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LIFE

드라마로 배우는 밀레니얼의 연애 방식

이해할 수 없어도, 이해하고 싶지 않아도 누군가에게는 진심이자 전부다. 요즘 사랑을 말하는 소설,웹툰, 드라마와 K팝을 통해 본 밀레니얼의 사랑 방식.

BYELLE2020.10.31
 

전하지 못한 진심 드라마 

〈노멀 피플〉 
사랑을 사수하기 위해 충실해야 할 사소한 진실의 순간을 우린 너무 쉽게 흘려보내는 게 아닐까? ‘이거 내 얘기잖아!’라며 밀레니얼 사이에서 열렬한 지지를 얻고 있는 BBC 드라마 〈노멀 피플〉은 그때 나눴어야 하는 이야기, 드러냈어야 하는 욕망이 끝내 무시됐을 때 연인에게 닥칠 불행을 여실히 보여준다. 주인공 메리앤과 코넬의 위태로운 사랑엔 두 번의 위기가 찾아오는데 전부 성급한 추측과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이때마다 두 사람을 둘러싼 천생연분의 기운은 맥없이 흩어지고 만다. 대학교 CC로 행복한 연애를 이어가던 두 사람이 “각자 다른 사람을 만나보는 것이 좋겠어”라는 코넬의 폭탄 선언으로 이별하게 될 때처럼. 사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진 코넬은 내심 한동안 메리앤의 집에 얹혀살았으면 했지만, 그에겐 이를 고백하는 것보다 차라리 이별을 선언하는 일이 훨씬 쉽다. 내가 덜 매력적인 사람처럼 비춰질 거란 불안과 괜한 자격지심,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자신을 보듬어줬으면 하는 욕망이 뒤섞인 감정을 설명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니까. 메리앤 역시 솔직하지 못하다. 코넬이 다른 여자한테 호감을 느낄지 모른다는 불안을 꽁꽁 숨긴 채 맥락 없이 “다른 여자 만나보고 싶지?”라고 물으며 그의 진심을 테스트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미국 유학 결정을 앞둔 코넬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여기 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줘”라며 드디어 약간의 진심을 드러낼 때조차 결국 “넌 가야 해”라고 말한다. 이어질 듯 자꾸만 끊어지며 보는 이들의 마음을 갑갑하게 만드는 이 커플의 로맨스에서 결국 서로의 집안과 경제력 차이, 메리앤의 SM적 성향은 그리 치명타가 되지 못한다. 이들의 소통을 서먹하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전하지 않은 진심이다. 섣부른 불안과 추측이 만든 불필요한 벽. 마지막에 터져 나온 코넬의 항변은 이 모든 고민을 꽤 정확하게 요약한다. “말 안 해서 미안해, 응? 가끔 너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민망할 때가 있어. 그냥 바보 같아 보일 뿐이니까.” 피처 에디터 류가영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웹툰 〈N번째 연애〉, 〈아홉수 우리들〉
외모와 키, 능력, 오직 한 사람만 바라보는 굳건함까지 모든 걸 갖춘 남자주인공은 독자의 외면을 받는다. 적어도 요즘 웹툰에서는 그렇다. 주인공도, 서브 ‘남주’도, 심지어 악역도 각자의 사정과 상처를 안고 입체적으로 표현된다. 율로 작가의 〈N번째 연애〉는 제목부터 짐작 가능하듯, 이 사랑이 처음이자 끝일 것이라 장담하지 않는다. 20대 후반에 서로 만나게 된 두 남녀의 사랑엔 ‘사랑’만큼이나 더 많은 ‘부딪힘’이 존재한다. 아무리 여자친구라도 자신의 세계에 완벽히 들이지 않으며 오래된 ‘여사친’에게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는 남자주인공과 자신의 질투심과 불안만 앞세우며 전 남친을 확실하게 끊어내지 못하는 여자주인공. 예전 같으면 로맨스 웹툰 주인공 ‘결격’일 사유가 오히려 ‘현실 공감’을 자아내며 시즌 3로 마무리됐다. 네이버 웹툰에 연재 중인 〈아홉수 우리들〉의 관계에도 일방적인 잘못이란 없다. 4년을 만난 연인이 큰 다툼이나 사건 없이 이별하게 되는 상황에서, 주인공 봉우리는 혹시 내가 계약직이라서, 남자의 부모가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겨 이별을 ‘당한’ 게 아닐까 하는 답 없는 자책을 반복한다. 이별을 고한 준에게도 비난의 여지는 없다. 지금은 같은 곳을 바라보지만 누구나 언제든 생각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현실을 통해 이미 잘 알고 있으니까. 봉우리의 친구, 차우리가 호감 있는 남자와 잠은 자도 사귀기는 싫어하는 데는 사실 자신에게 기댄 가족을 부양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속사정이 숨어 있다. 100% 잘못이란 없다. 처음에는 ‘누가 더 잘못했다’는 식의 댓글 창 의견이 분분하지만, 끝내 우리는 그들을 이해한다. 서툴고 이기적이지만 결국 아픈 것은 매한가지인 우리가 사랑하는 풍경과 닮았으니까. 그간 받아온 ‘N번’의 상처만큼 성숙해졌지만, 그만큼 기대도 사라진 요즘 연인관계에서는 누구나 한 번쯤 악역이 될 수 있다. 나도, 당신도. 브런치 작가 레이나 

