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페이지에 연재됐던 인터뷰 시리즈, 〈멋있으면 다 언니(이하 〈멋언니〉)가 책으로 엮여 나왔다. 시리즈의 첫 시작이 궁금하다
2019년 김하나 작가와 함께 펴낸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가 카카오페이지에 챕터 별로 나뉘어 연재 됐는데 반응이 좋았다. 총 조회수 10만 뷰가 넘을 정도 였으니까. 이런 식으로도 책이 읽히는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던 차 카카오페이지 일반 도서 담당 이수현 팀장으로부터 인터뷰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요청을 받게 됐다. 매체를 떠난 이후 에세이와 칼럼 요청은 곧잘 받았지만 인터뷰를 하는 일과는 멀어졌다. 가장 갈증을 느끼고, 하고 싶었던 일에 대해 정확히 제안을 받은 것이다. 인터뷰가 과연 카카오페이지라는 플랫폼과 어울리는 콘텐츠일까 고민하던 차 이수현 팀장의 말이 힘이 됐다. “여성 독자가 많은 카카오페이지 내의 판타지 소설에는 여성 영웅이 많이 등장한다. 독자들이 소설 읽기를 멈추고 현실로 돌아왔을 때 느낄 수 있는 초라함과 단절감. 그 간극을 해소할 수 있는 논픽션으로 멋진 여성들의 이야기가 들어갔으면 한다”라는 말이었다.
제목 그대로 정말 ‘멋있는’ 언니들이어야 했던 셈이다. 지면 매체나 레거시 미디어가 보도하는 인물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는 인터뷰이 리스트에서 웹소설 작가인 자야 작가의 존재는 낯설기도 했다
유저들이 호의적인 반응을 일으킬 만한 카카오 페이지 내의 스타가 있길 처음부터 바랐다. 〈에보니〉라는 엄청난 작품을 썼지만 이전에 한번도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희소성도 있었다.
다른 인터뷰이들의 인터뷰와 달리 자야 작가의 인터뷰에서는 남편의 존재가 여러 번 드러나기도 한다. 의도한 것일지
문화적으로 우리가 익숙하게 보고 자라온 이성애에 대한 환상을 촉발하는 로맨스 소설을 쓰는 작가가 아니다. <에보니〉또한 아버지와 약혼자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갇힌 여자가 출옥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자체가 페미니즘적이고, 동등한 파트너로서의 연인 관계를 그린다. 이 사람의 사랑에 대한 관점이 자연스레 궁금했는데 준비한 질문을 하기 전에도 자신을 계속 믿어줬던, 힘들었던 시기 그 바닥을 같이 지탱해 준 사람으로 남편의 이야기가 자연스레 드러났고 그 관계가 건강하게 느껴졌다. 이런 기혼 여성의 삶도 있다는 것,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과의 결혼 생활 이야기는 하나쯤 넣고 싶었다.
연재 때도 느꼈지만 책으로 보니 인터뷰이와 관련된 공간을 찾아가 다양한 각도와 거리에서 촬영한 사진이 지면에 리듬감을 한층 더 부여하더라. 사진 촬영에 관해서는 어떤 이야기가 사전에 오갔을지
사진의 중요성에 대해 설득하는 과정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내 의견이 받아 들여져 정멜멜 사진가와 작업하게 됐다. 기존 패션 잡지의 인물 사진을 작업한 사진가들과는 다르면서도 피사체에서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조용하게 담아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했을 때 정멜멜 사진가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현장에서는 인터뷰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나의 이기심이 발동해 욕심을 부린 것일 수도 있다(웃음). 정말로 알아서 좋은 결과물을 가져오는 사진가다.
책 소개 글 속 인터뷰이 리스트를 수식하는 글에 ‘환경의 도움 없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게 인상 깊었다. 중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이었을지
20, 30대의 독자층을 고려했을 때 그들에게 어떤 성공 스토리, 자신의 앞길을 어떻게 헤쳐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와닿을지 고민했다. 원래 태어날 때 가진 것이 많고 예정된 코스를 쫓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닿지 않을 것 같더라. 고시를 통과하거나, 여성 최초로 임원이 되거나, MBA 유학을 다녀온 여성들이 성공한 여성 상처럼 그려졌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시기에는 그렇게 정해진 길을 잘 따라간 사람보다는 보이지 않던 길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을 선정하는 게 중요했다. 첫 인터뷰이이자 연재의 시작으로 ‘박막례 유튜브’의 김유라PD를 택한 것도 그런 이유다. 소속없이 독립적으로 일하며, 전에 없던 길을 만들었으니까.
