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루이 비통은 미술을 사랑해

국경을 넘어 예술에 감응하는 루이 비통의 또 다른 기록 '현대미술의 아이콘: 모로조프 컬렉션'

BYELLE2021.02.09
 
오귀스트 르누아르, ‘잔 사마리의 초상’, 1877.

오귀스트 르누아르, ‘잔 사마리의 초상’, 1877.

러시아의 혹한 앞에 유럽을 제패하겠다는 꿈을 접어야 했던 나폴레옹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고국 프랑스를 빛나게 할 수많은 예술가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챈 이들이, 바로 러시아의 후원자들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박물관과 미술관에 서열을 매기는 것은 어떻게 보면 무용한 일에 가깝지만, 러시아가 위대하고 멋진 미술관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폴 고갱 ‘과일을 든 타히티 여인’, 1893.

폴 고갱 ‘과일을 든 타히티 여인’, 1893.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 모스크바를 대표하는 푸시킨 국립미술관과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이 세계적으로 조금 더 친근하게 받아들여진 데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 대가들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이 미술관들이 자랑하는 소장 목록의 근간에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컬렉터들의 앞선 안목과 취향이 자리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명망 높고, 근현대 프랑스 화가들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기여한 이들을 꼽자면 모스크바에서 나고 자란 세르게이 슈킨과 이반·미하일 모로조프 형제가 첫 손가락에 올 것이다. 19세기 중후반에 태어나 재정러시아부터 혁명까지 격동의 시대를 지켜본 이들의 컬렉션은 혁명과 함께 국유화됐고, 덕분에 우리는 한자리에서 이 위대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루이비통재단미술관 전경.

루이비통재단미술관 전경.

2016년 10월부터 2017년 2월까지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열렸던 〈현대미술의 아이콘: 슈킨 컬렉션 Icons of Modern Art: The Shchukin Collection〉은 에르미타주와 푸시킨 미술관에 소장돼 있던 작품들을 각고의 노력 끝에 파리로 가져온 일대의 ‘사건’이었다. LVMH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의 오랜 숙원 사업이었던 이 전시를 통해 공개된 작품들은 드가, 르누아르, 로트레크, 고흐와 더불어 모네, 세잔, 고갱, 루소, 마티스와 피카소 등 130여 점에 달했다. 프랑스 작가들의 아방가르드한 작품을 일찌감치 알아본 세르게이 슈킨의 안목은 미술사에 회자되는데, 미술품 경매회사 소더비는 수백 점에 달하는 그의 컬렉션 가치가 지금으로 치면 85억 달러(약 9조3000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첫 번째 아내와 아들이 세상을 떠나는 개인적 아픔을 겪고, 러시아혁명이라는 큰 파도를 겪으며 파리에서 노후를 보낸 세르게이 슈킨의 시신은 지금도 몽마르트르 묘지에 안치돼 있다. 2016년 당시 시리아를 둘러싼 러시아와 프랑스의 갈등이 심해진 뒤에도 전시만은 열렸으니 세상을 떠난 뒤에도 고국과 제2의 고향을 잇는 위대한 컬렉터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낸 것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발렌틴 세르노프 ‘이반 아브라모비치 모로조프의 초상’, 1910.

발렌틴 세르노프 ‘이반 아브라모비치 모로조프의 초상’, 1910.

그리고 다가오는 5월 12일부터 10월 10일까지〈현대미술의 아이콘: 모로조프 컬렉션 Icons of Modern Art: The Morozov Collection〉이 열린다. 러시아와 프랑스의 가교 역할을 했던 지난 전시의 후속과 같은 기획으로 모로조프 형제의 컬렉션이 파리에 당도하게 된 것이다. 본디 미술학도였으나 대학 졸업 이후 가문 소유의 방직공장을 경영하는 데 집중했던 형 이반 모로조프가 예술을 향한 사랑에 다시 눈뜨게 된 것은 고국 모스크바의 화가들을 통해서였다. 에르미타주 미술관과 푸시킨 국립미술관, 트레티야코프 미술관과 긴밀한 협업을 토대로 이뤄진 이번 전시는 마티스와 보나르, 피카소, 고갱, 고흐와 드가, 모네, 르누아르 같은 프랑스 출신 작가의 작품부터 브루벨, 샤갈, 말레비치, 레핀 등 현대미술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상징적인 작품들이 내걸린다. LVMH그룹이 리모델링 작업을 전폭적으로 후원한 이반 모로조프의 모스크바 저택 내 ‘뮤직 룸’ 또한 ‘시노그래피(Scenography; 텍스트를 영상으로 재현하는 것)’로 재구성해 전시될 예정.  
 
빈센트 반 고흐 ‘생 마리의 바다’, 1888.

빈센트 반 고흐 ‘생 마리의 바다’, 1888.

1907년 이반 모로조프의 의뢰하에 모리스 드니가 완성한 연작 〈프시케 이야기 The Story of Psyche〉 (1908~1909)로 채워진 이 공간의 특별한 아름다움을 관객들은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모로조프 가문의 특별한 역사를 정리한 텍스트와 자료 또한 무려 520쪽에 달하는 전시 카탈로그로 재탄생한다. 이 위대한 여정은 파리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전시를 마친 이후 에르미타주 미술관과 푸시킨 국립미술관으로 이어진다. 그 어느 때보다 국경이 굳게 닫힌 이 시기, 100여 년 전에 예술의 본질과 가치를 추구하며 국경을 넘나들었던 이들의 유산이 지금의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