 찾기 어렵다. 피난민도 아니고 전쟁 속 군인이 된다는 상상도 해본 적 없으니까. 나보다 어린 여성이 참전했다는 사실은 전쟁을 겪은 할머니들과의 거리감을 확 좁혔고, 또래 여성이라면 공감하고 생각할 거리가 많을 것 같았다.
여군 학도병의 전쟁 속 활약을 상세히 서술하는 데 무게를 두기보단 전쟁 이후의 생애를 떠안아 보여준다
참전했다는 사실보다 참전한 사실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국가적으로 존경받고 자랑할 만한 무용담을 가진 분들이 복순 할머니처럼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야 국가유공자 인정을 받는 것이 참 억울한 일 아닌가. 연순 할머니는 ‘여자가 전쟁에서 싸웠으니 드셀 것이다’와 같은 당대의 편견으로 참전 사실을 숨겨왔다. 기숙 할머니는 본인이 그 얘기를 한다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줄까 의문이 들었고, 남자들이 한 것에 비해 대단치 않은 일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전쟁 이후 삶을 보여주고 과거를 재조명할 필요성을 느꼈다.
여성들의 전우애를 그린 콘텐츠는 찾아보기 힘들다. 포스터의 ‘나는 오늘 또 다른 나를 만난다’는 글귀처럼 연순과 기숙 두 사람의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연대’와 ‘전우애’라는 감정에 주목한 이유는
전우라면 보통 두 명의 남자를 떠올린다. 두 분 또한 전쟁터에서, 훗날 강제로 흩어져 전우를 잃은 분들인데 그 감정을 역사 속에 묻어버리면 너무 쓸쓸하고 외로운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이들이 당시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지만 참전하게 된 과정이나 이후의 생이 비슷한데, 지금 다시 만난다면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는 관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실제로 두 분의 만남이 어색할까 봐 걱정했는데 얘기도 술술 나누고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공감대도 꽤 큰 듯했다. 과거의 흩어진 사실이나 감정의 조각을 봉합해 보려는 시도였다.
현장에서 오히려 저보다 군필자인 촬영감독과 할머니의 공감대가 크더라. 보초 설 때의 에피소드를 공유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남자니까 공감을 못하고 여자라서 할 수 있다는 차원이 아닌, 성별이나 직군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자신의 어떤 부분을 숨겨야 했던 사람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이야기다. 여성을 다룬 이야기로도 다양한 시청자를 품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국악소리가 송소희가 연순과 기숙의 1인칭 시점에서 내레이션한 것이나, 국악 공연을 서사의 흐름 속에 삽입한 구성을 택했다
젊은이들이 역사 속 이야기를 어떻게 자신의 것처럼 느낄 수 있을지 고민하다 음악으로 접근했다. 부족한 언어나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음악으로 채웠다. 송소희 씨의 나이도 그 시절의 연순, 기숙과 비슷하다. 할머니와 시청자를 이어주는 매개로 1인칭 소녀의 시점으로 송소희 씨가 얘기한다면, 객관적인 사실을 듣는 것보다 공감대가 클 것 같았다.
여군 무용론이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 〈연숙, 기숙〉이 어떤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오길 바랐나
공교롭게도 〈연순, 기숙〉이 방송되는 시간에 뉴스 자막으로 ‘공군 부사관 성폭력 사건’이 송출됐다. 여군에 대한 편견과 차별적인 시선으로 할머니들도 스스로를 떳떳하게 밝히지 못한 현실이 과연 지금 어느 정도 나아졌나 싶더라. 거창하게 어떤 사회적 제도가 만들어지기보단 당시 생존자나 현재 여군 모두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끼고, 힘을 얻길 바랐다.
과거의 사건을 되살리고 또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매개로서 다큐멘터리는 어떤 힘을 지녔을까
역사야말로 진정한 논픽션의 장르다. 사건의 생존자나 경험자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 사건의 생존자나 경험자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 역사를 음악으로 해석할 수도, 드라마처럼 구성할 수도 있지만 다큐멘터리는 가장 직관적으로 명암을 조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수저로 밥을 떠먹는 모습만 담아도 그 사람의 생애가 보이기도 한다. 최대한 진실에 가깝고 날 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이 분명 있다.
<연순, 기숙〉으로 의미 있는 출발을 했다. 앞으로 다큐멘터리로 어떤 이야기들을 다뤄보고 싶나
젠더에 관한 얘기다. 비단 여성 문제뿐 아니라 퀴어나 고정관념에 관한 얘기를 꾸준히 다루고 싶다. 공영방송이기에 오히려 더 다양성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지키려는 원칙이나 경계하려는 태도가 있다면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주로 소외받는 사람이나 소수자, 고발적인 주제를 다루지 않나. 피사체를 그저 피해자의 입장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 피해를 입은 건 사실이지만 앵글 안에서 불쌍하게 혹은 고통스럽게 보이는 건 편향적인 이미지를 고착화한다. 타인의 이야기를 소재로 이용하지 않고, 그들이 원하는 모습 그대로를 오롯이 화면에 담으려는 태도를 지키려 한다.
빠르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에서 얻는 즐거움은
요즘 콘텐츠에 투입되는 자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몇 십억 원대의 제작비로 퀄리티는 점점 더 좋아지고 대중의 눈높이도 높아진다. 이런 환경에서 다큐멘터리는 오히려 자본으로부터 자유롭다. 비교되지 않는 규모의 저예산에, 좋지 않은 장비로 찍어도 충분히 사회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장르다. 자본으로 완성할 수 없는 장르라는 점에서 힘을 느낀다. 또 이 일이 아니면 연순, 기숙 할머니의 집에 갈 일도 없지 않나. 두 분이 화투 치는 것도 구경할 수 없다. 이들에게 직접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 있다는 점이 다큐멘터리 만드는 사람에게 주어진 매력적인 ‘통행증’ 같다.
앞선 여성의 발자취를 담는 것에는 어떤 재미가 있나
촬영하다 보면 세대나 직업군을 뛰어넘어 주인공과 내가 하나로 일치된 순간이 있다. 같은 마음으로,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게 느껴질 때 짜릿하다. 예를 들어 〈연순, 기숙〉에서 전쟁통에 겪는 월경에 관한 고충이나 성폭력에 관한 얘기를 담을 때 아무래도 잠재적으로 동일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이들이 가장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여성이 여성의 이야기를 담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디테일한 부분이 점점 살아난다. 과거에는 주제가 크고 명확하면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요즘은 같은 주제라도 촬영 기술이나 자막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 등 표현 방식이 다양화되고 세세한 디테일에서 평가받기도 한다. 다큐멘터리라고 특수한 촬영이나 최신 기술을 적용하지 못할 건 없다. 모두가 재밌게 보고 싶어 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차세대 다큐멘터리 PD로서 스스로 지닌 강점을 발견했는지
‘젊음’이 아닐까. 내 나이 또래에 입봉한 다큐멘터리 PD가 드문 이유는 공채 합격 과정도 길고, 보통 5년 정도 조연출도 해야 하는 절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어른이 되어야만 찍을 수 있다. 그렇기에 젊은 여성들의 시각이 다큐멘터리 신에 깊숙이 스며들지 못한 부분이 아쉽기도 하다. 부담감도 크고 미숙한 부분이 있겠지만, 열 개 중 하나쯤은 우리 시각에서 다룬 다큐멘터리도 세상에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