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4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 @GETTYIMAGE
1983년생. 프랑스 출신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수상을 두고 각종 언론은 ‘변화’ ‘파격’이란 표현을 씁니다.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만장일치를 이끌어냈던 것과 달리, 기이하다고 소문난 ‘문제작’ 〈티탄〉은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갈렸다고 하죠. 영화를 본 기자와 평론가들의 말을 조합해보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예측 불가능하며, 극단으로 몰아치는, 소름 끼치게 무섭고 충격적인, 기이하고 암울하며, 유머러스하고, 궁극적으로 삶을 긍정하는 매혹적인 작품. 그럼 줄거리를 살펴볼까요? ’자동차와 섹스를 나누는 젊은 여성 살인마’에 관한 영화?(세상에!) 과연 어떤 내용인지 상상이나 할 수 있나요?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센세이션한 작품 〈로우〉는 채식주의자 가정에서 자란 주인공 ‘쥐스틴’이 자기 안의 숨겨진 ‘식인 욕망’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 대학 수의학과에 입학한 쥐스틴은 신입생 환영회에서 억지로 동물을 내장을 먹은 이후 솟구치는 욕망에 이끌려 날고기와 인육을 탐하게 되죠. 카니발리즘을 소재로 한 이 독창적인 영화는 여성을 피해자가 아닌 포식자로 설정한 전복성이 빛나는, 자신을 억압하는 틀을 깨뜨리고 ‘진짜 나’를 마주하는 혼란과 괴로움에 관한 성장 영화이기도 합니다.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은 1993년 〈피아노〉의 제인 캠피온 감독에 이어 황금종려상을 받은 역대 두 번째 여성 감독입니다(28년씩이나 걸리다니!). 시상식이 끝나고 기자들을 만난 뒤쿠르노 감독은 “내가 받은 상이 내가 여성인 것과는 관련 없길 바란다. 제인 캠피온이 이 상을 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 지 많은 생각이 든다. 앞으로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성 수상자가 뒤를 이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뒤쿠르노 감독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본인은 페미니스트이며 자신의 영화는 페미니즘적이지만, ‘여성 영화를 만드는 여성 감독’으로 정의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해왔죠.

시상자 샤론 스톤에게 트로피를 건네 받는 모습 @GETTYIMAGES
“여성성’은 겉모습에 관한 것이 아니에요. 그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흐릿하고 광범위하고 유연해요. 성별은 나와 상관이 없어요. 성별만으로 사람을 정의할 수는 없어요.”
“젠더 다양성은 제 영화의 주된 주제이면서 제가 계획하지 않은 주제이기도 합니다. 저한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워요. 정치적인 팸플릿이 아니죠. 단지 제가 세상을 보는 방식일 뿐이에요. 저는 세상이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매일 더 ‘유동적으로(fluid)’, 여러 가지 방식에서.”
‘섬세하다’ ‘부드럽다‘ 등 흔히 ‘여성 감독’을 구별하며 붙이는 말들은 괴물 같은 영화를 만드는 뒤쿠르노 감독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완벽하다는 건 죽은 것이나 다름없죠. 괴물성은 규범의 벽을 무너뜨리는 무기이자 힘입니다. 한 상자 안에 담길 수 없는 아름다움과 감정이 너무 많아요.”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영화를 보며, 낡고 오래된 세상이 산산조각나는 충격을 음미하며, 나 역시 유일무이한 ‘진짜 나’로 다시 깨어나길 기대해봅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티탄〉은 왓챠가 수입 및 배급을 맡아 국내 극장 개봉 후 왓챠에서 공개될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