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작품 마칠 때마다 긴 시간을 들여 모니터한다죠. 〈빈센조〉 이후에도 그랬나요
〈빈센조〉 방영 시간에 다른 일정이 겹치지 않아 거의 ‘본방 사수’했어요. 그 다음 넷플릭스에 올라온 걸 또 봤고요. 보통 처음 볼 때 제가 연기한 장면 위주로 자세히 살피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저도 모르게 모니터링을 망각하고 시청자 입장에서 보더라고요. 재미있는 장면이 너무 많아서요.
성장형 빌런 장한서로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방영 이후 피드백을 모아본 소회는
다행스럽게도 제가 원했던 대로 받아들여준 것 같아요. 감독님과 작가님이 섬세하고 정확한 분들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어요. 오차 범위가 크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헤드 스태프들이 잡아주신 덕이죠.
재킷과 셔츠, 팬츠는 모두 로퍼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링은 Portrait Report.
장한서는 겁을 아는 빌런이죠. 그게 장한서가 가진 약점이자 성장 포인트였어요. 곽동연에게도 그런 면이 있나요? 자신을 성장시키는 약점이요
저는 현실주의자예요. 모든 일을 이성적으로 판단해요. 이렇게 이성적인 면이 수많은 감정을 느끼고 표현해야 하는 배우 입장에선 굉장히 불리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이런 면이 좋아져요. 자신을 믿음직스럽게 여기게 되거든요.
MBTI나 별자리 분석 결과에 ‘예술가’라는 단어가 안 나오면 그렇게 신경이 쓰인다면서요
완전요.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성향이라는 분석이 대부분이에요. 국회의원 하면 잘 맞는다 하고(웃음). 하지만 이제는 이게 장점 같아요. 어떻게든 장점으로 바꾸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안정성을 중시하는 인간이에요. 그 연장선으로 항상 자기 객관화를 하고요. 내가 어느 정도 할 수 있는지, 어떤 건 내가 하기 좀 어려운지.
맞아요. 제가 하지 못할 것에는 집착하지 않고요. 고등학생 때, 배우 일을 시작하던 무렵 저에겐 악이랑 깡밖에 없었어요. ‘제일 잘해야지’ ‘짱이 되어야지’. 열심히 하면 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다 스무 살 때 대본 하나를 받았는데 ‘나는 이 연기 못할 것 같은데’ 싶더라고요. ‘현타’가 온 거죠. 그때부터 내가 할 수 없는 것이 뭔지 보이기 시작했어요.
열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도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군요
비로소 일에 대한 이해도가 생긴 거죠. 어떤 작품이든 성공률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 목표일 수밖에 없잖아요. 이 시장이 돌아가는 당연한 방식을 깨닫게 되면서 나의 타율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안정적인 선택만 한다는 건 아니에요. 지금도 저는 늘 도전해요. 전작에서 하지 않았던 걸 하고 싶어 하고, 예상을 뒤엎을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고.
가수의 꿈을 안고 대전에서 서울로 혼자 올라온 게 14세 때였죠. 쉽지 않은 시작이었어요
뭐가 뭔지 모를 때여서 힘들다고 느끼기까지도 시간이 걸렸어요. 먹어봐야 뭔 맛인지 아는 타입이거든요. 한창 합기도 팀에서 운동하던 때였는데, 밴드 해보겠냐는 제안을 받은 거예요. 밴드 음악을 좋아하니 해보고 싶었죠. 그런데 부모님이 반대했어요. 제동이 걸리니까 반항심이 생겼죠. 해내 보이겠다며 혼자 올라왔고, 어떻게든 해내야 했어요. 합기도 할 때 팀에서 경쟁하고, 시합 나가면 메달 싸움 하고…. 그랬던 성향이 남아서인지 연습생 때도 승부욕을 불태우면서 달렸어요.
그 무렵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방장군 역 오디션을 봤어요. 생애 첫 오디션이었는데 합격했고요. 그런 성취는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그땐 목숨을 걸었어요. 아는 게 하나도 없는데, 딱 두 마디 적혀 있던 대본으로 오디션을 봐야 해서요. 게다가 진짜 필드에 나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온몸이 경직됐죠. 캐스팅된 건 엄청난 행운이지만, 떨어졌더라도 괜찮았을 것 같아요. 다 쏟아부었으니까. 그때 얻은 최고의 자양분이죠. 노력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는 거요.
재킷과 셔츠, 팬츠는 모두 Nueque. 로퍼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링은 Portrait Report.
스트라이프 패턴의 셔츠는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버뮤다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파인애플 펜던트가 달린 네크리스는 Recto.
지금껏 함께 일한 이들의 피드백으로 알게 된 자신의 장점이 있나요
〈빈센조〉 때 감독님께 들은 이야기인데. 저라는 사람이 가진 리듬이 엄청 변칙적이래요. 이 박자에 들어갈 것 같은데 저는 꼭 다른 박자에 들어간다고요. 그 말이 정말 좋았어요.
스물다섯이 된 지금 돌이켜보면 어떤 것이 본인을 지켜주는 보호구 혹은 무기가 된 것 같나요
능력치가 늘 우선이었거든요. 그걸 만들어내려고 최선을 다했어요. 저는 나이에 비해 연기 잘한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해리포터〉를 만들 때 대니얼 래드클리프나 엠마 와슨에게 어느 누가 ‘나이에 비해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했을까요?
