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노답' 플라스틱 더미에서 지구 지키기 #ELLE그린

환경을 위한 우리의 미미한 노력이 '플라스틱 산'에 버려지고 있다. 개인의 노력 이상의 변화가 필요한 때다.

BYELLE2021.04.20
 
 

언젠간 우리를 집어삼킬, 

아니 이미 우리를 잠식한 ‘그 산’은  지금 이 순간에도 대책 없는 속도로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분명 노력했다. 남들이 하는 만큼은, 아니 그보다는 더 환경을 위해 애쓴다고 믿었다. 바쁜 업무 중에도 음료 병의 라벨은 꼭 떼어서 버렸고, 집에서는 포장된 생수 대신 정수기를 활용했다. 배달 음식은 최대한 피했으며, 어쩔 수 없이 사용하게 된 1회용 플라스틱 용기는 깨끗이 씻어 분리 배출했다. 최근에는 직접 챙겨 간 다회용 용기로 음식을 포장해 오기 시작했다. 마트 진열대에서는 ‘친환경’ 스티커가 붙은 상품을 골랐고, 고체 샴푸 바가 출시되면 곧장 주문했다. 업무 메일함은 친환경 아이템 출시 소식을 담은 보도자료로 가득하다. SNS 피드는 스타들의 ‘플라스틱 제로’ 챌린지와 그 선한 영향력을 이어받은 이들의 활동으로 분주하다. 뿌듯했다. 우리가 ‘탈’플라스틱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환경을 얼마나 생각하고 또 사랑하는지, 그 안온함에 젖곤 했다. 이만하면 세상은 조금 달라졌을까? 우연히 마주한 숫자 ‘9’는 안일한 세계관을 단번에 바스러뜨렸다. 미국의 과학 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플라스틱 쓰레기는 단 9%만 재활용’된다. 우리 나름의 수고는 단 10%의 형태로도 영향을 끼치지 못한 채 그대로 ‘플라스틱 산’에 버려지고 있다. 재활용 강국이라던 국내 현실도 마찬가지. 환경부가 발표한 ‘국내 폐기물 처리 현황(2019)’에 따르면 “분리수거율은 87.1%에 달하지만, 분리 배출된 플라스틱의 재활용률은 30%에 불과하다”고 한다. 재활용품을 종량제 봉투에 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알량한 인식만 자리할 뿐, 분리 배출 과정은 세심하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심지어 지난 1년 넘는 기간 동안 폐플라스틱 발생량은 14%로 늘어났다. 우리의 사소한 용기와 실천이 적어도 ‘마이너스’는 아니길 바랐건만. 흐린 눈을 똑바로 뜨니 숫자들은 날 선 눈으로 우리를 직시한다.
 