나를 지키기 위한 소극적 사랑법

소설 〈프리즘〉
연애소설은 엇비슷한 것 같아도 늘 현실을 따라간다. 중매결혼이 대세일 때는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비장한 로맨스가, 연애는 자유롭지만 어디까지나 결혼을 전제로 한 이야기일 때는 혼사 장애 로맨스가, 여성의 사회 진출이 대폭 증가하던 시기엔 커리어 우먼의 녹록지 않은 현실 연애 얘기가 유행하던 것처럼. 최근 연애소설에서는 영원도 구원도 아닌, 과정이자 열병으로서 사랑을 앓는 연인의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자꾸만 엇나가는 4인의 사랑을 다룬 손원평의 〈프리즘〉 역시 마찬가지. 연애 직전의 두근거림을 사랑하지만, 그 달콤함이 짧다는 것을 알기에 연애를 길게 이어가지 못하는 예진과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기에 타인과의 접촉과 교류에 매번 실패하는 호계. 소설에 등장하는 20대의 두 주인공은 친구 이상이지만 결코 규정되지 않는 애매한 관계로 마주하는 동시에 저마다 삶에서 마주친 30대 두 남녀(도원과 재인)를 동경하고 짝사랑하는 데 만족한다. 손원평 작가는 〈월간 채널예스〉와의 인터뷰에서 20대 후반이라는 나이를 ‘어정쩡한 시기’로 규정했다. “서른이 넘으면 약간 체념하는데, 20대 후반은 나이가 적은 것도 많은 것도 아닌, 가능성이 점점 좁아지는 걸 느끼는 참 불안한 나이인 것 같아요.” 갑자기 사회에 내던져진 채 실수를 거듭하는 서투른 시기. 프리즘이 쏟아내는 무지개는 찬란하지만 그 모서리에 긁히고 상처 입을 수도 있듯이 ‘썸’은 자유롭고 달콤하지만 그 이상의 관계로 들어가는 것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는 걸 요즘 20대는 너무나 잘 안다. 사랑의 조건은 더욱 까다로워졌으며, 상대에게 헌신하는 일은 점점 어려운 일이 되고 있는 지금, 자신을 지키기 위해 조금 덜 사랑하기로 마음먹는 우리는 과연 사랑에 있어서 더 지혜로워지고 있는 걸까?
〈순정만화에서 SF의 계보를 찾다〉 저자 전혜진

이 사랑, 할지 말지는 내가 결정해

있지(Itzy) ‘Not shy’
연인과의 사랑을 말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이 움직이는 어떤 숭고한 울림이라는 큰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하지만 밀레니얼에게 사랑이란 그런 숭고함이 아니라 “새것만 좋아해요/반짝거리죠(레드벨벳, 피카부)”와 같이 기호에 따라 고를 수 있는 하나의 선택지에 가깝다. 스스로에 대한 사랑을 무려 3부작으로 다룬 있지(Itzy)는 최신곡 ‘Not shy’에서 처음으로 연인에 대한 사랑을 말하면서도 “난 빨리빨리 원하는 걸 말해/못 가지면 어때”라며 여유로운 태도를 보인다. 기꺼이 불 피운 자신의 의지야말로 사랑을 끌고 갈지 말지를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이라 말하는 ‘LATATA’ 속 (여자)아이들의 모습과 닮았다. 1998년에 핑클이 “오늘 그녀를 만났어/  너의 새로운 그녀를(루비)”이라며 청승맞은 모습으로 연인의 배신조차 끌어안고, 2010년에 소녀시대가 “오빠 나 좀 봐(oh!)”를 외친 뒤에 2012년 미쓰에이가 ‘남자 없이 잘 살아’라며 남성에게 선전포고 아닌 선전포고를 하는 동안 자라난 새로운 세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이들이 부르는 사랑 노래는 상대의 감정보다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자신에게 집중돼 있고, 한번 사랑에 빠지기로 결심한 이상 그 감정에 휘둘리기를 겁내지 않는다. 이번 사랑이 끝나도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오면 되니까. “내 맘은 내 거 그러니까/좋아한다고 자유니까/네 맘은 네 거 맞으니까(있지, Not shy).”
각자의 마음은 각자의 것이라 외치며 판단과 선택의 자유를 외치는 요즘 걸 그룹은 달라진 사랑 방식을 그려내며 또래 여성의 환호를 받는다. 게다가 스스로를 ‘Lovesick girls’라 부르고, 사랑 따위에 지쳤다며 손을 들기까지(블랙핑크, Lovesick girls).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결코 가벼워진 게 아니다. 패를 쥔 사람이 바뀌었을 뿐.  그 변화의 순간을 우리는 함께 따라 부르고 있다. 대중문화 저널리스트 박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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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류가영
  • 사진 UNSPLASH
  • 디자인 이소정
  • 기사등록 온세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