인터뷰 중에서도 그런 기준점이 언급된다. 손열음 피아니스트가 스스로 음악가 중에 평범한 환경이라고 언급하기도 하고, 육아로 인해 경력단절 될 뻔했던 이수정 교수의 이야기도 드러난다
‘흙수저’라거나 ‘존버’ 같은 이야기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나온다. 한계를 뛰어넘었다기 보다 불확실한 길이지만 그날그날 최선을 다해왔다는 것, 그리고 여전히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인터뷰는 기본적으로 대상을 열린 마음으로 들여다보는 작업이지만 그럼에도 책에 실린 아홉 명의 인터뷰이 중 나와 정말 결이 다르다고 느낀 사람이 있었을지
그런 인상을 인터뷰이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받았다. 섭외 단계부터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섞이길 바랐고, 책 디자인에도 알록달록 다양한 색을 사용했다. 굉장히 내향적인 주변 친구들은 손열음 피아니스트의 인터뷰 내용에 많이 공감을 하더라. 원래 자신은 내향적인 인간인데 일할 때는 스스로 소진 되더라도 타고난 성정을 뛰어넘어 큰 것을 해내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그런 걸 보면 ‘일’이란 대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반대로 장혜영 국회의원이나 전주연 바리스타처럼 사람들과 함께 큰일을 해내는 것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얻는 사람들을 볼 때 개인적으로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카카오페이지에서 책으로 엮이며 인터뷰 구성이나 방향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모바일 엔터테인먼트 영역인 카카오페이지를 벗어나 책으로 엮였을 때는 조금 더 진지한 접근이 필요해 삭제한 부분들이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호흡에 관해서는 내가 해왔던 잡지의 지면 인터뷰보다, 오히려 모바일과 책이 더 통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잡지 인터뷰가 한정된 디자인 내에서 불필요한 내용을 삭제하고 대화의 밀도를 높이는 작업이라면, 이 인터뷰는 조금 더 느긋하게 읽히길 바랐다. 단거리 달리기와 주변의 풍경을 함께 바라보며 천천히 걷는 산책의 차이라고 할까(웃음). 하루에 커피는 몇 잔을 마시는지, 새로 이사한 지역은 어떤지 같은 질문은 잡지 에디터로서는 지면에 넣지 않았겠지만 ‘멋언니’ 시리즈에서는 이런 질문들이 인터뷰이에 대한 정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과정에서 인터뷰 중간중간 인터뷰어 황선우의 존재가 드러나기도 한다. 예전에도 이 인터뷰이를 만난 적 있구나 라거나, 개인적인 교류가 있는 사이구나 같은
기획 초반에는 ‘멋있으면 다 언니’라는 제목 없이 ‘황선우의 인터뷰’라고 불렸을 정도로 프로젝트 자체가 인터뷰어인 나 또한 중요한 존재로 접근해줬다. 그리고 어떤 정보들은 지우는 것이 독자들에게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손열음 피아니스트는 한 번 만났고, 내 글이 그의 공연 프로그램에 인용되는 교류가 있었는데 그런 정보를 다 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제 서른 살이 된 이슬아 작가도 그가 20대일 때 처음 만났었다. 김보라 감독과도 만난 적 있는 사이이고.
인터뷰어가 인터뷰 대상을 이미 잘 안다는 사실은 독자들에게 신뢰감을 주기도 한다
책 날개의 저자 소개를 ‘잡지 만들고 인터뷰하는 일을 20년 했고’로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20년’이라는 표현을 뺐다. 너무 나이가 많게 느껴지려나 싶어서(웃음). 그런데 내가 남자였다면 한 분야에서 이토록 오래 일했다는 사실을 과연 쑥스럽게 느낄까, 오히려 노련함과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장치로 생각하지 않을까 싶더라. 주변에서 이제 후배에게 물려주고 떠나야겠다는 말을 하는 임원급 40대 여성을 곧잘 보는데 그 직급의 또래 남성들은 그런 생각을 안하는 것 같거든. 나 또한 이수정 교수님을 보며 저렇게 머리가 희끗한데도 현장의 최전선에 있는 여성 선배가 있다는 게 참 좋다는 마음이 들었다. 독자들도 나에 대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각기 일하고 있는 분야가 다르더라도.
