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새 시대의 럭셔리가 궁금해?

일상적이고 편안한 '원 마일 웨어'와 럭셔리 패션의 동행.

BYELLE2021.03.22
예기치 못한 팬데믹과 맞닥뜨린 후 우리 일상이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요즘. 모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집콕’이 생활화되면서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고, 웨이스트 업(Waist-up) 룩이나 키보드 드레싱(Keyboard Dressing)처럼 생경한 단어의 등장은 또 다른 유행을 형성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매체의 지면을 채우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된다. 그중 집콕 생활을 이어가는 이들의 라이프스타일로 거듭난 원 마일 웨어(One -Mile Wear)는 기존 ‘추리닝’의 남루한 이미지를 뒤엎고 이번 시즌 가장 빈번하게 회자되는 이슈로 주목받고 있다. ‘집 근처 1마일 반경 내에서 입는 옷’이라는 의미를 지닌 원 마일 웨어는 사실 2000년대 초반 거리를 평정했던 스타일을 일컫는, 돌고 돌아 기어코 다시 돌아온 유행이다. 
 
잠시 기억을 되돌려 이른바 ‘패션 암흑기’로 기억되는 2000년대 초반 옷차림을 떠올려보길. 번들거리는 쥬시 쿠튀르의 벨벳 트레이닝 수트와 아디다스 트랙수트가 거리를 수놓았고, 조거 팬츠에 어그 부츠를 과감히(!) 즐겨 신던 바로 그 시절 말이다. 빛나는 전성기를 뒤로한 채 한동안 자취를 감춘 듯했던 원 마일 웨어는 이따금씩 ‘애슬레저’라는 이름으로 런웨이에 등장하긴 했지만,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뚜렷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 그러나 전 세계인이 의도치 않게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스웨트셔츠와 트레이닝 팬츠, 후디드 티셔츠, 레깅스를 내세운 편안한 옷차림이 다시 우리 일상에서 존재감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럭셔리’한 방식으로 말이다. 
 
마침 이번 시즌 내로라하는 패션 하우스들이 원 마일 웨어의 등장을 예찬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가까운 미래의 ‘포스트 팬데믹 스타일’을 바탕으로 컬렉션을 선보인 발렌시아가는 윈드브레이커와 트레이닝 세트업, 조거 팬츠를 곁들인 일상적이고 평범한 룩에 그들만의 ‘하이패션’ DNA를 성공적으로 주입했고, 셀린과 이자벨 마랑 역시 트레이닝 팬츠와 포멀한 재킷, 크롭트 톱을 매치한 원 마일 룩을 제안해 MZ 세대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장식적이고 사랑스러운 디테일과 스포티즘이 부드럽게 충돌하며 예상치 못한 드라마를 안긴 미우미우 컬렉션은 또 어떤가. 이처럼 S/S 시즌을 풍성하게 채운 원 마일 웨어가 런웨이를 넘어 우리 일상에 성공적으로 탑승하며 기대 이상의 파급 효과를 가져왔으니! 집에서 막 나온 듯 편안한 스타일로 거리를 활보하는 셀럽들의 사진이 더 이상 초라하거나 게을러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흐트러짐 없이 완벽하게 차려입은 모습보다 훨씬 여유롭고 ‘고급져’ 보이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평소 헤일리 비버가 즐겨 입는 트레이닝 룩은 클래식한 스웨트셔츠와 바이커 쇼츠를 매치하던 고 다이애나 빈의 로열 스포티 룩을 단번에 떠올리게 만드는데, 이는 새 시즌 원 마일 웨어 트렌드가 비로소 하이엔드 패션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뛰고 뒹굴며 경쟁하는 치열한 스포츠 게임이 아닌 골프와 테니스 등 상류층의 우아한 사교 스포츠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듯. 
 
한편 진화한 원 마일 웨어를 향한 열망은 새롭고 참신한 브랜드에 지갑을 활짝 열게 만든다. 선두를 달리는 이름은 패션 아이콘 에밀리 오버그(Emily Oberg)가 론칭한 스포티 앤 리치(Sporty & Rich). ‘리치’라는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 90년대를 풍미했던 럭셔리 스포츠웨어에서 영감받아 탄생했는데, 브랜드 인스타그램 피드엔 그 시절 스포츠 스타와 셀럽, 패션 아이콘들의 근사한 원 마일 룩이 빼곡하다(테니스복에 에르메스 가방을 매치하는 감각이라니!). 다이애나 빈의 파파라치 사진을 꼭 닮은 레트로 클래식 무드의 스포티 앤 리치 제품은 국내에서도 탄탄한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다. 담담한 멋이 배어나오는 클래식한 디자인과 친환경 소재를 바탕으로 한 런던의 상징적인 편집 숍, 알렉스 이글(Alex Eagle)이 선보이는 AESC(Alex Eagle Sporting Club)도 결이 비슷한데, 영국 상류층의 여가생활을 겨냥한 듯 한층 정제되고 우아한 디자인이 돋보인다. 이 외에도 지속 가능한 소재의 트레이닝 수트 세트업을 따로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은 가니(Ganni), 오가닉 코튼의 이지 웨어 컬렉션으로 입소문을 탄 세레스 스포츠(Ceres Sport) 등이 변화의 흐름에 탑승하며 뜨거운 지지를 얻고 있다.
 
원 마일 웨어는 더 이상 남루한 ‘추리닝’과 같은 궤도를 그리지 않는다. 즉각적인 편안함이 일상의 화두로 떠오른 뉴 노멀 시대, 과거에서 건져 올린 럭셔리 스포츠웨어가 우리에게 보다 편안하고 근사한 방식으로 원 마일 룩을 즐겨보라고 속삭인다. 여전히 트레이닝복에 익숙지 않다면 가장 먼저 트레이닝 수트 세트업에 입문해 보길. 예민하고 불편한 이 시기와 대조되는, 놀랍도록 편안한 스타일에 순식간에 매료될 것이다.   
 
레트로 무드가 돋보이는 스포티 앤 리치 룩북 이미지.

레트로 무드가 돋보이는 스포티 앤 리치 룩북 이미지.

레트로 무드가 돋보이는 스포티 앤 리치 룩북 이미지.

레트로 무드가 돋보이는 스포티 앤 리치 룩북 이미지.

영감을 선사하는 다이애나 빈의 애슬레저 룩.

영감을 선사하는 다이애나 빈의 애슬레저 룩.

헤일리 비버.헤일리 비버.헤일리 비버.지지 하디드.자스민 샌더스
오가닉 코튼으로 완성한 세레스 스포츠 컬렉션.

오가닉 코튼으로 완성한 세레스 스포츠 컬렉션.

가니의 트레이닝 룩.

가니의 트레이닝 룩.

AESC의 감각적인 비주얼.

AESC의 감각적인 비주얼.

Keyword

Credit

  • 에디터 김미강
  • 사진 제공 ALEX EAGLE/CERES SPORT/GANNI/SPORTY & RICH
  • /GETTYIMAGESKOREA/IMAXtree.com
  • 디자인 정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