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LIFE

반려동물 때문에

예상치 못한 관계의 복병이 등장했다! 반려동물이 연애의 행방을 결정짓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

BY류가영2021.08.17
 
 
이별 후 한동안 상대가 키우던 고양이를 잊지 못하고 스마트폰 속 사진과 영상을 밤마다 들여다보던 시기가 있었다. 영상에 이따금 등장하는 전 남자친구의 목소리에 더 이상 아무 감흥이 없어졌을 때조차 캣 타워 위에서 손발을 핥거나 장난감을 갖고 놀다 쓰러져 거친 숨을 내쉬는 ‘버터’의 모습을 보면 참을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들었다. 내 다리 사이 이쯤에 항상 버터가 있었는데…. 잘 시간만 되면 침대 위로 폴짝 뛰어올라 내 허벅지에 ‘꾹꾹이’를 해주었는데…. “아무리 전 애인과는 별개로 생각한다지만 솔직히 지금 애인 입장에서는 불쾌하지. 어쨌든 그 추억엔 전 남자친구의 흔적이 자연스럽게 묻어 있는 거니까.” 나처럼 과거 연인과 동고동락한 반려견을 한동안 잊지 못하던 남자와 연애 중인 직장 동료의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남자친구와의 연애 초반, 버터와 함께 찍은 사진을 카톡 프로필 사진 이력에서 지워줄 수 없겠느냐고(심지어 한참 뒤에 숨어 있던 사진이었는데!) 조심스럽게 묻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이 또한 지난 사랑에 대한 미련으로 보였겠지.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전체 가구의 3분의 1에 육박한 지금, 애인만큼이나 반려동물과도 강력한 애착 관계를 형성하며 고민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각종 커뮤니티의 ‘연애 상담’ 카테고리에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그나마 헤어진 연인의 반려동물을 잊지 못해 생기는 문제는 가벼운 고민에 속한다. 고심 끝에 전 애인에게 고양이 사진을 보내달라거나, 산책 한 번만 시켜주면 안 되겠냐고 넌지시 물었다든지, 함께 키운 강아지를 이별 후에도 정기적으로 만나다 전 여자친구에게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기며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는 사연이 줄을 잇는다.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느냐고? 놀랍게도 공감의 글이 대부분이었다. 함께 입양한 반려동물의 이름을 딴 커플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든 인플루언서나 반려동물 계정을 함께 운영 중인 커플이 차고 넘치는 세상에 당연한 일이다. 힘들더라도 마음을 정리하는 게 맞다는 의견이 중론이었지만. 이혼의 경우 문제는 한층 더 복잡해진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재산권과 양육권 사이 그 어딘가 놓여 있는 반려동물의 소유권 문제는 처음 반려동물을 어느 쪽에서 데려왔는지, 결혼 후 반려동물을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은 누가 더 많이 부담했는지, 누가 더 많이 돌보고 애정을 쏟았는지(산책은 누가 더 많이 시켰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다.
 
반려동물로 인한 문제가 비단 이별을 앞둔 커플에게만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나와 상대방, 반려동물을 둘러싼 관계가 생각처럼 평화롭지 않을 때도 심각한 스트레스 상황에 시달릴 수 있다. 나 역시 전 남자친구와의 소소한 신경전을 기억한다. 버터를 향해 하는 말인지 나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종종 “버터는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하지”라는 말을 했다. 똑같이 쓰다듬고, 뽀뽀하는데도 유독 내가 그러면 “버터는 그렇게 하면 안 좋아해”라며 찬물을 끼얹었다. 반려동물을 둘러싼 장난 반 진심 반인 오묘한 삼각관계. 애인이 나보다 반려동물을 우선하는 것 같다는 불만을 표하는 사람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원래 좀 무뚝뚝한 편이라던 애인이 콧소리를 내며 반려동물을 ‘우쭈쭈’ 하는 광경을 보고 당혹감을 느낀 이야기처럼. 동물을 사랑하니 마음도 따뜻하겠지, 결혼하면 아이에게도 잘하겠구나 하고 이해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반려동물로 가득한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내 사진 한 장 없거나 내가 점심에 뭘 먹었는지 관심도 없던 사람이 반려동물이 새로 산 간식을 좋아한다며 진심 어린 함박웃음을 짓는다면 기분이 조금 묘할 것 같기도 하다. 미국 유기농 사료 회사 ‘라일리스 오가닉스’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절반 이상의 반려인들은 애인보다 반려동물에게 더 많은 애정과 관심을 쏟는다고 한다. 
 
