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안야 테일러 조이라는 현상

전 세계 넷플릭스를 휩쓴 <퀸스 갬빗>의 주인공 베스 하먼, 안야 테일러 조이의 매혹적인 전술은 계속된다.

BYELLE2021.01.27
 
〈퀸스 갬빗〉의 인기가 식을 줄 몰라요. 주인공인 베스 하먼을 처음 마주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베스는 부모를 잃은 아이이자 약물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는 체스 천재예요. 쉽지 않은 삶을 사는, 매우 특별한 인물이죠. 첫 대본 리딩을 마쳤을 땐 그 특별함에 깜짝 놀랐어요.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베스가 당면한 삶의 문제들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보편성을 지녔다고 생각해요. 
스토리의 어떤 부분에 가장 끌렸나요 체스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점. 〈퀸스 갬빗〉은 ‘천재성의 대가’와 그 이해에 관한 이야기예요. 베스는 다사다난한 성장 배경에 특별한 재능까지 가진 친구죠. 보통의 시선으로는 이해받기 어려웠던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아가 소통하는 방식을 보여줘요. 체스는 그 세계에 흥미를 더하는 요소일 뿐이고요. 저 또한 체스를 잘 몰랐음에도 스콧 프랭크 감독이 건넨 원작을 단숨에 읽어버렸고, 베스와 사랑에 빠졌어요. 베스는 자신을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외톨이’라 여기는데, 그런 외로운 감정에 깊이 공감했던 것 같아요
 〈퀸스 갬빗〉에 출연하기 전에는 체스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나 보군요 아홉 살 때쯤 한 번 해보긴 했어요. 체스 플레이어들이 존경스러울 따름이에요(웃음). 〈퀸스 갬빗〉에서는 체스 게임이 거의 액션 시퀀스처럼 펼쳐지잖아요. 체스를 두는 행위를 색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려 했고, 마치 안무를 짜듯 액션을 구성했죠. 어떤 시퀀스는 섹시하고 또 어떤 건 긴장감이 넘쳐흐르고, 또 가끔은 굉장히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경기가 그려지기도 해요. 안정제에 중독된 채 오랜 시간 체스판을 노려볼 수밖에 없는 베스의 몽롱한 상태나 혼란스러운 눈빛을 세심하게 담아내려 노력했어요. 
베스라는 인물에 접근하고 그를 깊이 이해하는 데 체스는 가장 중요한 열쇠였겠네요 맞아요.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기에 앞서 그 인물의 머릿속에 들어가 오랜 시간을 보내곤 하는데, 체스가 바로 베스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가 됐죠. 룰을 잘 알고 제가 내뱉는 용어들이 무슨 뜻인지 알아야 적절한 내면 표현이 가능하니까요. 사실 체스 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하게 될 줄은 저도 몰랐어요(웃음). 실제로도 체스를 사랑하게 됐고, 미지의 영역에 도전한 것에 대한 성취감도 맛봤죠. 체스에 관한 온갖 지식에 통달한 것 같아 정말 뿌듯해요. 
사실 약물이든 알코올이든, 어떤 ‘중독’을 앓고 있는 여성 캐릭터를 〈퀸스 갬빗〉의 베스처럼 매력적인 방식으로 묘사하는 일은 굉장히 드물어요 오랫동안 남성 캐릭터는 지저분하거나 보기에 어딘가 불편한 모습으로 그려져도 괜찮다고 여겨졌어요. 심지어 그런 것들을 ‘매력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으니까요. 반면 어딘가 흐트려져 있고 말끔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여성 캐릭터들은 기피 대상이었어요. 인기를 끌지 못했고, 그저 히스테리를 부리거나 하는 등의 부정적인 측면으로 평가받거나 묘사되곤 했죠. 베스는 그런 면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웠어요. 어떻게 보면 무성에 가깝달까요. 자신이 가진 지적 능력의 우월함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굳이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을 우선으로 고려할 필요가 없는 거죠. 그 지점이 이 작품의 가장 특별한 부분이에요. 관객은 자신이 남성과 당연히 대등하다고 여기는 베스의 관점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1960년대를 경험하게 되니까요. 
점점 중독에 빠져드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기분은 어땠나요 원작을 읽고는 베스에게 진정제나 술이 마치 ‘요술 지팡이’처럼 기능한다는 걸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어요. 화나거나 모욕감이 치밀 때 혹은 혼자라는 기분이 들 때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싹 지워버리니까요. 중독될 수밖에 없던 과정이 이해되더라고요. 물론 굉장히 안타까운 부분이긴 하지만요.
