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표소 앞에서 '제발' 고민하지 마세요!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영화광들은 벌써부터 신이 난다. 4월 28일부터 5월 6일까지 전주영화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화창한 날, 전주에 가서 영화도 보고, 막걸리도 마시고, 가맥집도 즐기고, 속풀이로 콩나물 해장국까지 즐기려면 정말 바쁘다. 2박3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전부 볼 수 없다면 딱 7편만 챙겨볼 것을 권한다. 관객들보다 먼저 영화를 본 고양이 기자의 '궁극의 선택'이랍니다. 부디 잊지 마세요!::전주영화제,일루셔니스트,올리베이라,드니 코테,컬링,카를로스,이센셜 킬링,빈센트 갈로,리스본,라울 루이즈,멜빌 푸포,레아 세이두,앙젤리카,엘르,elle.co.kr:: | ::전주영화제,일루셔니스트,올리베이라,드니 코테,컬링

일루셔니스트감독 실벵 쇼메 목소리 출연 장-클로드 돈다, 엘리드 랜킨 러닝타임 80분는 실뱅 쇼메 감독의 신작이다(데뷔작 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바 있다). '프랑스 마임과 코미디의 대가' 자크 타티의 1956년 미완성 대본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으로, 어느 중년 마술사의 슬픈 자화상을 그렸다. (1949)이후 타티와 오랫동안 작업을 같이 한 작가 앙리 마르케가 이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다. 초현실주의와 바로크 스타일의 화풍을 선보여 온 쇼메는 큰 키에 구부정한 목,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있는 모습의 아저씨. 즉 자크 타티의 헤로인 윌로 씨를 고스란히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부활시켰다. 는 실직한 프랑스 마술사 타티쉐프(타티의 실제 성)가 스코틀랜드 에딘버그로 여행을 떠났다가 소녀 앨리스를 만나는 이야기다. 타티의 원작 시나리오에는 무대가 파리와 프라하였다. 하지만 쇼메가 장소를 프라하에서 에딘버그로 슬쩍 바꾸었다. 로 영화제에 갔다가 에딘버그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버린 탓이었다. 착하고 선량하지만 약간 얼빠진 마술사 타티는 시대의 변화에 도통 적응하지 못하는 구식 인물이다. 우연히 스코틀랜드의 에딘버그에 들렸다가 알게 된 객실 청소부 소녀가 타티를 따라오는 덕분에 뜻밖의 생활고에 시달린다. 순박한 시골 소녀 앨리스는 그에게 작은 기쁨이지만 금전적으로는 짐일 뿐이다. 관람 포인트영화 후반부, 마술사 타티가 데이트 중인 소녀를 피해 우연히 극장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극장 안에는 자크 타티 감독의 1958년작 가 상영 중이다. 영화 속의 타티와 애니메이션의 타티가 만나는 순간이 펼쳐진다. 이 짧은 오마주는 눈부시고 아름답다. 컬링감독 드니 코테 출연 엠마누엘 빌로두, 필로메네 빌로두 러닝타임 92분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황금표범상을 수상한 (2005)으로 주목을 받았고, 작년 디지털 삼인삼색에서 를 선보인 드니 코테의 신작이다. 제목이 이지만,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꿈꾸는 스포츠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캐나다 퀘벡에서 촬영된 이 영화는 도시 변두리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장 프랑수아와 딸 쥴리본의 일상을 다루고 있다. 삶의 즐거움을 찾지 못하는 장 프랑수아는 볼링장이나 모텔 관리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 간다. 딸은 아버지의 과잉보호 속에 학교도 가지 못한 채 지루한 나날들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부녀에게 의외의 사건이 일어난다. 프랑수아는 도로에서 사고로 죽어가는 아이를 발견하고, 쥴리본도 숲 속에서 시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이들은 시체를 발견해 놓고 신고도 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비밀로 간직한다. 일반적인 범죄 영화였다면 실종이나 시체가 또 다른 파장을 일으키겠지만, 여기서는 순수한 침묵을 더해 줄뿐이다. 이들이 살고 있는 불모의 땅은 철저하게 소통이 단절된 곳이다. 자연적 충만감보다는 사물의 무게감이 느껴질 정도로 사람들 사이에 무력감이 만연해 있다. 부녀의 현실 속에 죽은 자들은 실재(계)로써 침입한다. 장 프랑수아는 아이의 시체를 숨기고 나서야 컬링에 대한 욕망(판타지)에 빠져들고, 딸은 시체 곁에 누워 이상한 친근함을 느낀다. 관람포인트살얼음판을 걷던 부녀의 관계는 각자 죽음의 비밀을 간직하고 나서야 회복 가능성이 엿보인다. 드니 코테의 얼어 붙은 도로는 소통과 치유를 섣불리 언급하지 않는다. 우발적으로 형성된 부녀의 공감대를 통해 근원적인 욕망에 다가선다. 썰매나 컬링이 나오긴 한다!