재미있음에도 책을 한 번에 쭉 다 읽기는 어려웠다. 정말로 하나하나 그 사람의 삶이 밀려드는 느낌 때문에 벅찼다고나 할까. 인터뷰어로서도 힘에 부치는 순간이 분명 있었을 텐데
인터뷰 자체는 기본적으로 굉장히 깊은 대화를 나누는 행위이기 때문에 충만해지면서도 소진되는 느낌은 당연히 있다. 특히 ‘멋언니’는 인터뷰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고. 그렇게 들은 말들을 잘 곱씹고, 여운을 붙들고 마음 속에서 여러 번 소화를 시켜 정제해 각 인터뷰 말미에 붙은 에필로그를 썼던 것 같다. 내가 느꼈던 큰 덩어리의 감정, 이 사람이 내게 준 인상, 했던 말, 인터뷰에서 목격했던 장면들을 오랫동안 품고 있다 보면 내 경험과 중첩되기도 하고, 주변 누군가의 삶과도 닿아있는 듯해 인터뷰이의 이야기가 확장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이은재(재재) PD는 ‘문명특급’이라는 팀에 대해 굉장히 강조를 했다. 대부분의 대답이 ‘저희는’으로 시작할 정도였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내가 일을 하면서 느꼈던 어떤 끈끈함, 누군가와 같이 해서 좋았던 경험들을 떠오르게 된다. 우리가 일하면서 느끼는 동료애나 우정 또한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감정 아닐까, 그 상상 가능한 감정을 나 또한 돌아보게 되는 거지.
실제로 책을 펴내는 과정을 함께 해낸 이들에 대한 감사를 지면과 개인 SNS를 통해 여러 번 밝히기도 했다
출판사 대표, 사진가, 기획자, 홍보 담당자… 이 프로젝트에 관여된 모든 사람이 다 여성이라서 더 크레딧을 밝히고자 노력한 부분이 분명 있다. 패션 잡지는 기본적으로 여성 비율이 높고, 에디터로서 자신의 이름이 명확하게 들어가는 분야다. 프리랜서가 되고 나서 그런 업계가 드물다는 것, 실무자로서 고생을 도맡아 하지만 주목은 받지 못하는 여성들이 많다는 것을 실감했다. ‘멋언니’와 관련된 사람들이 개인적으로도 더 성과를 인정 받기를 바란다.
인터뷰라는 행위의 어떤 점이 그토록 매력적이라고 느끼나
평소의 나는 일과 나 자신, 그리고 나를 둘러싼 작은 세계 정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대화의 끝’을 볼 수 있는 인터뷰라는 행위를 통해 오직 인터뷰어만이 대상에게 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고, 기대하지 못했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그 과정을 통해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를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타인을 발견하고 소개할 수 있는 일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여자 둘이 살고있습니다〉에 이어 〈멋있으면 다 언니〉도 출간과 동시에 증쇄를 거듭했다. 자신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것이라고 상상한 적이 있나?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지금 위치까지 멀리 와 버린 ‘멋언니’들처럼 멀리 올 수 있었던 동력을 생각해본다면
베스트셀러 작가는 상상하지 못했다(웃음). 이수정 교수님 말처럼 눈앞에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걸 하나하나 해왔다는 것, 월간지 에디터로서 매달 충실히 눈앞의 일을 해결해온 습관이 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먼 미래를 바라봤다면 내가 책을 써서 먹고 살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쌓여 한 발자국을 내딛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잘 되었기에 할 수 있는 여유로운 말일 수도 있다. 미래에 대한 낙관만을 갖고 현재를 사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웃음).
좋아하는 일인 인터뷰를 엮은 책이 황선우라는 이름으로 단독으로 낸 첫 책이 됐다는 것에, 개인적으로 부여하고 싶은 의미도 있을지
물론! 처음부터 현실에서 참조할 수 있는 멋진 여자들의 이야기를 여자들에게 보여주자는 또렷한 기획을 가지고 힘있게 추진했던 인터뷰 기획이라는 점. 너무 좋아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단절됐다고 생각했던 작업인 인터뷰를 매체라는 틀을 벗어나 해냈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매우 의미있게 느껴진다. 요즘 독자들의 영리함과 적극성도 느꼈다. 기나긴 인터뷰 글 중에도 그 이면의 의미, 봐줬으면 하는 내용을 ‘깨알 같이’ 찾아내주는 댓글과 SNS 캡처들 덕분에 연재 중 많은 용기를 얻었다.
〈멋있으면 다 언니〉, 이봄
여느 때보다 여성들의 이야기로 뜨거웠던 2020년. ‘지금’을 제일 잘 기록하는 매거진 에디터 출신 황선우 작가가 ‘지금’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여성들과 나눈 인터뷰집. 김유라, 김보라, 이슬아, 장혜영, 손열음, 전주연, 자야, 재재, 이수정 9명의 이야기가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