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3년 당신의 첫 변론을 기억해요. 남성 공군과 달리 여성 공군은 남편을 부양하고 있음을 증명해야만 주거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었죠 당시 같은 또래의 판사 남성들은 인종 차별은 이해했지만 성차별에 대해서는 약간 무지했어요. 저는 이 문제에 대해 그들보다 훨씬 더 많이 공부했기에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할 권리를 가졌다고 생각했죠. 나는 이 땅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법정에서 할 거고,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내 말을 들어야 하는 청중이라고 믿었어요.
일종의 선생님이었군요 그렇죠. 그들은 자신을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이라고 생각했어요. 여성에게도 호의를 베푼다고 믿었죠. 그 친절이 오히려 여성을 가두는 철창과 같다는 걸 이해하도록 돕는 것. 그것이 70년대에 제가 맡은 모든 케이스에서의 임무였어요. 여성을 보호하겠다고 만든 법이 오히려 여성의 기회를 제한하고 있다는 걸 이해시키려 애썼죠. 나는 그들의 딸과 손녀가 어떤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바라는지 상상하게 하려고 했어요.
확실히 과거보다 여성 인권 재판이 많아졌어요 릴리 레드베터 사건 얘기를 해볼까요. 릴리는 남성으로 가득한 타이어 회사에서 일하는 첫 번째 여성이었어요. 동일한 직책을 가진 남성보다 적은 돈을 받았죠. 10~15년 뒤에 이 문제로 재판을 하자마자 사람들은 피해 여성이 왜 이제야 고소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릴리가 승소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됐을 때는 너무 늦게 소송을 제기한 것이 문제가 되는 거죠.
만약 임금 차별 문제를 더 일찍 소송했다면 어땠을까요 회사는 분명 ‘당신이 남성만큼 일하지 못하기 때문에 돈을 덜 받는 것’이라고 했겠죠. 지금 소송했기에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어요. 이제 회사는 ‘여성인 네가 남성보다 일을 못해서 임금을 적게 받는다’고 변명할 수 없게 된 거죠. 일단 그 변론이 제거되고 나니, 사측은 “아, 미안. 그런데 당신 너무 늦게 고소했어”라고 말하는 거예요.

법 조항에 대한 입체적인 의견이 필요하다는 건가요 깊이 생각해 봐야 해요.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출산을 장려하는 국가 정책은 말이 안 되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표현의 자유에 제약이 있던 시절의 법원은 인종 차별적인 판결을 내렸어요. 그때 나왔던 반대 의견을 읽어보면 오늘날 의심할 여지 없는 미국의 법 조항 중 하나가 됐어요. 저는 장기적 관점에서 제 반대 의견이 법원의 입장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요즘 젊은 여성 중 일부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걸 꺼리기도 해요 저는 그들이 페미니스트에 대한 의미를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스트란 여성이 남성과 마찬가지로 인위적인 장벽 없이 열망하고, 성취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에요. 남성을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고요. 남성과 여성 모두 동등한 시민권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죠.
남편 마틴 긴즈버그에 관해서도 묻고 싶어요. 그는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제가 17세 때 마티를 만났어요. 그는 제가 똑똑한 것을 장점으로 생각하는 유일한 소년이었죠. 50년대에는 똑똑한 여성들이 자신보다 남성이 더 돋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매우 슬픈 일이었죠. 마티는 항상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주었어요. 그는 너무 자신만만해서 결코 저를 위협적으로 여기지 않았어요. 오히려 제 경력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려고 했죠.
당시 미국에는 가족의 주거지를 남편이 선택하고, 여성은 남편을 따를 의무가 있었어요 1980년 제가 워싱턴 D.C. 최고법원으로 발령받았을 때 너무 많은 사람이 “출퇴근하는 게 힘들겠다”며 저를 안쓰러워했어요. 저는 속으로 생각했죠. ‘내가 왜 그런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마티는 당연히 저와 함께 워싱턴 D.C.로 이사했어요. 한번은 그와 함께 행사장에 참석했을 때 안내자들이 자연스럽게 남편 마티를 긴즈버그 판사로 소개했어요. 연방법원에는 여전히 여성이 매우 드물어요. 그때마다 마티는 “이 사람이 판사입니다”라고 정정해야 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권위 있는’ ‘여성’을 부정적으로 생각해요 저는 제 자신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권위는 바로 이 자리이며, 제가 발표할 의견을 열심히 준비하는 게 사람들의 존경심을 받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오늘도 당신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과 마주쳤어요 당신도 사진가를 데려왔잖아요. 저는 81세예요. 그런데 아직도 사람들이 내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는 건 굉장한 일이죠. 여성 대통령이 당선되는 게 이 나라에 큰 변화를 줄 거라고 믿나요 어쩔 수 없이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거예요. 내가 살아 있을 때 그 일이 벌어지는 걸 보고 싶어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끝끝내 여성 대통령을 보지 못하고 떠났다. 하지만 그의 단호한 반대 의견은 이미 우리를 바꿔놓았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