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mr. ford 친애하는 미스터 포드에게. 며칠 전 세탁소 주인과 크게 다퉜습니다. 세탁을 맡긴 재킷 단추를 잃어버리고는 원래부터 단추가 다섯 개였다면서 오리발을 내밀어서 말이죠. 세상에, 톰 포드가 만든 구찌 더블 재킷이 절름발이처럼 단추가 다섯 개뿐이란 생각을 할 수 있다니.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재킷만 따로 보관한 옷장에는 구찌가 일곱 벌, 이브 생 로랑이 네 벌인데 모두 당신이 만든 옷입니다. 이브 생 로랑 옹께서는 생전에 톰 포드가 이브 생 로랑을 천박, 경박, 야박하게 만들었다고 언짢아했다지만 제 생각엔 그 시절의 이브 생 로랑이 최고였어요. 구찌요? 말해 뭐하겠어요. 당신에 비하면 프리다는 그저 어린 여자애죠. 그녀는 구찌의 색정을 너무 몰라요. 그나저나 이제 다시 여자 옷을 만든다니 한시름 놨어요. 왜냐하면 열한 벌의 재킷을 하도 돌려 입어 어느 날 끝단이 헤어지거나 소매가 찢어질까 봐 노심초사하던 참이거든요. 당신 옷에는 그걸 입기 위해서 쇳덩이를 번쩍 들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마력이 있어요. 특히 팔이 굵어지면 모든 게 끝장이죠. 그래서 전 매일 밤 당신의 베스트 록 넘버인 브라이언 페리(Bryan Ferry)의 ‘Slave to Love’를 틀어놓고 팔운동을 해요. 지루해질 때마다 새로 산 톰 포드의 어번 머스크 향수를 뿌리면 새 사람이 되는 기분이랄까요? 가끔은 맨 몸에 톰 포드 보타이를 매보기도 하죠. 제가 변태 같아요? 체모를 G 모양으로 깎은 카르멘 카스 사진을 기억한다면 이 정도는 귀여울 텐데요. 독수리에게 젖꼭지를 막 물린 여자가 등장하는 아이웨어 광고는 또 어떻고요. 참, 이번 톰 포드 여성복 중에 화이트 턱시도 꼭 살 거예요. 그걸 사기 위해서 팔 패물 목록을 지금 한창 정리 중이에요. 서울에서, 당신의 오랜 연인 지영. from 패션 디렉터 강지영
welcome back! 반갑네요. 당신이 돌아온단 소식에 남몰래 환호하던 내가 이렇게 당신에게 편지를 쓰게 될 줄은 몰랐어요. 모두들 인정하겠지만 당신, 참 대단한 사람이에요. 구찌 제국을 부흥시킨 94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옷을 만들거나 영화를 만들 때도, 심지어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을 때조차 당신의 영향력은 여전했지요. 그 영향력으로 치자면 난 당신만큼 지독한 사람을 보지 못했어요. 당신의 할리우드 데뷔작인 <싱글맨 Single Man>을 보며 그 숨막힐 정도의 완벽한 스타일링에 기가 질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매장을 둘러보면 모든 것이 완벽해 그 안에 있는 내 자신만이 유일한 흠처럼 여겨졌으니까요. 이 얼마나 서글픈 일이에요. 뚱뚱한 사람(순전히 당신 기준에서)이 매장 안에 어슬렁거리며 당신의 보석 같은 옷을 행여 입어볼까 아예 큰 사이즈는 만들지도 않았잖아요. 하지만 난 늘 당신의 그 거만한 태도가 좋았어요. 인간의 본성, 저 밑바닥에 감춰져 있는 섹스어필하고 싶은 본능, 그 본능을 파는 당신의 스마트함과 자칫 잘못하면 천박해질 수밖에 없는 것들을 고급스럽게 포장하는 기술.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매료시켰지요. 톰. 당신이 돌아오면 미니멀하고 섹슈얼한 시대가 활짝 열리겠지요. 당신을 위해 내가 평창에 게스트하우스를 하나 만들려고 하니 꼭 놀러 오세요. 나의 게스트하우스는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는, 어른들만을 위한 곳이니 당신 같은 사람도 쉴 수 있지 않겠어요? 물론 까다롭기 그지없는 당신 성에 찰까 걱정도 되지만요. 하여튼 두서 없이 말이 길어졌지만 진정으로 “웰컴 백!”입니다. from 스타일리스트 임희선
dear tom ford 저와 디자이너 윤한희 씨가 Y&Kei라는 브랜드로 뉴욕에서 컬렉션을 하던 2005년 즈음, 컬렉션 애프터 파티가 열린 당시 최고의 핫 플레이스에서 당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결같은 명민함과 과도할 만큼의 자신감을 뿜어내는 당신의 컬렉션을 보면서 가끔 불편했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다소 외로워 보였던, 그래서 인간적이었던 당신의 눈빛과 그리고 홀연히 사라진 당신의 쓸쓸한 뒷모습에 그간의 편견들이 바람처럼 날아가 버렸던 기억을 고백합니다. 최근 패션계의 톱 뉴스는 당신이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입니다. 인터넷 어디에도 런웨이 영상을 상영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는 당신! ‘뭐든 빠르게 진행되고 안달하는 패션계의 풍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이며 ‘이제 패션에 기다리는 여유와 기대감이 필요하다’는 철학을 드러냈다고 들었습니다. “회사 방식에 휘둘리는 것이 아닌 자유를 원한다.”는 당신의 고백은 대기업과의 합병 그리고 이별 후 디자이너로서 휴면기 중인 제게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관계의 고통에서 벗어나 날카롭게 빛나는 디자이너의 직관으로 다시 패션을 삶의 중심으로 만들 수 있기를, 그리하여 제게 샤넬과 같은 영원 불멸한 패션 그리고 아르마니 같은 라이프스타일 제국의 창조를 위한 이유 있는 반항과 성스러운 열정을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from 디자이너 Gene K
dear tom 맨 처음 톰을 보고. 저는 놀라지 않았어요, 옷에도 별로 관심없었고요, 향수? 안경? 뭐 그닥… 톰의 구찌는 저에게 무심하게 지나가고 있었죠. 그날이 언제였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아요. 우연히 건너편 여자가 잡지를 보고 있었죠. 저는 그 책의 뒤 표지에 실린 톰의 향수 광고를 본거 죠. 어? 했어요. 강했거든요. 포르노그래피를 연상할 만큼 바짝 왁싱이 된 여자의 몸 중심에. 향수를 올려놓은, 빨간 매니큐어의 손이 있는. 잔뜩 젖어 있지만 언젠지 모를 옛날의 부기 나이트 같은. 그래서 또 찾아봤죠. 이번엔 가슴이었어요. 남자의 엉덩이였어요. 이니셜 G로 왁싱을 하고 말았어요.퇴폐적이에요. 그래서 좋았고, 강했고. 저는 톰의 옷들도 들여다보기 시작했죠. 아, 이래서 다들 그렇게 난리였구나. 이래서 다들 그렇게 열광했구나. 그리고 기다렸구나…. 퇴폐를 그렇게 풀어낸 톰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소식이 들리던데요??? 그즈음 “그 톰이 온다!” 어떤 걸 들고 올지 어떤 모습으로 언제 올지기대하고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해 편지를 써요. 부담? 아마도 가지셔야 할 거예요. 그때 받았던 톰의 충격으로 이제 저는 맷집이 좋아졌거든요. from 백종열 617.LAB.THINK.DESIGN.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월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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