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영 컬렉터? 아트에 진심인 사람이 이렇게 많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CULTURE

당신도 영 컬렉터? 아트에 진심인 사람이 이렇게 많다

요즘 아트 신을 사로잡은 '뉴 아트 제너레이션'은 어떤 신인류일까? 미술을 가지고 노는 영 컬렉터들의 행보.

전혜진 BY 전혜진 2021.09.09
 
최근 아트 신에서는 새로운 지각 변동이 감지됐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통계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소비경제 전반이 위축됐음에도 올 상반기 국내 미술 경매 총매출액은 1438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490억 원보다 세 배나 급증한 수치로, 때아닌 호황이다. 전문가들은 입 모아 MZ세대로 불리는 20~40대의 활발한 참여를 이유로 꼽는다. 실제로 지난 6월 128명의 젊은 작가가 참여한 ‘더 프리뷰 한남’ 페어에서는 열흘에 걸쳐 3000여 명이 방문했고, 그중 다수는 20~30대였다. 지난 5월 종료된 ‘아트부산’ 페어에서는 개성 있는 옷차림을 한 10대 컬렉터들도 만날 수 있었다. 소투, 아트앤가이드 등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에서는 소액 투자자 중 2030 세대가 절반이 넘는다. 세계 최대 미술 장터인 ‘아트 바젤’과 UBS가 펴낸 ‘2021 아트 마켓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미술품을 구매한 자산 100만 달러(약 11억 원) 이상의 수집가 2569명 중 52%는 M세대, 4%는 Z세대였다. 이 흐름대로라면 선뜻 다가가기 어려웠던 미술시장은 이제 젊은 자본에 주도되는 걸 알 수 있다. 더 이상 고액 자산가들의 전유물이 아닌 아트 컬렉팅. 이 새로운 아트 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다른 대담한 특질을 보이며 아트 신에 존재감을 더하고 있다. 
 

'엄.근.진'은 물러가세요 

글로벌 최대 아트 관련 데이터베이스인 ‘래리스 리스트(Larry's List)’에서 전 세계 2040 아트 컬렉터 150명을 소개한 ‘The Next Gen Art Collectors Report 2021’에 한국인 이소영이 이름을 올렸다. SNS를 기반으로 서울의 아트 메신저이자 미술 강사, 아트 컬렉터로 활동한 그는 “영 컬렉터라 불리는 2040 컬렉터들의 수가 많아졌음을 피부로 느낀다. 좋은 작품을 선점하기 위해 ‘반차’를 쓰고 모이는 이 젊은이들은 과거처럼 유명한 작가를 찾기보다 자신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작가를 선택하며 시장을 활성화한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이들의 가장 특징적인 키워드는 ‘인스타그램’이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이들은 현대 작가들의 미술품도 SNS로 처음 접한다. 아트 페어 현장에서 작품 하나하나를 느긋이 감상하기보다 갤러리나 작가, 예술가들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잉하며 신진 작가들의 특성과 작품 정보를 미리 습득하고, 온라인 미술 플랫폼들을 누비며 작품을 소비한다. 이소영 아트 컬렉터는 “인스타그래머블한 작가들이 젊은 컬렉터들에게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전시를 통해 작가나 작품에 관심이 생겨 팔로잉을 한다기보다 SNS에서 먼저 작품을 접한 뒤 오프라인 전시를 보러 간다. 이전 흐름과 역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인스타그램 피드의 첫인상이 작가의 첫인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또 작품과 작가, 전시 자체를 무거운 문화 양식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마치 K팝 공연을 보고 인플루언서를 팔로잉하듯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만큼 온라인으로 작품을 감상하고, 예술가나 갤러리와 SNS로 소통한다. 마치 하나의 ‘놀이’처럼 소비하는 것. 최근 이 흐름에 RM, G-dragon, 유아인 등으로 대표되는 ‘영 앤 리치’ 아티스트 컬렉터들의 영향도 크게 작용했다. 이들이 SNS를 통해 소개한 윤형근, 만달라키 등의 작품이나 실제로 방문한 아트 페어와 전시는 제2, 제3의 젊은 방문자들을 대거 재생산한다. 미술품 투자에 관한 경계심을 완화하고 멀게 느껴지던 예술의 저변을 더 낮게, 가까이 당겨온 것. 이소영 컬렉터는 “뮤지션 역시 아티스트이기에 관련 공부를 하다 보면 결국 그 관심이 시각예술인 현대미술로 오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기존의 컬렉터들 역시 반기는 움직임이자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뱅크시 만 원어치 주실래요?

