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사람 챙기기에 나선 패션 브랜드들의 이유 있는 모방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런웨이 여기저기서 수상한 흔적들이 목격된다. 스스로의 억사를 답습하는 자기 복제가 빠른 속도로 번져가고 있다. 자기 사람 챙기기에 나선 패션 브랜드들의 이유 있는 모방. |

SCENE 1 청담동 프라다 쇼룸. F/W 컬렉션에 관한 프리젠테이션이 끝나고 난 후 에디터들은 이제 막 공개된 프라다의 따끈한 기운을 느껴보고자 보디 가까이로 걸음을 옮긴다. 백문이 불여일견. 백화점 시식 코너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버릇처럼 나와 프라다의 첫 대면에도 조심스런 스킨십이 필요하다. 세심하게 여며 썰은 듯한 스커트 자락들이 손가락 사이로 들어왔다 썰물처럼 스르륵 빠져나간다. 그 여운을 느끼고 있던 찰나, 머리 위로 뭉게구름 하나가 떠오른다. 데자부. 어디서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장면이다. 그렇다면 미천한 내가 미우치아 프라다 여사의 노고가 담겨 있는 디자인을 예지한 걸까? 그럴 리 없잖아. 두뇌 속은 이와 관련된 정보를 처리하느라 엄청난 속도로 풀 가동을 시작한다. 멈춤. 아주 멀리 갈 것도 없다. 1998년 F/W 컬렉션. 당시 톱 모델이었던 에스테르 드 종과 앰버 발레타의 매끈한 허벅지를 염탐할 수 있었던 슬릿 스커트의 부활이다. 이렇듯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지금 우리는 모방이 보여줄 수 있는 끝없이 화려한 스펙트럼 속에 살고 있다. 바야흐로 발견이 아닌 재구성의 시대다. 하지만 영감이라는 폼나는 단어를 빌어 진행되는 표절 혹은 오마주, 이 사랑의 작대기도 계속되다 보면 그 경우의 수를 소모해버리기 마련이다. 외부로부터 영양분 섭취가 불가능하다면, 창작의 샘물이 말라버렸다면? 최후의 수단은 스스로 맨살을 도려내 이식하는 것뿐이다. 자가발전. 예술 분야를 통틀어 이러한 방법은 ‘모 아니면 도’의 결과를 낳는다. 도태와 나르시시즘 사이. 콧대 높은 패션계도 예외는 아니다. 자기 복제는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디자이너들의 최후 보루와 같다. 드라마틱한 컬렉션으로 소비자들을 감동시키는 시대가 있었다면, 지금은 한 번이라도 더 브랜드의 정체성을 각인시키는 데 포커스를 맞춰야 할 때다.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소신과 신념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 복제를 선보인다. 아주 은밀하거나, 아주 노골적인 방법으로. 사례 1에서 보여진 프라다의 자기 복제는 전자에 가깝다. 가장 지적인 방법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프라다는 시대의 흐름을 자기화시켜 적절한 전략을 펼쳐낸다. 초창기의 그것이 새로운 소재이고, 전성기의 그것이 신선한 디자인이었다면, 최근 프라다는 아이템을 새롭게 소화하는 방식에 골몰해 있다. 그 과정에서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의 아이템과 룩이 다시 빛을 발하게 된 셈이다(티어드 스커트, 입술 프린트, 상체에 완벽하게 피트되는 V 네크라인 카디건과 포플린 버튼다운 셔츠의 반복은 물론 암녹색과 적갈색의 배색 또한 그렇다). 이상적인 여성상을 구현하겠다는 프라다의 의지는 쇼뿐만 아니다. 최근 전만 해도 그렇다. ‘다리 아래의 자유’를 기치로 프라다의 스커트 아카이브를 공개한 것은 그만큼 자기 복제에 확실한 자의식이 깔려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디자이너 스스로도 공개석상에서 시그너처 룩을 입은 모습만 드러내니 전방위적인 자기 복제가 아닐 수 없다. 그에 반해 만천하에 그 의도를 다 드러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보통 비즈니스 유전자의 끓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는 이들이 그러한데 마이클 코어스나 디 스퀘어드, 안나 수이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확실한 타깃을 찾아 아픈 곳만 찌르는 방법을 계속한다. 동시대의 고객만을 고려하는 셈이다. 마이클 코어스 같은 경우 볼드한 스트라이프 원피스, 칼라가 넓은 더블 버튼 코트 등으로 사우스 햄튼의 마나님 룩을 완성한다. 안나 수이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가 꿈꾸는 옷장에선 안나 수이의 노스탤지어가 끊임없이 계속된다(이상한 나라로 연결되는 마법의 옷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딘 앤 댄 형제는 할리우드 드림을 머금은 이들에게 명확한 스타일링을 제안하며 브랜드의 속내를 훤히 비춰 보인다. 이들의 뚝심은 충성적 마니아를 만들어내는 데 모자람이 없다. 한국의 여느 마담 브랜드들이 그러한 것처럼. 하지만 보통의 디자이너들은 이 중간의 방식 혹은 철저하게 분리된 방식으로 자기 복제를 진행하고 있다. 매 시즌 선보이는 랑방의 미니 칵테일 드레스는 이미 새로운 클래식으로 불릴 정도. 앨버 엘바즈는 도에 넘치지 않게 자기 복제 비율을 조정하며 랑방의 주력 아이템을 굳건히 하고 있다(모든 여자들이 탐내는 랑방의 커스튬 주얼리는 세트 메뉴다). 마르니 또한 커팅과 수채화적 패턴이라는 얼개를 잡아놓고 은근한 자기 복제를 진행 중이다. 콜래보레이션이나 리조트 컬렉션, 프리폴(Pre-Fall) 컬렉션은 어떨까? 많은 디자이너들이 선호하는 분리된 방식 중 하나다. 자기 복제 죄의식을 덜 수 있는 실험의 장이기도 하며, 내 손에 피 묻히지 않고 자기 복제를 진행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최근 패스트 패션 브랜드와 진행되고 있는 공동 작업들은 자기 복제를 대량생산해 브랜드의 파이를 넓히는 좋은 구실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자기 복제를 돈벌이의 일환으로만 폄하할 것은 못된다. 잘 만들어진 장르영화의 클리셰가 마니아들에게 절대적인 환영을 받는 것처럼 패션에서의 자기 복제 또한 진화의 한 과정이 될 수 있다. 패션계에 작별을 고한 헬무트 랭만 봐도 그렇다. 그는 되려 스스로에게 파고들어 더 넓은 영역을 만들어낸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경제 불황 + 아이디어 고갈 = 자기 복제’라는 공식은 진부하고 위험한 생각일 수 있다. 자기 복제는 나비효과와 같다. 변수와 조건을 만나 어떠한 결과가 맺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양날의 검을 쥐고 있는 디자이너의 자기 복제는 아메바적이기보다는 인간의 번식에 가까우니까.*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0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