우리가 마주해야 할 사회 문제를 탐사하는 미디어 ‘닷페이스’는 플라스틱 문제의 심각성을 다룬 콘텐츠들을 세상에 꺼내놓으며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그중 재활용 선별장의 현실을 생생하게 담은 유튜브 영상 ‘플라스틱, 이젠 진짜 답이 없습니다. 재활용도 안 된대요’는 조회 수 100만이 목전이다. 현장은 말 그대로 충격적이다. 당시 취재를 담당한 이선욱 PD는 “영상에 담지 못한 장면이 꽤 많다. 촬영 허가를 받지 못할 정도로 심각했다. 플라스틱은 물론, 비닐 같은 건 거의 100% 태운다고 보면 된다더라. 재활용은 우리 생각만큼 잘되지 않고 있었다”고 전한다. 선별하는 인력 수에 비해 플라스틱 반입량은 지나치게 많고, 제대로 분류되지 않은 것들로 거대한 산을 이룬다. 재활용이 가능한 단일 플라스틱만 해도 20여 종에 달하는데, 산처럼 쌓인 플라스틱 더미에서 선별자가 일일이 구별하기란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두 가지 이상이 혼합된 ‘아더(Other)’ 플라스틱은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현저히 늘어난 배달 용기들이 바로 그 ‘아더’ 소재이기에 더욱 답이 없다. 엎친 데 덮친 건 저유가로 인한 플라스틱의 단가 하락으로 민간 선별 업체의 수익성 또한 최악인 상황. 이선욱 PD는 “공급이 늘어나니 재활용 처리비용의 수지가 맞지 않고, 재활용 소재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면서 결국 플라스틱 재활용이 산업 그 자체로 기능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모든 개인이 분리수거를 100% 완벽하게 해낸다고 해도 선별장에서는 플라스틱 처리에 대한 책임감도, 의무감도 저하될 수밖에 없다. 이 PD는 “취재를 기획하기 전에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현장 상황은 훨씬 더 심각했다”고 씁쓸하게 덧붙였다. 해당 영상의 댓글 창은 소비자와 기업가, 정부의 입장을 저마다 대변하는 논리로 가득하다.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은 이들, 더욱 노력하겠다는 이들, ‘내가 해봤자’와 같은 염세주의에 빠진 이들은 물론, 어떤 쪽으로든 탓을 돌리려는 이들의 논쟁은 지금도 뜨겁다. 그럼에도 현실은 그만큼 뜨겁지 않다. 언젠간 우리를 집어삼킬, 아니 이미 우리를 잠식한 ‘그 산’은 지금 이 순간에도 대책 없는 속도로 몸집을 키워가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 플라스틱 사태에 대해 누구를 탓해야 할까. 정말 소비하지 않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걸까. 충격과 혼란에 빠진 소비자를 뒤로한 채, 정부는 2025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을 20% 줄이고, 폐플라스틱의 재활용 비율을 70%로 상향시키는 ‘생활폐기물 탈(脫)플라스틱 대책(2020)’을 제시했다. 매체 또한 문제의 심각성을 연일 앞다투어 보도하고, 기업은 플라스틱 사용량을 최소화할 대책을 모색 중이다. 분명 우리 모두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결국 문제는 이 모든 것을 한데 모으지 못하는 ‘시스템’에 있다. 이선욱 PD는 “정부 혹은 소비자의 행동에 관한 부분만 크게 논의될 뿐, 플라스틱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이들이나 배달 등 플라스틱을 소비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주도하는 생산 기업에 대한 논의는 나오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개개인이 아무리 적게 쓰고, 깨끗이 버리고, 정부가 대안 정책을 내놓아도 무분별하게 생산하는 사람들에 대한 논의가 없다면 노력은 미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것. 물론 시장 논리가 최우선인 기업만 탓할 순 없고, ‘가성비’ 앞에 개인은무력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마주한 현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책임에 대한 논의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 ‘그린 워싱’에도 속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은데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 문제는 축소하고 재활용이나 일부 과정만 부각하는 기업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 친환경 마크의 종류와 용도는 생각보다 다양하고, 정부의 녹색인증 마크와 유사한 마크들을 기업에서 임의로 제작하기도 하니 소비자들은 인증 마크의 정당성이나 원료 및 생산 과정은 물론, 포장에 대해서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부분적인 것에 속아 ‘친환경’이라고 무작정 집어 들었다가는 우리의 노력은 또 한 번 ‘미미함’에 그쳐버릴 테니까. 결국 일상 속 실천 이상으로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눈뜬 장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선욱 PD는 몇 가지 희망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그는 “배달 용기를 다회용으로 대체하려는 착한 스타트업에 관한 소비자의 높은 관심 덕에 성장에 박차를 가한 곳이 많다. 정부의 ‘재활용 등급제’ 시행에서 화장품 용기가 제외된 것에 관해서도 질타가 이어졌고, 결국 ‘재검토’가 결정됐다”며 “소비자가 한목소리로 낸 의견이 잘못 흘러갈 뻔한 정책을 막아내기도 한다. 그 노력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포장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 통조림 캔 햄의 노란 플라스틱 뚜껑을 제거하자는 목소리에 업체는 해당 뚜껑을 없앨 것을 약속했다. 청소년을 포함한 소비자들의 정성 어린 손편지를 받은 우유 업체는 빨대를 없앤 팩 우유를 출시했다. 라벨을 없앤 생수는 1000만 개 이상 팔렸다. 혼합 플라스틱 재질인 즉석밥의 용기에 대한 항의도 거세게 이어지는 상황. 올바른 ‘소비자 권리’의 행사다. 지난해 녹색연합이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76%가 ‘배달 쓰레기를 버릴 때 마음이 불편하거나 죄책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과학 저널리스트 수전 프라인켈의 저서 〈플라스틱 사회〉에 따르면 “페트병이 재활용된다는 믿음이 ‘죄책감 지우개’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제 죄책감이나 경각심을 갖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책과 제도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사무실 책상 위를 다시 돌아봤다. 새 칫솔부터 잉크가 말라 더는 쓰지 못하는 펜까지, 여전히 플라스틱으로 가득했다. 확실히 플라스틱이란 ‘놈’은 인생에서 칼로 무 자르듯 단번에 끊어질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포기한다고? 그 반대다. 마음을 더욱 단단히 먹기로 했다. 타노스보다 강력하다는 플라스틱과의 ‘인피니티 워’는 이제 겨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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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전혜진
  • 디자이너 김려은
  • 웹디자이너 한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