촬영이 끝난 이후에도 베스에게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다고요 아이처럼 엉엉 울었어요(웃음). 작년에는 전혀 다른 결의 세 작품에서 연기했지만, 마지막으로 온몸과 마음을 바쳐야 할 캐릭터가 베스였단 걸 알았나 봐요. 베스와 저는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이지만, 닮은 점도 꽤 많거든요. 베스의 삶을 연기하면서 그간 제 개인적인 경험이나 과거의 일들이 지닌 의미를 재정리하기도 했어요. 그 덕에 훨씬 평화로운 사람이 된 것 같아요.  
그간 연기한 캐릭터 모두 역동적이고 유연한 인물이에요. 때론 불처럼 강렬한 성격을 지니기도 했고요. 어떤 기준으로 캐릭터를 선택해 왔나요 직감에 의존하는 편이에요. 제 마음을 이끄는 캐릭터와 마주하면 마치 그들이 내 일부인 것처럼 울컥하는 감정이 솟아올라요. 지나치게 감싸고돌기도 하고요. 기꺼이 제 목소리를 내어주고 싶단 마음이 들거나 그들의 이야기를 대신 전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런 ‘격한’ 마음이 들면 선택해요(웃음). 캐릭터와 가장 가까이에서 그들의 삶을 지지해 주는 거죠. 가끔 캐릭터의 감정을 실제 삶으로 고스란히 떠안을 때도 있어요. 후유증이 극심할 정도로 하나같이 소중한 캐릭터들이에요.
〈퀸스 갬빗〉과 영화 〈엠마〉는 시대를 완벽하게 재현한 아름다운 비주얼로도 화제가 됐죠. 당신의 일과 일상에서 패션이 차지하는 중요도는 어느 정도인가요 작품 속 캐릭터로 외양적으로 완벽하게 변신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여러 작품을 거치며 알게 됐어요.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 돼가고 있는지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주거든요. 의상은 서사를 전달하는 또 다른 방식이에요. 작품에서 입었던 의상은 지금도 잘 간직하고 있어요. 물론 일상 패션 또한 자기표현의 중요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마치 제가 여름에는 글리터한 옷을 주로 입고, 겨울에는 벨벳과 펑크 룩 같은 중성적인 옷을 입게 되는 것처럼요!
작품 속 캐릭터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데 일말의 주저함도 없군요 그럼요. 이야기 속 인물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어요. 완벽하게 그 캐릭터로 변신한 채 거울 앞에 서면 또 다른 내가 보여요. 그게 진짜 ‘나’는 아니거든요. 그걸 깨닫는 순간 흥분이 차올라요. 외적 변신에는 그런 원초적인 힘이 있더라고요. 연기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 역할로 완벽하게 변신했던 사진을 보면 그 인물이 머무르던 장소와 나이, 생각과 경험들이 지금도 정확하게 떠올라요.
유명세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고 얘기한 적 있지만, 최근 여러 작품의 성공으로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어요. 이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요 어릴 땐 유명세라는 말이 참 멀기만 한, 어떤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했어요. 그래서 그런 말을 했나 봐요(웃음). 주목받는 작품에 출연하고, 인기를 얻으면서 유명세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란 어렵더라고요. 그로 인한 불안함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두려움과 같은 감정이 제 삶에 영향을 끼치게 만들고 싶진 않아요. 가야 할 길이라면 나아가야죠. 시간이 흐르면 깃털처럼 가벼워질 문제들이 일상을 좌지우지하게 둘 순 없어요. 그러지 않기 위해 일에 더욱 집중해야 하고요!
시를 곧잘 쓴다면서요. 불안함이나 두려움을 이기려는 방법인가요 시는 제게 아주 유능한 심리 치료사예요. 시를 쓸 땐 행복해지거든요. 언젠가는 각본을 써볼 계획이에요. 영화제작에 관심이 많기도 하고 아티스트는 응당 한 가지 표현 방식에 묶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연기는 제 첫사랑이지만, 음악과 영화제작, 연출과 글쓰기로 예술을 더욱 깊이 탐구하는 게 재밌어요. 자신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 낼 수 있다는 점이 설레고 좋아요.
올해는 어떻게 보낼 계획인가요 정말 쉴 틈 없는 한 해를 보냈어요. 거의 하루씩 쉬면서 프로젝트 세 개를 연달아 끝마쳤고, 지금은 마지막 프로젝트 촬영에 한창이고요. 노력의 결실이 곧 세상 밖으로 나올 텐데 흥분되기도, 겁나기도 해요. 치열했고 쉽지 않은 과정이었으니까. 그중 하나로 런던을 배경으로 한 〈라스트 나이트 인 소호〉가 개봉을 앞두고 있어요. 〈퀸스 갬빗〉과는 전혀 다른 결의 작품인 데다 토마신 매켄지, 맷 스미스 등 감탄을 자아내는 배우들과 함께했어요. 벌써 흥미진진하지 않나요? 설렐 수밖에 없는 한 해가 될 것 같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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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photographer ERIC GUILLEMAIN
  • writer VIRGINIE DOLATA/ MANCA POGACˇAR
  • editor JEON HYE JIN
  • design jeong hye r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