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달리기와 수영을 통한 내 몸의 재발견 #엘르보이스

흠뻑 땀을 흘린 뒤 샤워하며 시원함을 느끼는 내 기특한 몸에 관심을 갖게 됐다

BY이마루2021.10.13
운동하러 갑니다
 
“선생님, 팔을 잘 하려고 하면 다리가 엉망이고, 다리에 신경 쓰면 팔이 안 움직여요.”
 
지난여름부터 수영 강습을 받고 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언제나 두 달 정도 배우고 그만뒀기 때문에 초급반에서 줄의 제일 끝에 서는 수강생(다른 분은이미 3~4개월 정도 배운 터라 나보다 잘한다) 정도의 존재감으로 수영을 배운다. 물 안에서 내 몸을 나아가게 하는 방법은 물 밖에서 내 몸을 움직이는 것과는 다르고, 그래서 언제나 잘하지 못하고 좌절한다. 학교를 졸업한 지는 좀 됐고, 경력이 어느 정도 쌓였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에서 누군가에게 지적받거나 ‘하나도 못하겠다’고 사실대로 고백해야 할 상황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매번 수영 강습을 할 때마다 선생님을 붙잡고 하소연해야 한다. 나는 분명히 무릎을 펴고 발차기를 했는데, 선생님 눈에는 전혀 무릎이 펴지지 않은 상태이고, 나는 고개를 제대로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언제나 물을 먹는 상황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상황이 전혀 싫거나 불편하지는 않다. 나는 지금 내 몸을 물속에서 좀 더 자유로운 상태로 만들기 위한 과정에 있고, 그걸 위해 내 몸의 기능을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운동이라는 것이 ‘몸매를 관리하기 위한 하나의 활동’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하면서부터다. N잡러라는 이름을 스스로에게 붙이고, 두 개의 회사에서 일하면서 여러 개의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던 2017년. 요가나 필라테스를 이전에도 계속했고, 달리기 역시 간헐적으로 해왔기 때문에 운동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다이어트를 위한 것이 아닌 운동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여러 개의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또 생각이 멈춰지지 않던 어느 날, 달리기를 하면 몸이 힘들어서 생각이 멈춰진다는 글을 보고는 집 밖으로 나가서 달렸다. 아주 오랜만의 달리기였기 때문에 제대로 달리지도 못했고, 10분 정도 달리다 멈추다를 반복하다 집으로 돌아왔다. 더운 여름이라 그랬는지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땀에 젖은 운동복을 훌훌 벗고 샤워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가 달리기를 하고 집에 돌아오는 동안에 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몸의 경험으로 습득한 앎은 그날 이후로 나를 계속 달리게 했다.
 
청바지를 입으면 잘 어울리도록 다리가 더 얇았으면, 팔이 좀 더 길고 가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운동했던 시절이 있다. 내 몸을 알고, 각각의 기능이 내게 가져다주는 새로운 경험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던 때. 지금도 가끔 가는 팔다리와 날씬한 허리를 욕망하지만, 이제는 그 욕망만큼 내가 내 몸을 알고, 그 몸으로 할 수 있는 경험을 늘려가는 것, 나를 나일 수 있게 하는 힘을 가지는 것 또한 바란다.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대상으로서의 몸을 신경 써왔다면, 나를 조금 더 먼 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는 몸, 내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도록 하는 몸, 땀을 흠뻑 흘리고 샤워할 때 느껴지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몸에 좀 더 관심이 생겼다. 자기 기능을 하는 몸이 중요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사회 시선을 기준으로 통제하던 몸을 나의 가치와 기준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이 내겐 큰 변화이자 더 중요한 일이 됐다는 이야기다.
 
자유형을 어느 정도 배우고 평영으로 넘어가니 또다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가 됐다. 그런 나를 불러 세운 선생님이 시범을 보이며 이런 말을 했다. “자유형은 내 몸의 면적으로 물을 누르는 힘으로 추진력을 얻고요, 평영은 내 몸의 면적으로 물을 가둬서 추진력을 얻어요.”
 
이 말을 들으니 자유형과 평영을 할 때 어떻게 힘을 써야 할지, 각각의 영법에서 뭐가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쩐지 근사했다. 내가 나를 나아가게 하는데 누르는 힘을 쓸 수도 있고, 물을 가두는 힘을 쓸 수도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 힘이 내게 있다는 사실이. 그 힘을 발견하면서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디든, 내 힘으로 가는 여자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운동하러 간다.
 
홍진아 카카오 임팩트 매니저이자 프로N잡러. 책 〈나는 오늘도 내가 만든 일터로 출근합니다〉를 펴냈고, 밀레니얼 여성을 위한 커뮤니티 서비스 '빌라선샤인'을 운영했다. 


‘ELLE Voice’는 매달 여성이 바라본 세상을 여성의 목소리로 전하고자 합니다. 김초엽 작가, 뮤지션 김사월 등 각자의 명확한 시선을 가진 여성들의 글이 게재될 11월호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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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이마루
  • 디자인 민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