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감독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 출연 리카도 테레파, 필라 로페즈 데 아야라 러닝타임 95분'최장수 감독' 올리베이라가 1952년에 기획했던 프로젝트를 60년이 흘러서야 영화화한 작품이다. 레구아에 사는 이작은 어느 날 밤, 결혼 후 며칠 만에 죽은 앙젤리카의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하지만 안젤리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순간, 환하게 웃는 모습에 당황하고 만다. 그 때부터 이작은 앙젤리카의 유령에 빠져든다. 식사도 하지 않고 그녀에 관한 꿈(하늘을 날으는 환상)을 꾸던 그는 결국 죽음에 이른다. 사진가 이작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포도밭을 재배하는 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처럼, 그는 사라져 가는 것(소멸)을 붙잡으려고 한다. 그의 그런 예술적 성향이 유령과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즉 이작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 경계에 서 있다. 사물의 초월성과 환각의 초월성이 만나는 지점에 그는 위치하고 있다. 관객이 이작의 사진을 꼼꼼히 쳐다봐도, 사물은 진정으로 관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 사물 자체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작은 몸소 재연하고 있다. 현대에 어울리게 각색 전, 올리베이라의 오리지널 프로젝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트라우마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작은 나치의 박해를 받고 포르투칼로 흘러온 유태인이다. 당시 올리베이라에겐 유럽의 박해 문제가 화두였다. 그러나 오늘날 정치 문제는 희석되었고, 이작의 고통을 구원해 주는 앙젤리카(천사)에 더 방점을 찍게 되었다. 관람포인트올리베이라에게 중요한 것은 이작의 운명이다.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드레이어식의 구원, 즉 의 숭고함'을 떠올렸다. 이작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진정한 구원을 얻는 자이다. 오늘날 절대적인 사랑은 죽음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일까? 발랑가이감독 셰라드 안토니 산체스, 로빈 파르디그 출연 로빈 파르디그, 랜디 퀴로스 러닝타임 88분 전주영화제의 2009년 최고의 성과는 의 발견이었다. 산체스가 신작 로 다시 찾아온다. 발랑가이는 나무로 만든 ‘범선’을 뜻한다. 는 필리핀 민다나오 지역의 숲 속에서 이리저리 헤매는 남자들과 버려진 낡은 공항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준다. 섬 국가의 상징인 배를 환기시키는 영화 제목이나 쇠퇴한 비행장, 세 남자가 탄 고장난 자동차 등은 토착민들이 처한 유랑의 삶을 대변하고 있다. 한마디로 ‘좌초’의 기운으로 넘쳐흐른다. 영화의 주무대인 비행장에는 루마드족의 난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텅 빈 수용소처럼 열악한 곳에서 그들은 고단한 일상과 싸워나간다. 군대와 반군이 맞닥뜨렸다는 언급이 나오지만, 민다나오의 역사적 상황을 모르면 난해하게 보일 수 있다. 제2차 대전 이후 필리핀이 독립한 후, 카톨릭 정부는 민다나오의 모로인(무슬림)을 탄압했다. 정부의 무슬림 반군 소탕작전으로 인해 민다나오는 사회적 혼란을 겪었다. 이곳은 광석이 풍부한 산과 비옥한 고원이 있어서 가난한 정착민들에게 ‘약속의 땅’으로 불렸다. 하지만 외세와 강탈자들에 의해 착취와 빈곤의 땅으로 전락했다. 만다나오에는 기독교와 무슬림 외에도 토착원주민인 루마드가 존재한다. 도시로부터 온 NGO들이 이들을 도우려 하지만 주술사나 철없는 아이들, 병약한 노인들은 구원의 손길에서 벗어나 있다. 관람포인트여전히 산체스의 영화는 무시무시한 리얼리티를 판타지처럼 선보인다. 문화적 소수민들이 호모사케르가 된 상황을 다큐와 극영화를 넘나들며 그리고 있다. 지정학적 원인과 종교나 문화적인 이유로 붕괴된 한 지역(난민)을 살펴보는 냉철한 보고서다. 카를로스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 출연 에드가 라미네즈, 알렉산더 쉬어 러닝타임 330분 는 일리치 라미네즈 산체스, 우리가 '카를로스 더 자칼'이라는 부르는 희대의 테러리스트를 추적한 영화다. 카를로스는 동시대 열혈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좌파들의 68혁명에 영향을 받았고, 정치적인 자유를 위해 급진적인 폭력 운동을 펼쳤다. 자신의 이름 '카를로스'는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로부터 따왔다. 맑시즘이 붕괴하는 급변기에 카를로스는 공격적인 전사에서 냉소적인 용병으로 변해갔다. 한마디로 그는 폭력적인 킬러였으며, 무엇보다 무기와 자신의 힘에 매료된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시대를 거침없이 탐험하는 모험가였다. 