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우리 모두가 늙음에도 노인의 삶에는 무관심한 이유 #엘르보이스

강원도 산골에 왕진의사가 필요한 이유. 그곳에는 노인들이 있다

BY이마루2021.06.14
 

보이지 않는 노인들

 
어릴 때는 노인의 삶에 대해 비교적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열두 살이 될 때까지 한집에서 살았으니까.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할머니는 우리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의 마을에서 자신의 관계를 구축해 갔다. 몇 주에 한 번꼴로 할머니를 보러 가면 할머니의 노인정 친구들이 나를 ‘누구 할머니 손녀구나’라며 불렀다. 할머니의 88세 생신을 축하하는 미수연에는 할머니의 자매, 수십 년 전의 이웃,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먼 사촌들이 할머니를 매개로 한자리에 모였다. 그 시끌벅적한 풍경은 손녀로서 아주 행복하고, 제법 충만한 순간이었다. 할머니의 세상이 급속도로 쪼그라든 것은 얼마 뒤의 일이다.
 
혼자 사는 노인이 집 안에서 넘어져 머리를 부딪히는 사고는 빈번하게 일어난다. 145cm의 작은 체구, 90세가 가까운 노인의 몸은 아주 연약해서 한번 충격받은 몸은 말을 잃고 금세 홀로 거동조차 못하게 됐다.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됐다. ‘연춘빌라’에서 할머니의 삶을 정리 당하고, 막내 고모 댁을 거쳐 할머니는 2019년 요양원에 들어갔다. 어떻게 우리 할머니의 삶이 이렇게 순식간에 요양원의 침대 한 개와 서랍 하나로 순식간에 축소돼 버렸는지, 생각하면 기가 막히다가도 그 나잇대의 노인에게는 유난스러운 비극도 아니라는 것을 식구들도 알았다. 고모들과 우리 가족은 번갈아 요양원을 찾았다. 방문 횟수도, 머무는 시간도, “유미자 어르신은 복이 많네요”라는 요양보호사들의 말을 빈말로라도 들을 법했다. 2020년, 코로나19로 요양원 면회가 금지되기까지는 말이다. 우리 가족의 삶에서 할머니가 언급되는 횟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아주 가끔 허락되는 면회는 불편하고 어색했다. 마스크와 위생장갑을 끼고, 확성기를 대고 유리문 너머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에게 외치는 말들은 전혀 가 닿는 것 같지 않았다. 영상통화? 자그마한 스마트폰 화면에 갇혀 손을 흔들고 있는 게 나인지 아빠인지, 할머니가 구분이나 할 수 있을까? 할머니는 점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돼가고 있었다.
 
강원도 원주에서 거동이 불편하거나 병원을 찾지 못하는 노인들을 직접 방문하는 왕진의사 양창모는 저서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 현대사회를 괴리사회라고 일컫는다. ‘의사가 환자의 집 문지방을 넘고 생활 공간에 들어가야 보이는 것들’이 있는데, 결정권을 가진 이들의 삶은 경험하는 사람의 고통으로부터 안전하게 괴리돼 있다는 것이다. 강원도의 자연이 좋다는 그 많은 여행자들 또한 보지 못한다. 넓고 편리한 고속도로와 뻥 뚫린 터널 너머 산등성이에  듬성듬성 흩어져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대다수가 고령자라는 사실을. 특정 지역과 계층, 특정한 세대와 성별의 이야기는 아주 작은 불편까지 떠들썩하게 회자되는 한편, 어떤 이야기는 놀랍도록 들리지 않는다.
 
얼마 전 어버이날 면회에서 할머니 손을 1년여 만에 잡을 수 있었다. 우선 접종 대상자들의 백신 접종이 1차 완료된 덕분이다. 그러나 지난 1년 반 동안 할머니는 목소리를 잃은 것 같았다. “할머니, 저 누구예요? 제 이름 한 번만 말해 주세요” 하고 거듭 조른 끝에 겨우 할머니 혀끝에서 툭 힘없이 떨어지던 내 이름. 내가 잊고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할머니의 세상에서 나도 잊힌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제야 두려움과 슬픔이 아주 뾰족하게 찾아들었다. 우리가 이야기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안부를 더 자주 묻는 것은 어쩌면 우리를 위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마루  〈엘르〉 피처 에디터. 지방 도시 출신으로, 세상이 말하는 수도권 기준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풍경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