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떄 우린 미쳤었죠…!’ 스마트폰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렇게 읊으니 마치 겪지도 않은 보릿고개 시절을 회상하는 것 같다), 국내 최초 사이버 SNS 플랫폼이었던 싸이월드가 재개장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다. 십여 년 전에 박제된 그곳을 다시 찾는 심정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 전, 아니 공중 화장실 안 닫힌 변기 뚜껑을 여는 마음과 비슷할 게다. 미치도록 유치했고, 사무치게 갬성적이었으며, 온갖 희노애락의 행적이 조선왕조실록 수준으로 기록된 그곳! 자, 이제 고개를 들어 과거의 나를 마주하고 받아들일 시간이다.
어쨌든 국민 SNS 재오픈 소식으로 여기저기서 과거의 게시물이 소환되며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접한 게시물은 ‘싸이월드 재오픈에 가장 떨고 있을 연예인 리스트’로, 당대에 ‘오글거림’을 활성화시킨 연예인들의 싸이 기록에 관한 것이었다. 1순위로 꼽힌 연예인은 많은 사람들에게 앙드레 가뇽과 뉴욕 헤럴드 트리뷴을 알려준 배우 장근석이다. ‘나르시즘’과 ‘있어빌리티’로 버무린 사진과 글은 당시 적지 않은 파장을 가져왔고, 전에 없던 인물의 등장에 세상은 그를 ‘허르만 허세’라 칭했다.
그런데 십여 년이 흘러 다시 마주한 그의 게시물은, 이상하게도 그리 충격적이거나 오글거리지 않는다. 물론 그간 마르고 닳도록 보아온 탓에 면역력이 형성된 이유도 있겠지만, 만약 지금 같은 글을 쓴다고 해도 그리 거슬리지도 않고 오히려 자연스러움마저 느껴진다는 것이다. 아니, 2021년의 다른 허세꾼들에 비하면 이거 아주 순한 맛인데?
디지털 SNS 플랫폼이 본격화되며 싸이월드는 급격히 쇠락했다. 새로운 놀이터에서 우리는 편리한 스마트폰과 화질 좋아진 카메라로 마음껏 놀았다. 누구나 스타가 될 수 있는 새로운 스테이지에서는 저마다 잘남을 뽐내는 전국 자랑 대회가 날마다 열렸다. 더 예쁘게, 더 멋있게, 더 있어 보이게… 더, 더, 더를 지향하며 전 국민이 셀프 포장러가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웬만한 자랑이나 허세는 숨쉬는 공기만큼이나 자연스러워졌다. 과거에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해 차라리 닭이 되고 싶었던 오글 충만 콘텐츠가 아무렇지 않아진 건, 집단 면역력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고유 명사가 된 채연의 눈물 셀카는 이제 옆자리 동료가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해도 거리낌 없이 ‘좋아요’를 눌러줄 만큼 아무렇지 않을 정도다.
용불용설이라 했던가? 자주 사용하는 기관은 발달하고 그렇지 않은 기관은 퇴화한다는 학설은 허언 구사력과 허세 항마력에도 적용됨이 틀림없다. 중요한 것은 아마도 항마력이 발달할수록 그것을 시험하는 허언과 허세의 공격력은 정비례하여 증강할 것이라는 거다. 과연 인류는 어디까지 진화할 것인가? 미래의 허세는 오늘날의 그것보다 얼마나 고도화될 것인가? 인류의 소중한 기록을 위해 오늘도 인스타그램 앱을 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