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낙태죄 어떻게 생각하세요? #ELLE보이스

나의 몸은 불법이 아니다.

BYELLE2020.11.10
 

낙태죄는 태행이라고!

2018년 8월, 나는 동료들과 “나의 몸은 불법이 아니다”라는 행사를 기획 중이었다. 운영 중인 출판사 봄알람이 유럽 국가들의 ‘임신 중지’ 이슈를 관찰한 〈유럽 낙태 여행〉을 출간하고, ‘2018년은 낙태죄 폐지’라는 구호를 마음에 품고 있던 여름이었다. 보신각에서 125명의 여성이 함께 유산유도제를 먹는 퍼포먼스를 통해 임신 중단에 관한 사회적 터부를 겨냥하고자 했다. 시위 당일 종로 보신각에 모인 익명의 우리는 마지막 퍼포먼스로 함께 알약을 삼켰다. 매일 3000명, 매시간 125명의 한국 여성이 불법 낙태 시술을 받는다는 통계 수치 대로 그날 1시간의 행사 동안 125명이 종로 거리에서 ‘낙태를 했다’.
 
‘진짜 낙태약’을 먹는 것은 미리 의사의 검진을 받은 활동가 한두 명이고 다른 참가자들에게는 같은 패키지에 넣은 비타민이 주어졌다. 그리고 나는 시위 전날 ‘진짜 약’을 먹는 후보군으로서 의사를 만났다. 어지럼증이 있을 수 있다는 조언과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예비약도 처방받았다. ‘미프진’으로 불리는 낙태약은 수술 없이 유산을 유도하는 방법으로 중절 수술보다, 심지어는 비아그라보다 안전하며 2005년에는 세계보건기구 필수의약품 목록에 등재되기도 했다. 그러므로 낙태도 낙태약도 ‘위험하니까 규제하는 것’이라는 말이 헛소리임을 그때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의사를 만난 김에 다시 물었다. “그런데 이 약 위험해서 한국에서는 유통되지 않는다는 말은 뭐예요?” 의사는 대답 대신 “자궁에 배아가 착상한 뒤 여성 신체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일은 출산이에요”라고 대답했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얼마나 많은 산모가 애를 낳다 죽었으며, 고통에 혼절했으며, 산후 우울증과 비가역적 신체 변화를 겪었던가? 그럼에도 모든 산부인과 교육자료의 맨 첫째 대전제라는 그 한 마디를 직접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낙태죄는 이치에 맞는 구석이 단 하나도 없었다. 씩씩한 발걸음으로 병원을 나왔다. 이 싸움은 이겨야만 하며, 낙태죄는 없어질 때가 됐다. 이길 수 있다.
 
그리고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현행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임신 중단은 기본권’이라 쓰인 피켓 사진을 찍어 출판사 SNS 계정에 올렸다. 한 발짝의 승리를 기념하고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 앞에 의지를 다지는 짧은 글과 함께였다. 헌법불합치 판결이라는 헤드라인을 읽은 순간 머릿속을 휘젓고 지나간 것은 여성들의 수많은 고통이었다. 음지에서 불법 중절 수술을 감행하며 한국의 여성들이 겪어온 지독한 모욕과 불합리, 세계의 여성들이 몸에서 배아를 지우기 위해 동원해 온 락스 물이며 나뭇가지며 옷걸이 같은 뼈아픈 상징들, 가족에게 임신 사실을 숨긴 채 낙태가 불법인 자국을 홀로 떠나 수술을 받고 더러운 방에서 끝없이 피를 흘리며 공포에 떨었다는 여성의 이야기 같은 것 말이다. 이제 그런 야만은 천천히 지나간 역사로 남게 되리라는 희망이었다.
 
그러나 2020년 10월 지금, 우리는 다시 퇴행의 기로에 섰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입법 예고를 통해 임신 14주가 지난 임신 중단 결정을 규제함으로써 낙태죄 ‘폐지’가 아닌 ‘존치’를 택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또다시 해야 할 줄은 몰랐다. 첫째, 낙태죄는 실제 임신 중단을 막는 데 효과가 없다. 현실과 괴리된 법은 그저 임신 중단을 위험하고 비싸게 만들 뿐이다. 둘째, 낙태가 가능하므로 ‘마구 임신’하는 여성은 없다. 낙태가 많아질 것을 염려한다면 남성 정관수술 의무화를 추진하면 어떤가? 셋째, 언제 아이를 낳아 기를 것인가는 전적으로 여성의 선택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이는 기본권이며, 국가가 이를 통제하거나 죄를 물어서는 안 된다. 〈유럽 낙태 여행〉을 쓰기 위해 유럽 여러 나라의 역사와 현실을 배우며 돌아다닌 동안 가장 명쾌하게 깨우친 한 가지는 여성의 임신 중단을 국가가 법으로서 단죄하는 데 어떤 도덕적·이념적 근거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낙태죄의 존립에 어떤 미사여구와 가치 판단을 끌어 붙인다 해도 그저 여성의 성과 신체를 통제하는 일에 불과하다. 폴란드에서 만난 우르술라는 낙태죄에서 “여성의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의사가 여성을 돕지 않으리라는, 국가가 현실과 괴리된 명분을 위해 여성 시민을 처벌하리라는” 공포를 읽는다. 아일랜드의 캐럴은 “그냥 여자라서 벌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행의 끝에 만난 프랑스의 마리는 “설령 임신 9개월이 됐다 하더라도 본인이 그러겠다고 결정하면 (낙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단언했다.
 
낙태죄의 본질은 남성의 애를 낳을 것이 아니면 그 몸을 감히 성행위에 쓰지 말라는 통제다. 낙태죄를 못 놓는 모든 사고의 기저에는 스스로 재생산하지 못하는 남성이 재생산의 영역에서 끝내 한 고삐라도 쥐고 흔들고 싶어 하는 유구한 여성 통제 욕구가 있다. 시대착오적 통제에 온갖 명분을 붙여 누구도 원치 않는 출생을 늘려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임신 중단은 의료 서비스다. 낙태를 하고 싶어 하는 여성은 없다. 필요한 순간에 안전하게 그것을 선택할 권리를 마땅히 가져야 할 뿐이다. 치과를 싫어하는 모든 시민에게 의료보험 잘되는 쾌적한 병원을 찾아 안전한 환경에서 처치받을 권리가 있듯이 말이다.
 
이두루_ 출판사 ‘봄알람’ 대표. 베스트셀러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와 〈김지은입니다〉 등을 펴냈다. 현실의 이슈를 다룬 텍스트와 논의가 여성의 삶에 즉각적으로 개입하는 힘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