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한국에는 난민에 대한 진지한 담론이 없다_라파엘의 한국살이 #38

프랑스 교사 참수 사건과 난민 문제에 대하여.

BY김초혜2020.10.23
사진 라파엘

사진 라파엘

지난 16일 파리에서 시민을 향한 끔찍한 테러가 벌어졌다. 또. 한 남성이 거리에서 학교 교사의 머리를 잘라내는 끔찍한 사건이었다. 표현의 자유에 관해 토론하면서 만화 삽화를 학생들에게 보여줬다는 이유에서다. 경찰은 살인자를 사살했고,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큰 충격을 받았다.
 
이 뉴스는 한국 미디어에서도 많이 다뤄졌고, 그 밑에 달린 댓글들 댓글들은 이런 식이었다. “난민을 받으면 저렇게 됨”, “이슬람 이민자 들어오는 정책 반대합니다” 사실 나는 댓글을 확인하기 전까지 난민과 이 사건의 연관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냥 인간이기를 포기한 악마 같은 누군가가 공공장소에서 저지른 살인 정도로 인식했다.
 
한국에 난민에 대한 진지한 담론이 없다는 점은 나를 슬프게 한다. 500명 제주 예멘 난민 이야기처럼 미디어에서 단발적으로 소비된다. 기사들은 편향된 방향으로 이슈 몰이에 치중한다. 사건은 자주 부풀려지거나 인종차별적으로 다뤄진다. 소수 단체가 큰 목소리로 강하게 주장하면, 미디어는 이를 퍼 나르고, 독자들은 왜곡된 정보를 바탕으로 부화뇌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악플러에게 살면서 한 번이라도 난민을 만나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사진 라파엘

사진 라파엘

난민의 정의는 이렇다. 전쟁이나 핍박, 자연재해 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
 
한국은 난민을 ‘못사는 나라 사람’이나 무슬림 정도로 생각한다. 나아가 그들을 경제적 이주민, 가짜 난민, 불법체류자, 잠재적 테러리스트쯤으로 여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프레임을 만드는 건 극보수 기독교 단체들인 경우가 많다는 거다. 이들의 발언은 미디어를 통해 ‘난민 반대 시위’ 혹은 ‘난민 반대 단체’로 포장되어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막상 기사에는 시위를 주도하는 단체에 대한 설명은 하나도 없다. 편향되고, 왜곡된 주장만이 확대 재생산된다. 자극적인 말로 점철된 미디어를 접하는 대중들은 마치 난민이 거대한 사회 문제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혹여나 정우성 같은 용감한 연예인이 난민 이슈에 관해 이야기하면, 온라인에 증오 댓글이 쏟아진다. 이런 리스크를 기꺼이 감내하면서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건 분명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악플을 다는 사람들의 의견을 들여다보면 다 어디서 본 것 같은 표현이다. 극우 보수기독교의 주장과 이를 열심히 퍼 나르는 미디어의 센세이셔널리즘을 앵무새처럼 따라 읊고 있는 거다.
 
“모든 이슬람이 테러리스트는 아니지만 모든 테러리스트는 이슬람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난민들이 갑자기 무서워진다.” - 프랑스 테러 관련 기사 댓글 중 - 
 
이런 종류의 주장은 명백한 논리적 오류이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한 연구에 따르면 백인우월주의자들(white supremacists)이 주도한 테러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주도한 테러보다 9배 많은 미국인을 죽였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백인 테러범을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살인자’로 표현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백인이 아닌 피부색을 가지고 있거나, 이슬람교도면 곧바로 ‘테러리스트’로 낙인 찍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에서 난민과 무슬림을 테러리스트로 연결 짓는 것과 서구사회에서 유색인종 살인자들을 곧바로 테러리스트로 낙인 찍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인종차별적이고 문제가 있다. 한국은 250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사는 다문화 사회이며, 수출이 주요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0% 이상이다. 이런 한국이 아직도 인종차별적인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기까지 하다.
 
어쩌면 정부도 이런 현상에 동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뉴스에 따르면 법무부 직원들이 난민 심사 면접 조서에 난민신청자에게 불리한 내용을 허위로 기재한 것이 드러났다. 난민신청자들이 “박해를 피해서 왔다”고 진술하면 이를 정정해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조서에 적는 식이었다.
 
사진 라파엘

사진 라파엘

2015~2018년에 약 2,000명의 아랍어권 난민 신청자들이 있었고, 이 시기에 조서 허위 기재 사건이 벌어졌다. 아마도 이들은 공정한 난민 지위 부여 검토 기회를 받지 못했을 거다. 한국 정부는 국내법과 국제법상 난민을 보호할 법적 책임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참혹하다. 유럽연합 27개국에서 보호 지위가 부여된 난민신청자 비율은 38%이며, 한국의 보호 지위가 부여된 난민신청자 비율은 10%뿐이다.
 
난민 이슈는 복잡하고 다루기 힘든 주제다. 찬성이나 반대, 옳고 그름을 섣불리 논하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주제에는 더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고, 잘 모른다면 알 수 있을 때까지 논의를 거듭해야만 한다.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찬성과 반대는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의 일이다. 미지의 영역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인종차별과 증오로 쉽게 이어진다. 난민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우리 모두 어느 날 갑자기 난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단지 난민들은 우리보다 먼저 불행한 시간과 불행한 장소를 만났을 뿐이다. 수많은 전쟁 고아와 난민을 양산했던 70년 전 한국전쟁처럼.
 
*한국살이 10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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