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를 위한 그림을 그리는 동안 아티스트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 전시는 4월 29일부터 5월 28일까지 페로탕 서울에서 열린다. ©Photo:Jean-Philippe Delhomme

올해 초, 작업실에서. ©Claire Dorn, 2021.
장-필립 델롬
」파리와 뉴욕을 오가며 작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로나19 이후 예술가로서 당신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나 작업실에서 온종일 그림을 그린다는 점에서는 바뀐 게 없다. 달라진 게 있다면 지난 10여년 간 줄곧 오갔던 뉴욕 작업실에 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 모델을 그리는 작업도 첫 번째 록다운 때는 멈춰야 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게 될 초상화 대부분은 다시 작업실에 모델들이 방문할 수 있었던 몇 달 동안 그린 것이다.
인물을 그리는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난해 뉴욕과 파리에서 보인 전시는 뉴욕 · LA 등 도시 풍경을 담았고, 페로탕 서울에서 곧 열릴 전시 〈책을 위한 꽃 Flower for Books〉에서는 정물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서울에서 열릴 전시에서는 정물과 어우러진 인물화를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전시에서 풍경이 많은 이유는 내가 주변에 놓인 사물, 앞에 앉은 사람에게서 영감을 얻기 때문이다. 인간 내면의 여러 생각보다 어쩌면 현실 그 자체에 더 많은 발견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선보인 〈New York in the Distance〉 전시에 등장한 맨해튼의 전경, 컨테이너와 트럭은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작업실 창문을 통해 보인 모습을 그린 것이다. 스튜디오 정물을 그리기도 했는데, 사람들을 앉혀놓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상상 속에서 아이디어를 얻거나 사진을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닌, 실재하는 대상을 그리는 것이 내게는 가장 흥미로운 일이다. 록다운 기간 동안 아무래도 주변 사물을 평소보다 좀 더 많이 그린 것 같다. 사람의 부재를 그리워하는 동안 꽃과 책, 그 위에 쏟아지는 빛을 그린 셈이다.

‘Louise’, 2020.

전시를 위한 그림을 그리는 동안 아티스트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 전시는 4월 29일부터 5월 28일까지 페로탕 서울에서 열린다. ©Photo:Jean-Philippe Delhomme
다양한 인물의 순간을 포착하는 당신의 재능과는 별개로 다른 사람의 개성이나 특징을 발굴하는 일이 지겨운 적도 있었을까 그럴 리가! 타인을 관찰하는 것은 무한한 영감을 선사하고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특별한 아름다움은 항상 존재하며, 심지어 빛에 따라 수시로 변화하기까지 한다. 오래 들여다볼수록,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며, 그러기 위해 꼭 엄청나게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날 필요도 없다. 오히려 같은 모델과의 작업을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이 훨씬 더 근사할 때도 있다. 매번 다르다는 것, 그림의 잠재성이 확장되는 것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그려준 자신의 모습에 만족한 적 있나? 인스타그램에 최근 올린 자화상처럼 스스로 그리는 것을 선호하는지 일러스트레이터인 아들 조제프가 정말 멋진 초상화를 그려줬다. 다른 사람에 관해서는 그런 기억이 없다. 가끔 잡지의 컨트리뷰터 페이지(인터넷에서 찾았을 내 사진을 참고한 것 같은)에 내 얼굴 일러스트레이션이 게재된 적 있는데 그때마다 경악했다. 자화상을 그리는 일에도 관심이 없다. 그릴 대상이나 모델이 마땅치 않음에도 뭔가를 그리고 싶을 때는 어쩔 수 없지만.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도무지 알 수 없기에, 사실상 자화상을 그리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럴 때는 적어도 솔직해져야 한다, 아니면 거울에 비친 우리 자신을 정확하게 그리려고 노력하든가.

‘Alex Katz and flowers’, 2021.
계정을 만든 이유는 내가 그동안 잡지나 광고 일을 하고 책을 펴낸 이유와 같다. 자기 노래가 라디오나 거리에서 들리길 바라는 뮤지션처럼 나 또한 내 그림이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들길 바라기 때문이다. 지난 수년간 본질적인 회화 작업에 몰두했고, 전시는 그걸 보여주기 위한 또 다른 방법이다. 실제 삶 속에서 직접 사람과 예술을 만나는 경험은 항상 중요하게 여겨졌지만, 지금의 상황을 겪으며 한층 더 중요한 가치로 자리잡게 된 것 같다.
요즘 당신을 사로잡은 생각은 특정한 주제라기보다 내가 읽고 보는 것에서 영감을 얻도록 마음을 열어두는 편이다. 한 작가의 작품이 다른 작가의 작품세계로 이끌기도 하는 것처럼. 지금 이 순간 내 옆에는 사이 트웜블리, 칼 안드레, 엘스워스 켈리, 데이비드 호크니에 대한 책들이 놓여 있고,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된 1950~1970년대 영국과 미국 작가들의 작품에 관심이 많다. 바람이 있다면 다시 여행을 떠나고 미술관에 갈 수 있는 날이 오는 것.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당신 작품을 전시에서 만나게 될 한국 관객이 어떤 걸 느끼길 바라나 서울에는 딱 한번, 며칠 머물렀을 뿐이지만 도시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새로운 관객을 만나는 것이 기쁘다. 그림은 일종의 제안서 같다. 강압적인 태도가 아닌, 시적으로 접근할 뿐. 그림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길 소망하지만 사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다른 사람은 어떤 걸 보고 생각할까 항상 추측하는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