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간판에 빠져 길을 잃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서울이라는 도시를 다루는 잡지를 만들다 보면 ‘서울스러움’이 무엇인지를 늘 고민하게 된다. 매번 다른 이유로 고민은 시작되지만, 결론은 언제나 같다. ‘서울의 소울’은 ‘섞여 있음’이라는 것. 어느 날 문득 북촌에서, 서울의 소울을 만나다.::북촌,간판,엘라서울,elle.co.kr:: | ::북촌,간판,엘라서울,elle.co.kr::

가끔씩 땅만 보고 다니는 병이 도진다.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치고, “죄송합니다” 말하는 순간에조차 고개는 숙인 채다. 시선을 발끝에 핀으로 박아둔 날들이 지속되던 중 북촌 나들이를 나갔다. 강남, 홍대와는 다른 정다운 공기에 절로 숨통에 여유가 공급된다. 간만에 고개 들어 하늘과 ‘눈팅’도 한번. 시선이 다시 내려오다 낮은 지붕선 바로 아래서 눈에 걸린 건 바로 북촌의 간판들. 잠시 유입을 막아뒀던 정보들이 뇌로 물밀듯이 쏟아져들어오면서 머리는 또 다시 혼란스러워진다.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수퍼마켙’이라는 표기, 직접 손으로 쓴 듯한 글씨, 지금은 없어진 ‘아래 아’자를 새겨넣은 나무판, ‘식사하셨어요?’라는 이름, 빈티지하기 그지 없는 도널드 덕의 반복 사용, 테이크아웃용 종이컵을 채워넣은 투명 상자... 모두 삼청동, 가회동, 재동, 계동, 우리가 ‘북촌’이라고 부르는 동네인 있는 것들이다. 이 모든 간판이 정말 한 동네에서 나온 것일까? 그것도 우리가 ‘한옥마을’ 4글자를 습관적으로 붙이며 자신도 모르게 ‘옛스럽다’고 규정해버리는 바로 그 동네에서? 간판이라는 물건이야말로 그 가게의 성격이 어떤지, 주인이 누구인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도구다. 놀랍게도 고대 이집트인과 그리스인, 로마인들도 사용했단다. 이토록 소리없이 혼재하는 다양한 정체성, 그 정갈한 혼란의 묘미! 북촌이라는 동네의 성격을 그저 ‘옛스럽다’고 규정해왔던 것을 잠시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다. 제멋대로 생긴 간판들이 부딪칠 듯 부딪치지 않는 동네, 알 수 없는 질서가 존재하는 길을 걷다보니 북촌이 서울의 미니어처 축소판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톱처럼 생긴 금속 공방 간판, 시력검사판 모양의 카페 간판... 찬바람을 맞은지 몇 시간, 머리는 차가워지고 그물처럼 난 골목길을 따라 북촌의 간판 투어는 계속된다.*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1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