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단’에 ‘여름 하’. 김단하 대표는 까다로운 ‘여름 비단’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자신의 브랜드를 일구는 중이다. 2018년 시작한 단하주단의 성장 곡선에는 ‘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에서 제니가 단하의 두루마기 재킷을, 로제가 크롭트 톱과 검정 철릭을 입은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매듭 장인인 할아버지를 보고 자라나 조경숙 명인에게 한복을 배운 김단하 대표의 한복을 향한 꾸준한 애정이 없었다면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누비 배자의 과실문 문양은 조선시대 궁중 보자기에서 가져온 것. 민화를 그래픽 작업으로 선보이는 이전경 작가의 책가도 패턴을 적용한 저고리는 재활용 소재를 사용했다. 업사이클링과 K팝 그리고 한복이 나란히 놓인 풍경.
감칠맛과 유산균 그리고 비건. 21세기의 푸드 트렌드에 가세해 미국인의 식탁에 상륙한 양념이 있다. 이미 필리핀에서 한식 사업으로 성공을 거둔 ‘서울 시스터즈’의 야심작 ‘김치 시즈닝’ 이야기다. 고춧가루와 마늘을 혼합하고 분쇄해 열처리한 뒤 김치에서 뽑은 유산균을 발효한 이 마법의 가루는 일본의 ‘시치미’를 누르고 아마존 칠리 파우더 카테고리 1위에 등극했다. 그래서 정말 피자와 어울리냐고? 물론!
‘지역에서 새로 찾은 오래된 가치를 온 세상에 퍼뜨린다’는 의미의 ‘로부터(Robuter)’ 프로젝트의 시선이 안동에 닿았다. 퇴계 이황이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고 표현한 맹개마을에서 직접 재배한 밀로 ‘안동진맥소주’를 만드는 이가 있으니 바로 맹개술도가의 박성호 대표다. 전통 방식을 존중해 탄생한 소주가 입은 그림은 손문상 작가의 작품. 호랑이 옆 소나무에 까치가 앉은 친근한 민화를 모티프로 한 술병을 두고 잔을 기울이다 보면 정말 반가운 소식이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수십 번 혹은 수천 번의 칠로 시간의 더께가 묻어나는 옻칠. 파인 아트부터 생활공예까지 전방위의 옻칠 작업을 이어온 허명욱 작가가 그날의 기분이나 에너지에 따라 옻에 천연 안료를 혼합한 색으로 견고하게 한 겹씩 쌓아 올린 결과 그만의 옻칠의 세계가 구축됐다. 옻칠이라는 토속적 재료를 잊을 만큼 전혀 다른 색채와 표정을 지닌 커피 도구들.
오채용문석, 용문염석, 오조용석 등의 이름으로도 불렸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화문석의 전통적인 무늬는 바로 용. 다섯 가지 색으로 짠 용 무늬 꽃자리이거나 다섯 개의 발톱이 달린 용이 그려진 것이 일반적이었다. 텍스타일 브랜드 모노컬렉션을 이끄는 장응복 작가는 청와대 상춘재의 느티나무 마룻바닥에서 영감을 받은 느티나무 나이테 패턴을 화문석에 올렸다. 픽셀 형식처럼 사각형이 모여 그림이 되는 화문석 패턴의 스타일을 따르고, 화문석을 만드는 공정도 디지털화된 지금 시대의 방식을 적용해 손으로 무늬를 그린 뒤 포토숍과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옮겨 제작했다. 마치 스마트폰의 조각난 디스플레이처럼 보이는 모노컬렉션의 화문석에는 동시대적 감각이 가득하다.
지승민 작가는 우리 도자기 고유의 성격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현대 식문화 감성에 어울리는 가볍고 실용적인 식기를 만든다. 그의 브랜드 ‘지승민의 공기’가 선보이는 ‘파티나 컬렉션'은 지승민이 오랜 시간 몰입하여 탐구한 조선 백자의 간결하고 순박한 미감을 계승한다. 분청 계열 소지 흙에 색상을 혼합하고 직접 물레를 돌려 빚어낸다. 유약과 흙이 자아내는 특유의 질감으로 금속의 반짝임과 산화된 듯한 표면, 부드럽고 따뜻한 촉감까지 표현했다.
영감을 레터 프레스로 표현해 온 툴 프레스가 진달래와 금속 벨, 붉은 레드 와인과 버섯, 사과와 딸기 등 일상의 조각들을 담은 한지 시리즈. 한지 고유의 말간 색과 질감에 매료된 이들이 그간 한지로는 연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무늬를 그려냈다. 즉각적인 쓸모와 상관없이 꼭 한 장 갖고 싶을 만큼 탐스럽다. 전통적 소재를 일상에 완벽히 스미도록 만든 디자인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