카를로스가 자신을 직접 설명하는 문장은 오직 하나로 압축된다. "난 군인이다!" 카를로스는 테러리스트로써 전쟁에 나선 것이다. 그는 전쟁터에 선 군인이었기에, 자신의 신념과 행동은 올바른 것으로 대체되었다. 영화에서 정점에 오르는 에피소드는 카를로스가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과 함께 1975년 12월 21일, OPEC 회의장에서 펼치는 인질극이다. 결국 오스트리아 정부는 카를로스 일당의 협박에 굴복하여 비행기를 제공하고, 사우디와 이란 역시 그들의 석유장관 몸값으로 5천만 불을 지불한다. 카를로스는 알제리에서 인질을 석방하고 알제리 정부에 투항한다. 관람포인트놀랍게도 카를로스 일당은 처벌을 받지 않고 유유히 법망을 빠져나간다. 짧은 턱수염과 베레모를 쓴 카를로스는 한 눈에 체 게바라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카를로스 일당이 빠져나가는 장면은 화려한 콘서트를 마친 록커의 퇴장을 연상시킬 정도다. 이센셜 킬링감독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 출연 빈센트 갈로, 엠마누엘 자이그너 러닝타임 85분은 제목이 암시하듯이 살아남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할리우드 스타 빈센트 갈로가 탈레반 반란군 모하메드를 연기한다. 빈센트 갈로가 아프가니스탄인으로 나오는 게 다소 황당할지도 모른다. 고속도로에서 드라이브를 하는 대신 터번을 두른 갈로는 일단 상상이 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걱정도 필요 없다. 아프간어를 들을 리는 없다. 이 영화는 무성영화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사가 거의 없다. 이야기는 바주카포를 쏴서 순식간에 미군을 죽인 모하메드가 계곡에서 헬리콥터의 추격을 받은 후 생포되면서 시작된다. 수용소로 이송되어 물고문과 구타를 받던 그는 자동차로 이송 중에, 짐승이 충돌하는 사고를 틈타서 탈출에 성공한다. 그 후 70분 가량 도망자의 삶만이 펼쳐진다. 어느새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아프가니스탄은 사라지고, 그는 유럽의 중심에서 '도망자'가 된다. 영하의 폴란드와 노르웨이의 숲을 뛰어다니는 모하메드는 자신을 쫓는 맨헌터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영화는 양면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주인공 모하메드 입장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탈출극'이지만, 한적한 시골 마을에 사는 순박한 유럽인들 입장에서는 그의 출현은 연쇄살인과 '스릴러'를 의미한다. 관람포인트모하메드는 추격대에서 벗어나 인근 마을로 스며든다. 그의 존재는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간다. 북유럽에선 중동을 쉽게 상상할 수는 없다. 따라서 폴란드에 텔레반 병사가 도착한다는 것은 공포의 대상이 현실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야말로 이방인의 불시착이다. 리스본의 미스터리감독 라울 루이즈 출연 멜빌 푸포, 레아 세이두 러닝타임 266분 영화는 스스로 '고통의 일기'라고 정의내리지만, 신비로움 또한 곳곳에 혼재되어 있다. 디니스 신부가 키운 열네 살 고아 주앙은 어느 날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폭력적인 남편을 둔 불쌍한 백작부인 앙젤라가 자신의 어머니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는 훗날 이 이야기의 화자인 페드로 다 실바가 된다. 페드로와 그를 보호해 준 디니스 신부를 축(두 사람의 내레이션으로 진행)으로, 운명의 씨줄과 날줄이 파생한 불행들은 먼 바다로 향하는 파도처럼 퍼져나간다. 19세기 작가 카밀루 카스텔루 브랑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대서사시는 빅터 위고나 찰스 디킨슨의 상상력을 능가할 정도로 이야기의 그물망을 넓고 깊게 펼친다. 루이즈는 오랫동안 애착을 느꼈던 의식과 시간의 대가 프루스트 대신 포르투칼의 디킨슨을 고른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엄청난 비밀은 페드로보다는 디니스에게 있다. 그는 여러 가지 얼굴,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그는 신부이기 전에 아기 페드로를 살려낸 집시 사비노 카브라이자 군인이자 유령처럼 나타났다가 충고를 하고 사라지는 세바스티앙 데 멜로였다(그에겐 비밀의 방이 있다). 주인공 캐릭터를 유한한 육체에서 벗어나, 그의 시공간 모든 곳에 편재하게 만드는 루이즈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계속 유지 된다. 관람포인트결국 인간 안에 모든 미스터리가 담겨 있다. 루이즈의 영화적 짜임새는 때보다 훨씬 유연하고 능수능란해 졌다. 미스터리라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감정의 순간을 밀도 있게 포착하고 있다. 리스본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