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지금 대학생들에게 필요한 건? 바로 쿼루틴! #엘르보이스

비대면 시대에 필요한 기술, 교수님이 말한다

BY이마루2021.06.15
 

 비대면 수업을 위한 쿼루틴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는 대형트럭만큼이나 가득하다. 우리가 할 일은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것뿐이다.” 33세부터 일주일에 6일 동안 달리기를 쉬지 않았다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위와 같이 썼다. 어쩐지 “연습할 때 생각하긴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김연아)나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이효리)라는 말과 맞닿아 있는 이 문장을 살피다 보면 인정하게 된다. ‘대형트럭’처럼 거창한 이유는 쉽게 유혹을 탈 뿐이라는 것, 그래서 훌륭한 사람들은 아주 적은 이유를 소중히 붙잡고 살아간다는 것을.
 
코로나19와 뉴 노멀은 모든 것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한국철학을 전공했다. 취재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학자의 길로 들어선 후 대학에서 쭉 철학 수업을 하고 있다. 이번 학기 주제는 ‘플랫폼과 철학’ ‘기이하고 으스스한 콘텐츠 장르와 철학’으로 가장 첨단에 선 플랫폼과 SF 장르 그리고 전통 한국철학을 결합하겠다는 야심 차다면 야심 찬 기획이다. 따라서 수업 성과는 나보다는 학생들에게 달렸다.
 
한국철학은 일반적으로 ‘리(理)’를 중시한다. “그럴 리가 없다”는 말에서 가장 잘 설명되는 ‘리(理)’는 그 자체로 대의명분(〈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오구라 기조)이다.  ‘리’는 한국인을 높은 교육열의 민족으로, 현재 세계가 놀라는 한국인의 모습을 만들어오는 데 일부분 기여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비대해진 ‘리’가 위태롭게 무한 질주하던 한국의 교육현장을 멈춰 세웠다.
 
비대면으로 실시간 줌 수업을 한 지 정확히 1년이 돼간다. 비대면 수업은 정밀한 계산을 요구한다. 코리언 타임은 이제 안녕! 출석 체크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각에 시작한다. 농담을 주고받을 수도 없다. 그러다 보니 진도가 빨라도 너무 빨리 나간다. 준비한 PPT 분량이 달려서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교수는 그만큼 더  수업 준비에 집중해야 하지만, 학생들은 등록금이 아깝다고 한다. 그럴 만하다. 온라인 수업에서 효율을 거두고 있는 사람은 상위 5%밖에 되지 않는다는 통계도 있으니까. 대체 비대면 시대에 맞는 대학 수업에는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고심 끝에 내가 생각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대학의 커뮤니티 기능을 살리는 것. 그러려면 일상의 관리를 공유하는 게 좋다. 보통 코로나19로 인한 자가 격리를 ‘쿼런틴(Quarantine; 격리)’이라 부르는데, 요즘엔 여기에 루틴을 붙인 ‘쿼루틴(QuaRoutine)’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공간에는 제약이 있지만 갑자기 많아진 시간을 관리하기 위해 각자의 루틴을 만들고 SNS로 공유하는 놀이다. 우선 이번 학기 주제인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한국 학생을 위해 ‘오픈카톡방’, 중국 학생들을 위해 ‘위챗’을 준비한다. 비대면 수업에 흥을 돋우기 위해 실시간 게임 요소를 집어넣은 상호작용 앱 ‘소크라티브’ ‘카훗’ 등도 실험해 본다. 그 많은 실험 중 단언컨대 함께하기 가장 만족스러운 앱은 ‘챌린저스’였다. 나는 ‘오전 6시 기상’과 ‘하루 6잔 물 마시기’ 도전을 3000명과 함께 2주간 해냈다. 그러고선 이 시스템에 완전 반했다. 1만 원씩 걸고 100% 성공하면 원금에 상금까지 더 받지만, 실패하면 내가 내건 1만 원은 다른 사람에게 상금으로 돌아간다. 돈을 벌어도 좋고, 잃어도 남에게 좋은 일 하는 것이니 어쨌든 나쁜 일은 아니다. 결국 나와 학생들은 플랫폼의 역할도 배우고, 목표한 ‘쿼루틴’을 만드는 데 다가선 것 같다.
 
학생들과 루틴 앱을 쓰기 시작하며 일상은 더 이상 대의명분이나 의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MZ 세대에게는 작은 행동을 촉진시키는 UI/UX가 중요하다. 내 루틴을 어떻게 직관적으로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삶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루틴을 유도하는 멘트도 달라져야 한다. “택시비를 아끼세요” 대신 “요즘 야근 많이 하시나 봐요. 힘내세요” 혹은 “이럴 바엔 차라리 차를 사는 건?”이라는 표현으로 승부하는 요즘의 지출 관리 앱처럼 말이다.
 
나의 두 번째 비대면 수업 필살기는 그 체력으로 글쓰기를 해내는 것이다. 코로나19 시대에 대학은 죽는다 해도 자기 언어로 글을 써내는 공동체는 살아남을 것이기에. 글쓰기를 위해서도 작은 반복이 필요하다. 매 수업 시간, 매 학기 하나의 글을 써내기 위해 학생들은 내 언어로 발원하는 루틴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만큼은 오로지 자기 삶의 문제를 글로 써내는 것 외에는 할 수 없도록 뇌를 항복시키는 몰입의 시간이다. 학생들은 ‘깔때기’마냥 모든 경험이나 생각이 그 주제나 개념 중심으로 모이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내가 경험하는 모든 일이 오로지 그 글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결국 철학은 내 존재를 깊이 탐구해 행동의 리듬을 바꿔내는 것이다. 루틴이 글쓰기를 위해 필요했다면, 글쓰기는 삶을 바꿔낼 것이라고 믿는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구에 상륙한 후, 우리는 그동안 컸던 것이 작아지고 작았던 것이 커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다. ‘리’라는 대형트럭은 만물의 이치로, 어차피 내가 돌보지 않아도 잘 돌아가는 것이다. 내 삶의 작은 습관을 크게, 또 익숙하게 끌어안는 교육의 뉴 노멀을 향한 나의 실험은 오늘도 진행 중이다. 부디 건투를 빌어주시길!
 
이원진  〈니체〉를 번역하고, 〈블랙 미러로 철학하기〉를 썼다. 현재 연세대학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철학이 세상을 해독하는 가장 좋은 코드라고 믿는 워킹 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