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싸'로 살고 싶어 || 엘르코리아 (ELLE KOREA)
SOCIETY

'아싸'로 살고 싶어

코로나19가 종식되어도 자발적 '아싸'로 살고 싶은 나, 비정상인가요?

정윤지 BY 정윤지 2021.07.21

Addicted 

to 

isolation

 
 
적극적인 사회 참여 아니면 온전한 고립. 선택지가 이 두 가지만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마세요. 사람들과 다시 만나 연결된다는 생각에 너무 압도당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BC; Before Corona

일요일 새벽 5시, 런던 해크니. 나는 케밥 가게 지하에 있는 클럽에 있다. 주변에는 낯선 사람들로 가득하고, 함께 밤을 지샌 친구 한 명이 몰골이 말이 아닌 채로 내 앞에 앉아 있다. 8시간 동안 정신없이 술을 마시고 춤췄으니 나 역시 ‘저’ 모습일 게 뻔하다. 코로나19가 우리들의 일상을 빼앗아가기 이전, 주말 저녁 약속은 늘 이런 대혼란으로 결론을 맺었다. 파티에 또 파티, 또 이어지는 파티는 밤을 꼬박 새우고 난 뒤, 다음날 브런치까지 먹고서야 끝이 나곤 했으니 말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 스킬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혼자라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지루하고, 잠이 들 때조차 내 의지대로 깊은 수면에 빠져들 수 없었으니. 잠자리에 들려면 팟캐스트를 틀어놓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목소리에 의지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 나약함은 코로나19 봉쇄조치가 시행되며 그 절정을 찍었다.
 

AC; After Corona

3월 23일(영국 기준), 격리가 찾아온 순간 내 인생의 불도 꺼졌다. 난생처음으로 내가 사는 공간의 네 벽면 안에 온전히 나 혼자뿐인 기분을 느끼게 된 것. 처음 몇 주간은 꽤 고통스러웠고, 극심한 두통 때문에 진통제를 먹어야 할 정도였다.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더니 나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버린 것 같아 덜컥 겁이 났다. 코로나19 이전의 생활을 추억하지 않으려 했다. 생각하다 보면 세탁기 속에 갇혀 뱅글뱅글 돌아가는 빨랫감처럼 끝없이 마음을 지치게만 할 뿐. 그렇게 1년여가 지나는 사이 나는 바람이 빠지며 땅바닥으로 서서히 내려오는 풍선이 된 것 같았다. 가끔 집 근처에서 친구를 만나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곤 했지만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패턴이었다. 예전의 소란스러움이 그립다가도 어느새 위험 부담 없이 일상 속 소소함과 내가 연결되는 듯한 안락함에 차츰 익숙해졌다. 줌(Zoom)을 통해 ‘홈 파티’를 하기도 했지만 클릭 하나로 쉽게 그 자리를 뜰 수 있고, 숙취, 주사나 엉뚱한 실수를 저지른 것에 대한 자책감도 느낄 필요가 없었다. 
 
처음 본 사람들에게 나를 어필해야 한다는 부담 없이 그저 더 편안한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다니! “고독에 새롭게 길들여지고, 새로운 만족감을 발견한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 스스로 삶에 깊이와 의미, 성취감을 더할 수 있기 때문이죠.” 심리학자 벨라 드 파울로(Bella de Paulo)의 설명이다. 심리학자 폴린 레니 페이튼(Pauline Rennie-Peyton) 박사 역시 이에 동의한다. “말하자면 지금의 팬데믹은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시간입니다. 무엇이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지, 타인이 당신에게 기대하는 ‘군중 정체성’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죠.” 혼자만의 시간, 고독, 다 좋다. 하지만 새로운 걱정이 고개를 든다. 팬데믹 종식 후 다시 사회생활에 합류했을 때 새롭게 터득한 정체성이나 자아에 대한 감각을 잃을까 하는 우려. 사회 집단에서 대세가 되지 못하고 ‘아싸’가 될까 두려워하는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이 이제는 오히려 ‘인싸’가 되길 어색해하는 사교모임 공포증, 일명 포고(FOGO; Fear of Going Out) 증후군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예전처럼 행동하거나, 아니면 록다운 기간 동안 새롭게 발견한 삶의 균형을 원하거나. 이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에요.” 폴린 박사는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 우리 모두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정신건강을 연구하는 심리학자 아비가엘 산(Abigael San) 박사의 조언에도 귀 기울여보자. “적극적인 사회 참여 아니면 온전한 고립. 선택지가 이 두 가지만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마세요. 사람들과 다시 만나 연결된다는 생각에 너무 압도당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외로운 도시 Lonely City〉의 작가 올리비아 랭(Olivia Laing)은 ‘우리는 사회적 접촉과 군중을 갈망하는 동시에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 적은 바 있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사람들 틈에 있을 수 있는 방법으로 미술관에 가는 걸 들 수 있어요. 소셜라이징과 내적으로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건 결코 쉽지 않지만, 이렇게 소소한 방법부터 시작하면 좋겠죠. 스케줄을 꼼꼼히 기록하세요. 지나치게 유흥이나 재미만 추구하는 일정으로 일상을 채우지 않도록 신경 쓰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나는 누에고치 상태에서 벗어나 균형 잡힌 나비가 되고 싶다. 지난 1년간 쾌락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면서 나름 신비롭고 세련된 여성으로의 변신을 꿈꿨다. 책 한 권을 동반자처럼 늘 곁에 두고서, 혼자 외출하고, 혼자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더라도 전혀 위축되지 않는 그런 여성! 하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테킬라와 춤, 유흥과 쾌락으로부터 저항할 수 있을까? 친구들과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서 부대끼며 고립과 관계 맺음 사이의 균형감을 실현하는 생활이 과연 가능할까? 이 궁금증에 대한 답을 알기 위해서라도 코로나19가 종식되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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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정윤지
    사진 THIEMO SANDER
    글 BECKY BURGUM
    디자인 한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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