반려동물을 두고 벌어진 실제 갈등 사례를 소개한 〈공공투데이〉 기사를 보자. 매일 하루 두 번씩 반려견을 산책시켜야 해서 언제부턴가 슬금슬금 데이트 약속을 잡지 않게 된 연인에게 불만이 쌓인 20대 후반 직장인 A씨. 평소 무뚝뚝한 애인이 반려견에게 애교를 부리는 것이 얄미워 애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반려견의 머리를 쥐어박다 손을 물린 30대 초반 B씨.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밤낮으로 짖고, 으르렁거리는 등 결혼 후 한집에 살게 된 보호자의 남편을 본격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한 반려견 C까지. 세 주체 간의 평화로운 사랑이 이렇게나 어렵다. 사람이야 말로 이해시킬 수 있다 쳐도 C처럼 내 파트너의 존재에 ‘결사 반대’를 외치는 반려동물은 도대체 어떻게 다독여야 할까? 리즈 반려동물 행동클리닉 대표 이우장 수의사의 말에 따르면 반려동물의 질투 감정은 아직까지 분명하게 확인된 바는 없다. 하지만 보호자를 지키려는 목적으로 보호자의 애인을 향해 으르렁거리거나 애인에게 쏠린 보호자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일종의 ‘관심 끌기 행동(Attention-seeking Behavior)’은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일이다. 보통 고양이보다 주인에 대한 의식수준이 높은 강아지에게서 이런 행동이 포착된다면 새 보호자가 주인으로서 조금씩 주도권을 획득하는 것이 좋다. 밥을 주고, 배설물을 치우고, 산책을 시키고, 놀아주는 일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반려견이 두 사람 모두를 보호자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경우는 차라리 낫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각자의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던 커플이 함께 살게 됐을 때 반려동물들의 합사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그 고통은 모두에게 극심하다. 결혼을 앞둔 내 친구 D는 남자친구의 반려견과 자신의 반려묘를 합사시키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돌입했다. 가장 많은 도움이 된 것은 인터넷에 올라온 반려인들의 실제 합사 일기. 합사 1일 차부터 1주일 차, 한 달 차, 두 달 차… 서로의 냄새가 묻은 장난감이나 방석을 공유하는 것부터 시작해 방묘 문을 세우고 시선을 주고받게 한 다음 마침내 함께 있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나가기까지 모든 과정이 친절한 사진과 함께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여전히 체계적인 합사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한 수많은 반려인과 달리 일찍이 합사 준비를 시작한 D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이 많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들이 서로를 끝끝내 받아들이지 못하면 어떡해? 정말 소중한 내 고양이지만 남자친구 강아지를 이유 없이 물고 할퀸다면 강아지에게도, 남자친구한테도 너무 미안할 것 같아.” 
 
실제로 합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눈물을 머금고 재입양(파양)을 선택한 커플의 이야기도 있다. 많은 전문가가 극단적 선택을 내리기 전 한 번쯤 반려동물 행동 클리닉이나 교육 센터 등을 찾아 상담받기를 권하지만, 불가피한 경우 전문가 역시 반려동물의 행복한 삶을 위해 재입양을 권유하기도 한다. 아직도 남은 문제가 있냐고? 물론! 도마뱀이나 곤충처럼 포유류와 조류에 비해 사회적 인지도가 현저히 낮은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연인에게 반려동물의 존재를 이해시키는 것부터 쉽지 않다. 사육 환경이 낯설다는 이유로, 냄새가 독특하다는 이유로 혹은 징그럽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의 애정과 지지를 얻는 데 실패한다. 도마뱀을 키우는 사람을 만나 자신도 도마뱀을 키우기 시작한 선배 E는 그래서 개나 고양이 외의 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그들끼리 사귀는 거라며 이런 고충을 뒷받침해 줬다. 이처럼 반려동물을 둘러싼 문제는 때로 관계와 사랑을 위태롭게 만든다. 우리는 마침내 사랑을 시작할 때도, 사랑을 끝낼 때도 반려동물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모든 고통은 사랑하는 연인 그리고 반려동물과 함께했을 때 느끼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생각하면 충분히 감수할 만한 것이기도 하다. 사랑은 완성된 형태가 아닌, 노력이고 과정이라 하지 않던가. 서로 평화롭게 사랑하기 위해 고민하고 해결법을 모색하는 것만으로도 우린 이 사랑을 끝까지 밀고 나갈 충분한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