주변에서의 평가나 자신의 성장 속도를 의식하는 편인가요
의식해요. 스트레스받을 때도 있고요. 지금은 〈빈센조〉가 잘됐기 때문인지 썩 괜찮아요(웃음). 그런 의식도 남들과 비교했을 때의 속도나 위치가 아니라 저 자신의 느낌에서 와요. 한 작품을 끝냈는데 아쉽거나 힘들었다는 기분이 들면 그 다음 스텝이 걱정돼죠.
그렇다면 어떤 때에 만족 혹은 자신감을 얻나요
일하면서 누군가를 설득시켰을 때. 아니면 반대로 뭔가 새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됐을 때요. 제가 확장된 것 같아 자신감이 붙어요.
언젠가 ‘좋아하는 일을 부끄럽지 않게 하면서 살고 싶다’는 말을 한 적 있죠
안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들을 보면 제가 부끄럽더라고요. 이 일을 하면서 제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능력치가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는 거요.
어떤 소신이나 생각이 삶의 방향을 건강하고 옳은 쪽으로 이끄나요
처음 연기 시작할 때 어떻게 하면 더 빨리 연기력을 늘릴 수 있을지만 생각했어요. 딴 데로 눈 안 돌리고 몰두한 시간의 힘을 경험으로 알았어요. 그 깨달음으로 가는 것 같아요.
저는 늘 우선순위를 정한 다음, 안 되겠다 싶은 건 목록에서 다 버려요. 빠르게 포기해요.
나이에 비해 성숙한 면이 있다는 이야길 들어왔어요. 실제로도 형들과 잘 어울리죠.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영원히 철없는 소년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교적 분별력이 빨리 생기는 사람도 있잖아요
나이 논란은 제 운명이에요. 초등학교 5학년 때 버스를 탔는데 중학생 요금을 내라는 거예요. 그때부터 시작이었죠. 물론 이건 외양의 문제였지만…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미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형들과 잘 놀았어요. 중학교 2학년이었던 형과 친했거든요. 그런데 저희 아버지도 그랬대요. 주로 형들과 어울렸다고 하더라고요. 집안 내력인가 봐요(웃음).
셔츠와 벨티드 와이드 팬츠는 모두 Lemaire. 플립플롭은 Fila. 브레이슬렛은 Portrait Report.
셔츠와 팬츠는 모두 Nueque. 링은 Portrait Report.
화이트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네크리스는 Frica.
몇 해 전 〈라디오스타〉에서 “신세 망칠까 봐 클럽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고 발언한 이래, 요즘도 금요일이면 무조건 집에 머문다죠. 단지 경계심 때문인가요? 본래 자신의 코드가 그런 것과 맞지 않는 건 아닐는지
완전히 맞아요. 많은 사람이 걱정하며 말했어요. 저러다가 언젠가는 놀 것이다 하면서요. 물론 경계심도 있었죠. 하지만 유혹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버티는 게 아니었어요. 그냥 그런 놀이와는 안 맞는 사람이에요. 전 국민이 다 클럽 다니며 노는 건 아니잖아요. 저 같은 사람도 얼마나 많겠어요. 그중에 제 모습만 미디어를 통해 알려졌을 뿐이죠.
무서운 게임 CD를 하나 샀어요. 친구들과 그 게임 할 때 진짜 재미있었어요. 회사 사무실에도 자주 기웃거려요. 좋은 스피커가 하나 있는데, 아무도 안 써요. 거기서 음악 엄청 들어요.
최근 장르물에서 존재감을 빛낸 경우가 많았어요. 언젠가는 보통의 청춘을 주제로 한 작품을 찍고 싶다고 했죠
제가 생각하는 청춘은 부딪히고 깨지고 싸우는 거예요. 그러면서 뭔가를 깨달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요. 그런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어요. 저는 그렇게 청춘을 보내지 못했거든요. 깨지는 순간 은퇴해야 하니까요(웃음).
곽동연의 청춘을 드라마로 만들면 어떤 단면이 그려질까요
(머뭇거리며)조금 안쓰러울 것 같기도 해요. 한 발 떨어져 보면. 정작 본인은 자신이 안쓰러운 줄 모르는, 하루에 알바를 3개씩 하는 20대의 모습이랄까.
지금까지 자신을 안쓰럽다고 생각한 적 없었나요
없어요. 마냥 좋았어요. 물론 지금 생각하면… 연습 좀 덜하고 PC방 갈 걸 그랬다 싶기는 하죠(웃음).
한창 〈6/45〉 촬영 중이죠. 군인들이 등장하는 코미디영화예요
되게 동화적인 이야기예요. 극악무도한 인물도, 세상을 뒤흔드는 사건도 없어요. 무엇보다 좋은 건 삶에 대한 인물들의 태도가 폭력적이지 않다는 거예요. 제가 맡은 캐릭터는 김만철, 상병이에요. 어리숙한데 똑똑해 보이고 싶어 하죠. 너무 바보인데 영화에서 막중한 임무를 맡게 돼요.
다르죠. 전 그렇게 하찮아 보이지는 않잖아요? 군복을 입지만 멋있는 모습을 기대하시면 안 돼요. 그 영화에서는 다 볼품없고 하찮습니다. 이건 꼭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