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태풍이 무서운 건 중심에 고요한 핵을 숨기고 있어서다. 사방이 소용돌이치는 무시무시한 굉음 속에서도 고고히 중심을 지키면서 이동하니까. 딸, 엄마, 감독 그리고 ‘여자’. 호사가들의 입방아 속에서 굳건히 뿌리를 지키는 느티나무 같은 소피아 코폴라. 곧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썸웨어>의 그녀를 미리 만났다. 자신 이름을 딴 백(루이 비통)이 존재하는 감독,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소피아 코폴라,썸웨어,엘르,elle.co.kr:: | ::소피아 코폴라,썸웨어,엘르,elle.co.kr::

소피아 코폴라는 승부사다. 의무적으로 작품을 내놓는 여느 다작 감독과는 다르다. 양보다 질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 편 한 편에 공을 들인다.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마음에 드는 배우를 캐스팅하고 원하는 장면이 나올 때까지 찍고 또 찍는다. 20대 때 그녀가 만든 은 10대 소녀의 촘촘한 심리 묘사로 평단을 놀라게 했다. 는 오스카 각본상을 그녀 품에 안겼다. 좋은 스토리를 만드는 작업과 이미지로 구현하는 작업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여류 감독이 탄생한 셈. 논란이 많았던 세 번째 연출작 를 거쳐 무려 4년 만에 신작 로 올초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그녀를 만났다. 올해 39세. 를 연출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어린’ 딸은 어느새 할리우드의 거목이 돼 있었다.는 영화배우와 그 딸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자 에 이어 남자배우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다. 를 찍고 파리에 머물면서 새로운 시나리오를 구상 중이었다. 당시 위기를 겪고 있던 배우들의 이야기가 타블로이드를 뒤덮고 있었다. 거기서 힌트를 얻어 미국에서 화제가 되곤 하는 셀러브리티 문화에 대한 대중의 집착을 그려 보면 어떨까 싶었다. 할리우드의 ‘대스타’를 아버지로 두고 있으니 영화 속에 자신의 얘기도 녹아 있겠다. 어린 시절부터 쇼 비즈니스 세계에 둘러싸여 살았으니 리얼하게 영화를 연출할 수 있었던 건 사실이다. 내 어린 시절은 와는 달랐지만 유명 인사를 아버지로 두는 게 어떤 심정인지 잘 아니까. 영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 의 주인공은 LA에 있는 샤토 마몽 호텔에서 산다. 실제로 당신이 어린 시절에 호텔에서 머물렀던 시간은 얼마나 될까.아버지가 영화를 찍을 때마다 우리 가족은 촬영 장소로 옮겨 살았다. 로컬 스쿨에 다녔지만 아버지가 일하는 동안엔 그 지역에 있는 학교를 다니기도 했지. 최고급 호텔도 아닌 그곳이 왜 그렇게 특별한 장소가 됐을까.LA의 상징이면서 쇼 비즈니스의 중심이어서가 아닐까. 지난번엔 헬무트 뉴튼(Helmut Newton)이 겨우내 머물렀던 방에 묵었는데 정말 신났다. 처음부터 영화를 공부한 건 아니었다.나는 미대에 진학해 사진을 공부했다. 대부분의 사춘기 소녀들이 그러는 것처럼 안 하던 일을 해보고 싶었지. 내 첫 단편영화는 그간 관심을 뒀던 모든 것을 총망라한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10대 때 샤넬에서 인턴을 했고 아버지와 진행하던 프로젝트에서 코스튬 디자인을 맡기도 했다. 이런 경험이 영화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디자이너들은 당신의 스타일을 사랑한다. 당신은 패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난 패션을 즐긴다. 기본적으로 나는 디자인, 예술, 사진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모든 종류의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왜 스티븐 도프(Stephen Dorff)를 주연 배우로 선택했나. 아직 인지도에 있어서 떨어지는 게 사실인데. 그와는 몇 년 지기 친구다. 난 그가 항상 좋은 배우라고 생각했다. 이 캐릭터를 연기할 배우를 생각했을 때 그의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사람들이 아직 그를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도 마음에 들었지. 여태껏 직접 시나리오를 쓴 작품만 감독했다. 난 모든 일을 직접 하는 걸 좋아한다. 시나리오를 쓰는 것부터 캐릭터를 발전시키는 것까지. 시나리오를 쓰는 건 노력과 시간이 꽤 들어가는 어려운 일이지만 기본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영화를 만드는 건 개인적인 작업으로 남겨두는 편이 좋은 것 같다. 당신에겐 어떤 캐릭터가 매력적인가.난 과도기를 겪고 있는 복잡한 심경의 캐릭터에 관심이 많다. 내 영화만 봐도 그런 종류의 캐릭터가 꼭 하나 둘씩 포함돼 있다.마이클 더글러스는 처음 배우로 데뷔해 15년은 아버지의 후광 때문에 성공한 것 같다고 말한 적 있다. 아버지를 선배 감독으로 두고 있는 당신은 그의 얘기에 공감하나.딸은 부담감을 덜 느끼는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주어지는 기대가 더 적다고 말할 수 있다. 내 경우엔 부담감이 별로 없었다. 처음부터 내 방식대로 영화를 만들려고 했으니까. 나는 아버지가 자랑스럽고 아버지의 딸이라는 사실이 아무렇지도 않다. 하지만 아버지의 스타일과 내 스타일은 전적으로 다르다. 아버지가 당신이 태어나는 순간을 찍었다.아버지는 내가 태어나는 순간을 촬영했다. 나중에 비디오를 봤는데 너무 웃겼다. 의사가 딸이라고 말하자 아버지가 놀라서 카메라를 떨어뜨렸다. 영화는 우리 가족에게 일상이다. 제작자인 친오빠와 함께 일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겠다.형제자매가 함께 마음을 맞춰 일한다는 건 정말 운이 좋은 일이다. 오빠는 나를 아주 잘 알기 때문에 항상 나를 위해 결정을 내린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분명히 아니까. 영화를 만들기 전엔 처음으로 엄마가 됐다.첫아이가 태어난 후 거의 1년을 쉬었다. 원래 글을 쓸 때는 밤새도록 깨어 있곤 하는데 아이가 생기니 모든 게 변했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됐다. 둘째 딸은 이제 태어난 지 넉 달이 지났다. 감독으로서 엄마로서 엄격한 편인가. 두 쪽 모두 엄격한 편이다. 그렇다고 소리를 지르며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주위 사람들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다독거리면서 그들과 함께 내가 만들려는 이야기를 완성하려고 노력한다. 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을지 알고 있었나.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엄청난 일이었지.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 중 하나였다. 수상 발표 직후 한때 심사위원장인 쿠엔틴 타란티노와 데이트를 했던 사이여서 그 상을 받았다는 논란도 있었다.개의치 않았다. 시상식이 끝나고 심사위원들이 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듣느라 신이 났거든. 내가 노력한 일을 진심으로 인정해줬잖아. 그거면 충분하다.*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2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