이제 ‘큰손’은 옛말이 됐다. 영 컬렉터는 작품을 소유하는 방식에서 ‘공유’와 ‘소액’의 가치를 중시한다. 작품을 조각조각 나눠 사고파는 미술 공동구매 플랫폼 아트앤가이드가 2018년 첫 등장한 이후 소투, 아트투게더 등 주식처럼 미술품의 지분을 사고파는 플랫폼에서도 MZ세대의 참여가 활발하다. 올 상반기 아트앤가이드에 1만 원 단위로 공동구매에 참여한 투자자 중 20~30대가 절반(52%)을 넘기기도. 조각조각 미술품을 거래하는 것은 ‘경험 가치’를 중시하는 이들에게는 꽤 실리적이고 매력적인 행위로 여겨지는 듯하다. 1000원에서 100만 원까지 소액만으로 투자가 가능하고, 단 한 조각일지라도 취향 저격 아티스트의 작품을 직접 소유한다는 ‘가심비’를 충족시킬 수 있으며, 주식이나 코인 등 다른 재테크 방식보다 세금이나 양도차익 부담 또한 덜하다는 장점 때문. 특히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은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가 가능한데, 이들을 구매하는 행위로 마치 ‘크라우드 펀딩’을 하듯, 신진 작가들을 응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재미를 느낀다. 색감이 뛰어나거나 팬시함을 드러내는 뱅크시, 데이비드 호크니, 구사마 야요이는 여전히 인기다. ‘오픈갤러리’ 등의 플랫폼으로 소유보다 구독을 통한 렌털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의 비율도 대폭 늘었다.  
 

우리는 ‘행동가(Activist)’입니다 

이들은 특유의 발 빠른 움직임으로 아트 생태계에 역으로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앞서 언급했듯 아트 페어 현장에서 힘을 발휘해 신예 아티스트를 띄우거나, 뚜렷한 특징을 지닌 구매 패턴과 구매력으로 산업 내에서 대표성을 높이며 관련 기업들이 흐름에 발맞춰 움직이게 만드는 것. 업계는 첨단 기술에 익숙한 영 컬렉터 층을 겨냥해 온라인 경매나 뷰잉 룸 등을 확대하며, 페어를 하나의 종합 라이프스타일 행사로 확대 한다. 내달 개최 예정인 ‘어반브레이크2021’은 ‘시끄러운 아트 페어’를 표방하며 힙합 음악을 틀고, 스트리트 아트와 서브 컬처 작품의 구성 비율을 높일 것이라고 예고했다. 갈수록 커지는 인기에 롯데, 신세계 등의 백화점 또한 ‘아트 롯데’나 ‘아트스페이스’처럼 영 컬렉터의 유입을 위한 페어를 오픈하기 시작했다. 해외 영 컬렉터들의 흐름은 어떨까. 런던을 베이스로 글로벌 미술시장의 흐름을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아트 리서처 최서경은 “해외시장에서도 지난 몇년간 아트 컬렉터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어졌다. 이전에는 저명한 아티스트의 작품만 투자 가치가 있다고 보는 시각이 뚜렷했고,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도 없고 일상에 꼭 필요하지도 않은 고가의 미술 작품에 영 컬렉터가 접근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라며 “팬데믹이 터지기 전부터 영 아티스트들이 경매시장에서 단기간에 몸값을 올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학생이나 사회 초년생들이 유명세와 상관없이 자신이 선호하는 드로잉을 구매하는 데 거리낌없는 성향을 보였다”고 분석했다.작품이 투자 가치가 있을지 없을지 살핀다기보다 철저히 ‘본인이 소장하고 싶은 것’에 돈을 지불하고 순수한 의미의 컬렉팅을 이어가고 있는 것. “이전의 미술품들이 특정 자본가와 자선가에 의해 구매되고 ‘이건희 컬렉션’처럼 다시 사회에 환원되며, 각자의 역사적 자취에 의미를 크게 두었다면 이제 미술품은 투자 가치와 역사 가치를 동시에 지닌다. 그 가치 상승에 영 컬렉터들이 동참하고 있다”고 흐름을 설명한다. 
 
물론 이 현상에 우려 섞인 목소리도 존재한다. 공동구매 플랫폼에서는 작품 재판매 여부나 도난, 위작 논란, 소유권 불법 거래 등 부작용이 꾸준히 야기되고 있고, 영 컬렉터가 감수해야 할 위험 부담이 있다는 것. 이소영 컬렉터는 “아트 콜렉터로서 공동투자 플랫폼에는 부정적인 편이다. 우려가 뒤따른다. 미술 작품을 컬렉팅하는 과정은 그 작가의 작품과 삶을 향유하는 것과도 같은데, 자극적인 투자수익율만 내세우는 곳이 꽤 많다. 미술 작품을 살 때 작품 가치를 건강하게 보지 않고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처럼 무분별하게 다가가지 않아야 한다. 초보 컬렉터들이 오해하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 아찔할 때가 있다. 미술 작품은 물건이 아니라서 가격이 늘 오를 수 없고, 더불어 성장하는 작가라 할지라도 기간을 아주 길게 두고 마라톤을 하듯 즐기면서 컬렉팅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전한다. 이미 10년 전에도 한국 미술시장이 특정 세력으로 인해 호황이던 시기가 있었다. 이소영은 “결국 시장 거품이 빠지니 건강하게 자생 능력을 갖춘 작가보다 소위 ‘한때 잘나갔던 작가들’이 많아진 것 같아 아쉬웠다. 지금의 열기가 건강한 열기로 미지근하게 오래가는 게 좋을 듯하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아트 컬렉팅은 도전해볼 만한 영역이다. 1세대 영 컬렉터 선배로서 이소영은 “주변 사람과 경쟁하지 말고, 유행하는 취향을 좇지 않고 각자 자신만의 수집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행복한 컬렉팅이다. 시작해 보면 좋은 취미 중 하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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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전혜진
    디자인 한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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