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사연들은 잠재적으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종착지라 믿었던 곳 너머의 삶을 맞닥뜨릴 때, 우리는 어떤 태도로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까. 〈킨포크〉 창립자 케이티 설이 이혼 후의 삶을 담담히 털어놓은 〈ELLE〉 미국 2020년 6월호 칼럼 ‘Katie Full of Grace’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케이티는 남편이자 동료인 네이선 윌리엄스와 매거진 〈킨포크〉를 창립했다. 〈킨포크〉 속 아름다운 사진과 글의 감도만큼이나 평온하고 따뜻하게 보이던 두 사람의 낙원에도 그늘이 드리운다. 임신 6개월 때 첫아이를 유산하고 힘겹게 둘째를 임신한 케이티는 남편 네이선에게서 그가 게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배 속에 아이가 태어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두 사람은 꿈만 같던 결혼생활을 끝내기로 한다. 첫아이와 남편을 동시에 잃은 케이티는 이후 자신에게 큰 힘이 된 연인 조 엔자인 루이스마저 사고로 떠나보낸다. 그러나 케이티는 더 단단해졌다. 그의 사연을 묘사한 해당 칼럼의 필자 레슬리 제이미슨은 “케이티는 그럼에도 무력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없는 생명력을 품고 있었다. 깊은 상실과 해질 대로 해진 마음을 움켜잡고 자아를 되찾아갔다”고 증언한다. “고난 속에서도 충만한 우아함을 품고 있었다”는 표현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케이티는 20대 중반까지 무단횡단도, 음주도 하지 않는 반듯한 부류의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조가 죽은 뒤 그간 지켜온 몇 가지 규칙을 깨려 했죠. 그에게 규칙을 어기는 것은 법을 어기는 일보다 자극적이지 않지만, 더 큰 의미가 있었어요.” 케이티는 두 번의 이별 이후 미디어나 주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지 않고, 스스로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에만 솔직해지기로 했다. 이 모든 결심은 “그가 자신을 주장하는 법을 배워가는 일련의 큰 과정”이었다. 케이티는 오랫동안 자신이 얼마나 쉽게 주변의 영향을 받아왔는지, 교회가 가르친 가부장제가 자신에게 얼마만큼 내면화돼 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이혼 후, 자신의 어머니가 살고 있는 고향으로 돌아간 케이티는 어머니 질과 자신, 딸 비와 함께 세 세대를 아우르는 친밀감을 정면으로 느끼게 된다. 필자는 “케이티의 어머니는 사산한 손자를 온 마음으로 끌어안았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삶의 한가운데 케이티가 버티고 설 수 있게 만들었다. 케이티의 이야기는 상실에 대한 것이지만 동시에 ‘돌봄’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딸을 위한 어머니의 돌봄, 그 딸의 딸을 위한 돌봄. 누군가 규정해 놓은 ‘영원한 가족’의 개념은 잃었지만 대신 또 다른 개념의 단단한 가족을 얻은 것”이라고 표현한다.
“우리 모두는 그저 고통 속에서 한 걸음씩 내딛는 법을 배워간다”는 케이티의 삶의 태도는 앞서 언급한 멀린다 게이츠의 행보와도 맥락이 맞닿는다. 그는 지난 7월 전 남편과 여전히 공동으로 운영 중인 빌 & 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통해 여성들에 대한 교육과 금융서비스를 지원하고, 세계 성평등 증진을 위해 약 2조 3000억 원을 투입할 것을 약속했다. 향후 5년 안에 건강 및 가족계획 프로그램, 경제 강화 프로젝트에 자신이 축적한 것들을 쏟아붓기로 했다는 것. 또 아마존의 의장 제프 베이조스와 이혼한 매켄지 스콧과 함께 향후 ‘Equality Can’t Wait Challenge’(미국 최초 성별과 차별 문제에 초점을 맞춘 여권 신장 경진대회) 수상자들을 지원하는 데 약 458억 원을 내놓았다. 상실의 고통을 딛고 또 다른 상실감을 지닌 여성들을 끌어안는 태도는 한층 더 나은 자신에게로 나아가는 일이다. 아름답고도 불완전한 삶을 재건해 나가는 이들의 모습은 장막에 쌓인 제3의 세상에 용기를 안겨준다.
국내에서는 실제로 매일 약 300쌍의 부부가 이혼 도장을 찍는다.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 동향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21만 쌍의 부부가 결혼했고, 10만여 건의 이혼이 발생했다. 이토록 많은 이들이 결혼 이후의 또 다른 삶으로 나아가는 것. 사실 자신의 일부가 떨어져나가는 듯한 고통 어린 시간은 좀처럼 가늠하기 힘들고, 자녀 양육과 재산 문제 등 해결해야 할 숙제까지 떠안지만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기 마련이다. 궁극의 목적지를 찾기보단 과정의 일부로서 삶을 대하며 어떻게 살아갈지, 무엇을 사랑할지 스스로 설정한 방향의 영향을 받으면서 말이다. 케이티는 “슬픔은 터널 같은 것이 아니며, 해결책 또한 그 터널 건너편에 존재하지 않는다. 슬픔을 통과하지 않고 그저 끌어안은 채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말한다. 지나치게 결과론에만 집중한 ‘왜’라는 질문보다 ‘어떻게’라는 물음이 삶을 지속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케이티에게도 삶은 “성과보다 지속의 아름다움을 지향하고 특정한 한 가지가 아닌, 여러 갈래의 자신이 되게끔 자신에게 기회를 주는 과정”이다. 결혼과 이혼, 동거와 비동거 같은 사회적 개념의 틀에 삶을 구겨 넣다 보면 진짜 ‘나’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나는 산산이 부서졌지만, 동시에 온전해졌어요. 나의 큰 부분이 사라졌으나 내 일부를 발견했고요. 이 모든 게 감사하지만 한편으로 도둑맞은 기분이 들기도 하죠.” 인생을 영원이나 행복을 찾는 여정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 이는 결혼 이후의 삶뿐 아니라 또 다른 삶의 단계를 하나씩 거치며 성장하는 모든 이에게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