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현 프리랜스 방송 작가, brunch에 스트레스를 푸는 출판 작가 지망생 ‘은잎’
우리 부부를 ‘멘붕’에 빠지게 한 혼돈기는 우리가 변하면서 시작됐다. 그 변화는 우리가 더는 본색을 숨길 수 없어서 생긴 결과다. 하루이틀은 감출 수 있겠지만, 매일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나를 숨기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본색을 들키고 나니 배려는 쓰레기통에 던져버렸고, 서로에게 쌓여 있던 불만을 본인의 방식대로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샤워하고 보일러를 안 끄는 것, 밥 먹고 설거지를 바로 하지 않는 것, 로션을 사줘도 바르지 않는 것,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개지 않는 것, 택배가 잘못 배송되는 게 스트레스라면서도 계속 시키는 것처럼 가볍게는 집안일부터 연애 때는 보이지 않던 사소한 단점까지 지적해 대며 끊임없이 몸과 마음을 망가뜨렸다. 가장 우울했던 시기는 아파트로 이사하기 전 3개월 정도 원룸에 살았던 때다. 공간이 분리되지 않으니 싸울 일이 많았다. 하루 동안 쌓인 스트레스로 잔뜩 날이 선 채로 각자의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상대방의 사소한 말실수나 거슬리는 행동에 시한폭탄 터지듯 싸움이 일어났다. 한번은 내가 회사에서 겪은 힘든 일을 구구절절 얘기했는데, 남편은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나도 힘들어. 그러니까 그만해”라고 대꾸했다. 예상과 너무 다른 남편을 보며 울컥했다. 그냥 내 편 들어주면 될 것을 본인이 힘들다고 받아주지 않는 모습이 좀생이 같아 보였다. “힘들면 때려 치든가”라는 남편의 무심한 말에 너무 화가 났다. 그렇게 우리는 집안이 떠나가라 싸웠고 분위기는 냉랭해졌다. 연애 때는 이렇게 싸우면 각자 돌아갈 집이 있었는데 한 공간에 살게 된 우리는 갈 곳이 없었다. 결혼한 사람들에게 연애와 결혼의 차이점을 물으면 “남자친구(혹은 여자 친구)가 집에 안 가요”라고 말한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남편은 차에서, 나는 방에 남아서 쓰디쓴 눈물을 흘리며 각자의 시간을 보낸 뒤 서로에게 사과했지만 이미 다친 마음은 반창고를 붙여도 자꾸 벌어졌다.
이 일을 계기로 우리는 상대에게 낯선 기분이 드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남편은 내가 연애 때보다 힘든 일을 말하는 횟수가 늘어나 덩달아 맥이 빠진다고 했다. 혼자서 생각해 보니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았다. 결혼 후에 남편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커지면서 나도 모르게 남편을 감정 쓰레기통처럼 대한 것이다. 우리가 긴 대화 끝에 내린 결론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서 본색을 감추기 힘들다’는 것과 ‘결혼하면 스스로 고삐를 푼다’는 것이다. 연애 때는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 좋은 모습만 보여줄 수 있었다. 가장 최상의 모습으로 무장한 채 상대방 앞에 설 수 있던 거다. 스스로에게 고삐를 씌운 채 말과 행동을 제어할 수 있었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더 매력적인 사람으로 포장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상대방을 위해 내 기분까지 제어할 여력이 남아 있었다. 그 고삐를 언제까지 잡고 있는지에 따라 본색이 드러나는 시점이 결정되는데, 그 시점은 두 사람이 함께 살게 되면서 더욱 빨라지는 것 같다. 연애 때는 혼자 겪는 일과 연인과 함께 겪는 일을 구분할 수 있지만 결혼 후엔 모든 희로애락과 인생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함께 겪게 된다. 나에게 속하지 않던 상대방의 몫까지 인생에 떠밀려오게 되면 고민이 배로 늘어나고 힘든 날도 많아진다. 그러다 한계점을 넘어서면 스스로 고삐를 끊는 순간이 오는데, 이 때 상대방이 모르는 사람처럼 낯설게 느끼는 것이다. ‘서로를 위해 고삐를 풀지 않고 연극을 이어가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더 이상 우리에게 연극은 없었고 100% 리얼한 일상만 남았다. 이제 내가 해야 하는 건 어떤 자세를 취할지 결정하는 거다. 나는 수많은 고민 끝에 남편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로 결심했다.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서로 부딪치는 순간도 많았지만, 남편과 소소하게 즐기는 일상이 눈물 날 만큼 행복하기도 했다. 이 사람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결혼생활을 위해 연애하던 때처럼 남편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고삐가 풀린 남편을 유심히 지켜보기도 하고,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직접 물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남편을 이해하게 됐고 남편 역시 나를 위해 노력했다. 우리는 조금씩 타협점을 찾아가며 서로가 상처받지 않고 행복할 수 있는 경계선을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서로를 완전히 알지 못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자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했다. 남편에게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6년이나 연애해서 결혼생활이 평범하고 지루할 줄 알았는데,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당신 덕분에 재밌어. 새로 연애하는 기분도 들고.” 최근엔 내 안에 초긍정 모드도 탑재했다. 남편의 새로운 모습을 볼 때마다 ‘재밌고 신선하다’고 되뇌는 거다. 이렇게 생각해야 속 터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도 닦는 스님 영상이 자주 뜨는 건 기분 탓이다. 우리 모습이 연애 때와 조금은 다를지라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건 서로를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사실과 지금도 서로를 사랑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모르는 사람이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그러면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