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지인(27세, 모델 & 프리랜서)
2020년에 19세가 된 내게 코로나19는 예상치 못한 복병이었다. 대학 입시 전형 계획은 계속 일정이 바뀌었고, 개학도 5월에야 했다. 기다려주지 않는 시간 속에서 정신없이 바쁜 나날이 지나갔다. 열아홉 살은 스무 살을 위한 준비 기간이라고 여겼던 터라 생각한 것과 다르게 지나간 올해가 조금 야속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스무 살은 정말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에 불과하다. 결국 중요한 건 스무 살이 된 나의 알맹이다. 어떤 어른이 될지 생각해 보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 어른이 될 준비는 충분하다는 걸 혼란스러운 시간 속에서 깨달았다.
양하영(19세, 학생)
코로나19가 생기기 전에 나는 집에 있는 걸 좋아하고 밖에 나가는 걸 싫어했다. 그런데 지금은 집에만 있는 게 지루해졌고,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예전에는 신체 활동에 크게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신체 활동에도 큰 관심이 생겼다. 특히 신체 활동을 하는 유일한 시간인 발레 시간이 너무 좋다.
정지호(11세, 초등학생)
결혼 5년 만에 첫아이를 낳고 부모가 됐다. 계획적으로 삶의 타임라인을 꾸려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아름답고 행복하기만 한 육아는 SNS 속 전설처럼 존재하는 것! 아직도 하고픈 일이 많은 자연인으로서의 나와 어설픈 모성애와 책임감으로 엄마가 돼버린 내가 분투 중이다. 고민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복잡해지지만, 늘 그렇듯 정해진 답은 없다. 주어진 상황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할 뿐. 그 어느 때보다 물 흐르듯 흘려보내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 2020년이다.
문소원(35세, 주부)
서울시립대 근처인 우리 동네는 ‘핫플’과는 거리가 멀다. 동네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신기해 출근 도장을 찍기 시작하다 보니 어느새 일원이 돼 있었다. 음료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 카페에서 일하는 내게 올해는 조금 두렵고 불안한 해였다. ‘꾸준히’라는 단어와 거리가 먼 내가 처음으로 마음을 쏟은 이 공간을 오래 누리려면 찾아주는 사람들의 안전이 최우선이기에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그리고 한 해가 끝나가는 지금, 나는 우리가 나름 잘 이겨냈다고 생각한다. 1월에 세웠던 많은 목표 중 계획대로 진행된 것은 단 한 가지도 없다. 그러나 때로는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계획보다 마주한 현실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열심히, 행복하게 일한 덕분에 소중한 기억들이 남았고, 지금 나는 내 공간을 운영할 준비를 하고 있다.
설이(22세, 카페 너디블루 호스트)
올해 2월 스타트업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했다. 예전에 다닌 대기업에서는 드물었던 야근이 이어지던 나날. 올해 들어 유독 엄마를 찾는 여섯 살 딸아이가 걱정되던 차, 마침 남편이 무기한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그동안 야근과 출장이 잦은 남편이었지만, 함께 목욕도 하고 책도 읽는 나날에 다행히 두 사람은 금세 익숙해졌다. 주말에는 셋이 안전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차 트렁크에 원터치 텐트와 피크닉 매트를 싣고 다니며 주말마다 도시락을 싸서 인적이 드문 곳으로 소풍을 갔고, 가족을 초대해 홈 파티를 열었다.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한 끝에 결국 우리 가족은 올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우리에게 어쩌면 꼭 필요했던, 선물 같은 날들.
조은선(38세, 워킹맘)
올해 나의 ‘거리 두기’는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들이 회사 근처에서 자취하는 데 이어 지난봄 딸아이가 결혼으로 분가한 것. 그렇게 홀로 생활을 시작하게 됐고, 시간은 예상외로 빠르게 지나갔다. 젊은이가 보기에는 그저 그런 단순한 날이겠지만, 내게 새로운 일상은 제법 소중하게 느껴졌다. 내 맘대로 미니멀하게 꾸민 집에서 소박한 아침을 먹고 커피 한 잔과 음악, 독서를 즐기고 친구와 어린이대공원을 산책했다. 비워진 가족과의 시간이 나만의 여유를 즐기는 시간으로 풍요롭게 채워졌다. 그러나 음악은 아들로부터, 책은 딸로부터, 가끔 즐기는 와인은 사위로부터 전해 받으니 마냥 나만의 시간만은 아닌 셈. 거리는 떨어져 있어도 마음이 닿는 길은 여럿인가 싶다.
최순영(58세, 주부)
‘코로나19 덕’이라는 말은 이상하지만 출장과 일이 연달아 취소되면서 남은 건 갑작스러운 시간 공백이었다. 지금 이 시간을 잘 보내지 못하면 안녕한 내일도 없을 것 같은 마음이 계시처럼 떠오르면서 오랫동안 소망했던 다른 지역 살아보기를 실천했다. 여름내 3개월 동안 제주에 지내면서 일할 때만 서울을 오갔다. 서울에서의 삶과 반대로 바다와 숲을 일상에 두고, 일과 촬영을 특별한 이벤트처럼 여기며 지냈더니 일과 일상, 모든 것이 말 그대로 행복해졌다. 일이 없으면 불안하고 일이 많으면 스트레스가 쌓이던 마음에도 생기와 열정이 채워진 기분이다. 지금은 다시 서울로 돌아왔지만, 3개월 동안 충전한 유연한 마음은 아직도 유효하다.
정희인(34세, 스타일리스트)
주식시장, 한국의 폭등하는 집값과 불안정한 고용시장을 바라보며 경제적으로 무지했던 30대를 뼈저리게 후회했다. 1년 전에는 증권사 계좌도 없던 내가 지금은 ‘장’을 살피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기업 상장 소식과 국제 정세에 귀를 쫑긋 세운다. 물론 40년 넘은 압구정 아파트가 매매가 50억 원을 찍었다는 뉴스를 보면 이게 다 뭐냐 싶지만.
김정현(40세, 회사원)
여행 잡지사에서 일했고 현재 베를린에서 살고 있는 내게 코로나19의 영향력은 강력했다. 미 대륙과 아프리카까지 여행하기 좋은 유럽의 중심,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베를린의 매력은 급격히 빛을 잃었고, 4월 록다운 때는 패닉이 왔다. 피곤한 몸을 누일 곳으로만 여겼던 집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한 휴식처라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푸릇한 화분을 들이고, 바우하우스 디자인 램프와 요가 매트 그리고 정리함을 샀다. 더불어 ‘코딩/UX, UI 디자인 온라인 특강’ 포스팅도 열심히 체크한다. 어디서든 내 삶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술이 최고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서다희(41세, 넥스트 시티 프로젝트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