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난 어른 되기 싫은데? 아이의 말에 내가 놀란 이유 #엘르보이스

어린이날에 어린이들에 대해 돌아봄. 두 아이의 엄마 전지민의 애틋한 마음

BYELLE2021.05.05
 
 
어린이의 계절, 어린이를살펴봄
 
지난봄, 7년을 살아온 화천을 떠나 옆 동네 춘천으로 이사를 나왔다 춘천 지인들은봄날 춘천 안으로 들어왔으니 ‘입춘대길’이라며 환영해 주었다. 이삿짐을 풀고 며칠 뒤, 나는 화천에서 데리고 나온 아이가 딸 나은이 말고도 한 명 더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몸에 싹을 틔운 나은이의 동생이었다.
 
수선화 같은 동생을 만나고 싶다며 늘 소망했던 나은이지만 막상 동생이 생겼다는 얘기를 들은 후 생각이 많아 보였다. 예상만큼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은 영원히 어린이로 남고 싶다며 울기까지 했다. 자신보다 약하고 여린 존재의 등장이 다섯 살 아이에게도 큰 책임감으로 느껴졌을까. “나은이는 왜 어른이 되기 싫어?” “어린이일 때가 제일 행복하니까요!” “그렇구나. 엄마는 어릴 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한 치 망설임 없는 딸의 대답에 행복한 어른의 군상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건 아닐까, 어른의 세계에 대한 동경심이 일도록 꿈과 기대를 심어주지 못한 걸까 걱정이 됐다.
 
내가 아이였던 시절을 떠올려 본다. 옛날 어른들은 어린이를 어른에게 종속되는 존재로, 자연스럽게 어린이를 하대했다. 그 시절 어린이들은 존중받지 못했기에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부모 앞에서 아이를 훈육할 때면 아이러니하게도 친정 부모님들은 부모가 된 나를 꾸짖는다. 젊은날 당신의 육아 방식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하고, 야단 맞는 손주가 마치 어릴 적 딸의 모습 같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래도 옛날이랑 비교할 수 있니? 우리는 너무 무식했고, 너희는 배우고 자랐잖아.” 묘한 반항심이 들지만 노년의 부모님이 자식에게 과거 자신의 잘못을 열심히 사과한다는 것이 정말 큰 용기라는 것  또한 안다. 자라는 것은 아이만이 아니구나.  사회적 분위기가 이렇게 변화하는 한편, 끔찍한 아동 학대 소식이 끊이지 않을 때면 어른으로서 우리가 가야 할 길 또한 한참 남았음을 느낀다.
 
‘어린이’는 ‘나이가 적다’는 뜻의 ‘어린’과 의존명사 ‘이’가 결합한 낱말이다. 소파 방정환 선생이 아동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고 1923년 우리나라 첫 아동 잡지 〈어린이〉를 창간하면서 보급된 걸로 알려져 있다. 새로운 명사가 탄생한 셈이다. 사실 부모나 교육자가 아닌 이상 우리 곁에 어린이가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기 쉽다. 비혼, 딩크족이 늘고 있는 이 시대에 어린이라는 존재, 어린이의 계절을 관심 있게 살피며 함께 만끽하는 마음은 결국 어린이였던 나 자신과 이웃, 우리, 사회 구석까지 살피려는 마음과 같을 것이다.
 
이사 온 늙은 아파트의 화단 풀들이 자유롭다. 계란꽃이 우후죽순 피어난 아파트 중앙 현관 입구에서 나은이가 꽃을 내민다. “엄마 꽃은 언제 임신해?” “응, 꽃은 활짝 피어 있을 때 봄바람이 불면 아기를 가져, 꽃이 지면 열매를 맺거든.” 그러자 나은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꽃에게 사과를 시작했다. “미안해, 꽃아, 아기를 만나지 못하게 꺾어서 미안해.” 나은이는 동생이란 존재를 받아들이기 이전에 한 생명의 탄생 과정부터 천천히 그리고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거였다. 어른의 염려를 지워가는 어린이의 숭고한 성장을 매일 받아 쓴다.
 
강원도의 봄은 더디게 와도 황홀하다. 남쪽 벚꽃이 지기 시작하면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인적 드문 시골 동네 아이들이 하나둘 길가에 봄쑥처럼 돋아나기 시작했다. 겨우내 잘 지냈니, 정말 많이 컸구나. 두렵고 지루한, 지난겨울 안에서 꽃눈처럼 잘 버텨준 아이들이 너무 대견스럽고 아름답다. “엄마, 저는 코딩 잘하는 댄서가 되고 싶어요.” 그렇구나. 너는 어른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꿈을 이루고 싶은 거구나. 그래, 천천히 꿈꾸렴, 나는 나지막이 말한다. 느리게 도래한 봄이 황홀하듯 우리 아이들과 주변의 어린이들이 천천히 성장하며 행복 안에서 오래 머물 수 있기를 바란다. 마른 가지에 드디어 물이 다 차올랐다. 어린이들이 잘 자라고 있는지, 아프거나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들이 없는지, 아이들을 눈에 담는 봄, 눈에 밟히는 봄, 살펴보는 그런 봄이 됐으면 좋겠다.
 
전지민  전 에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그린 마인드〉 편집장. 지금은 강원도 춘천에서 가족과 함께 살며,  여성, 엄마로서 지속 가능한 삶을 고민하는 내용을 담은 〈육아가 한 편의 시라면 좋겠지만〉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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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이마루
  • 디자이너 임정은
  • 웹디자이너 한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