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일론 소재의 점퍼에 저지 드레스를 매치한 룩.

바나나 껍질 속에서 자고 있는 고양이를 표현한 작품.

루이 비통 뉴욕 매장을 덮은 우르스 피셔의 페인팅.

파리 몽테뉴 거리에 있는 루이 비통 매장의 쇼윈도.
아티스트와 만난 하우스
」팬데믹 시대에도 협업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아티스트와 더욱 활발한 소통으로 지루한 일상을 달래기 위해 앞장섰다. 그 선두에 선 아티스트는 즉흥적인 변형과 파괴 과정을 매혹적으로 표현하는 설치미술가 우르스 피셔. 아티카퓌신 백 프로젝트로 루이 비통과 합을 맞춘 경험이 있는 그는 이번엔 제품뿐 아니라 디지털 콘텐츠와 디스플레이까지 폭을 넓혔다. 일상의 사물을 작품 소재로 자유분방하게 조합하는 그는 아티카퓌신 프로젝트에서 바나나 · 당근 · 버섯 등의 참 장식으로 클래식한 백에 생기를 불어넣었고, 이번엔 그 확장 버전으로 바나나 껍질 속에 잠든 고양이, 계란을 만난 아보카도, 복숭아를 들고 있는 새 등 엉뚱한 캐릭터를 등장시켜 갤러리처럼 쇼윈도와 매장을 새로운 공간으로 변신시켰다. 이뿐 아니다. 어린아이처럼 장난기 넘치는 그의 상상력은 모노그램을 자유분방하게 해석한 패턴을 통해 더욱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스스로 ‘메모리 스케치’라고 부르는 그의 접근법은 모노그램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대신 머릿속에 남은 잔상을 그리는 것. 물속을 헤엄치듯 크기나 간격이 불규칙한 패턴은 오버사이즈 점퍼나 활동적인 팬츠 등 스포티 룩에 더해져 몸의 곡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디자인됐다.
캡슐 컬렉션부터 윈도 디스플레이, 디지털 콘텐츠까지 영역을 넓힌 협업은 모노그램의 첫 틀을 깬 스테판 스프라우스의 작업을 떠올리게 한다. 그가 모노그램의 형식을 깬 작업으로 다른 아티스트에게 길을 터준 것처럼 우르스 피셔와의 작업은 더욱 다양해진 플랫폼에서 가능한 협업 영역을 확인시켜 줬기 때문이다.

LA와 뉴욕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우르스 피셔가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우르스 피셔와의 대화
」수작업으로 진행한 모노그램에 중점을 둔 점은 하우스를 상징하는 모노그램이 일상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 그 의미가 각자의 배경이나 지역 생활 방식, 열망에 따라 어떤 모습으로 다가갔는지 고민했다. 가장 먼저 한 작업은 즉흥적인 이미지를 떠올려 그리는 것. 마치 사람들에게 세계 지도를 그려보라고 하면 각자 다른 해석을 하는 것과 비슷했다. 어떤 사람에겐 유럽이 더 클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한 도시를 그리는 걸 잊어버릴 수도 있지 않은가. 이처럼 기억을 통한 왜곡 방식이 루이 비통의 모노그램에 새로운 역사를 더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연상 과정을 거쳐 완성된 프린트는 2D 이미지가 아니라 촉감이 느껴지고 표면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기를 원했다. 루이 비통의 전문가 팀과 터피타지 기법(터프팅 기법처럼 수술 장식을 더해 엠보싱을 더하는 기법)을 개발해 마치 테디 베어를 만지듯 벨벳처럼 부드러운 소재의 모노그램을 완성했다.
루이 비통에 속해 있는 다른 디자이너와 장인, 전문가와의 협업은 어땠나 분야별로 숙련된 전문가들과 긴밀하게 협력한 것은 값진 경험이었다.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는 실험 정신이 서로를 연결했다. 아티스트로서 혼자 일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최근처럼 시기적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다양한 담론에 참여하는 것이 매우 유익했다.
브랜드의 다양한 요소를 어떻게 활용했나 한정판 가죽 제품부터 레디 투 웨어, 액세서리, 디스플레이,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에 이르기까지 이번 협업은 폭이 넓었다. 분야가 넓은 만큼 제품이든 이미지든 하나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먼저 윈도 디스플레이와 매장 내의 가구들은 스토리텔링에 대한 열망으로부터 탄생했다. 물고기 입에서 나오는 애벌레, 바나나 안에서 자고 있는 고양이, 달을 기어오르는 달팽이 등 장난기 넘치는 캐릭터들의 스케치는 처음엔 실크 스카프에 프린트하기 위해 디자인했지만 윈도 디스플레이와 스토어 안의 가구, 인스타그램 클립으로도 발전됐다.
이 작업이 특별했던 이유는 루이 비통이 그 자체로 온전한 실체라는 점이 좋다. 루이 비통 하면 떠오르는 브라운 컬러를 하우스 중심부인 나무 몸통으로 생각하면 각각의 제품들은 나뭇잎을 상징하는 것 같다. 거기에 이번 같은 다양한 협업은 곳곳에 활짝 피어나는 꽃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궁극적으로 루이 비통과 아티스트의 협업이 세계를 여행한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갤러리나 박물관의 벽을 넘어 의사소통의 도구이자 함께 경험을 즐기는 수단이 아티스트에게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다.

자유 분방함이 느껴지는 그의 작업실 흔적들.

자유 분방함이 느껴지는 그의 작업실 흔적들.

자유 분방함이 느껴지는 그의 작업실 흔적들.

따뜻한 도시의 기운이 느껴지는 식물과 강렬한 레드 컬러가 프린트된 키폴 백이 조화롭다.

터피타지 기법을 더한 카바스 백이 작업실 한구석에 작품처럼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