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삼시 세끼를 잘 챙기는 건 시간과 관심을 많이 쏟아야 하는, 꽤 ‘럭셔리’한 일이었다. 재택근무를 본격적으로 하게 되면서 평소 외식으로 혹사시킨 나를 챙기기로 했다. 영양이 골고루 담긴 한 그릇 식사를 요리하다 보니 자주 손이 가는 그릇이 생겼다. 해인요의 누비 면기는 라면도 근사한 요리처럼 즐기고 싶게 만들어준다. 달걀 한 개나 김치도 단정하게 갖춰 먹게 만든달까. 음식을 담은 후 따뜻해진 그릇을 손 안에 품으면 느껴지는 누비의 촉감도, 나를 잘 챙기는 느낌이 드는 것도 좋다. 아름다운 그릇 한 점으로 보통의 일상이 갈수록 나아지고 있다.
양수현(‘뉴닉’ 디자이너)
「 콘란샵, 아키비스트 라이트하우스 스퀘어 매치박스
」 나무늘보처럼 늘어지거나 혹은 주변 공기가 솜처럼 무거울 때면 집 창문을 조금 열고 인센스를 피운다. 이땐 무조건 성냥이다. 인이 발화할 때 불이 확하고 붙는 모습, 매캐한 향이 코를 찌르는 게 느껴질 때면 꼭 엄마 몰래 나쁜 장난을 치는 것처럼 짜릿하다. 꽤 오랫동안 UN 팔각 성냥을 사용하다가 최근 이 성냥을 만났다. 1994년부터 성냥을 만들어온 곳이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고, 진짜 이유는 박스에 그려진 ‘STRIKE A LIGHT’ 문구를 보는 게 즐거워서. 따지고 보면 등대도 성냥도 불을 켜는 건 같으니까.
이혜민(〈디에디트〉 에디터)
몇 달째 술 약속을 미루고 있다. 그러다 보니 혼술의 연속. 마시고 싶은 만큼만 마셔도 되고, 불필요한 대화는 일절 없어서 좋다. 퇴근 후 이미 몇 번씩 본 ‘페이보릿’ 영화를 구간 반복 재생해 놓고, 냉동실에서 10분가량 살짝 얼린 맥주 한 병을 꺼낸다. 그리고 마지막은 이 귀여운 원숭이 오프너. 작지만 주물로 만들어 제법 기분 좋은 무게감이 있다. 기능은 덤이다. 금속 특유의 거친 질감을 살려 다듬은 제품으로, 물건이라기보다 공예품에 가깝다. 기분 좋은 나른함과 재충전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열쇠 같은 아이템.
최가홍(룸퍼멘트 대표)
홈 오피스를 사용하는 터라 모든 생활이 일의 연장선이 되기 쉽다. 그래서 나는 ‘향’으로 공간을 구분한다. 작업실과 화장실, 옷방, 침실마다 각기 다른 향을 입히면 그 공간에 필요한 마음가짐을 환기할 수 있다. 리디아 아트 앤 센트는 패키지와 향 모두 자연을 닮아 특히 아끼는 브랜드다. 보틀에 그려진 그림도 아름답다. 그중에서도 은방울꽃과 그린 리프, 화이트 우드로 조향한 ‘피스(Peace)’를 가장 좋아한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 긴 호흡으로 향을 음미하다 보면 이름처럼 마음에 ‘평화’가 깃드는 기분이다.
정기훈(펜디자인랩 인테리어 디자이너) 6년 전 핀란드 헬싱키로 취재 겸 여행을 떠났다가 우연히 아르텍 매장에 들어갔다. 알바 알토의 매력에 즉각적으로 빠져 그의 스튜디오와 집까지 방문했다. 거기서 이 아름다운 화병을 처음 만났다. 화창한 여름 날씨를 담은 창을 통해 들어온 빛이 화병에 닿아 반짝이던 그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 함께 돌아온 이후 지금까지 우리 집에서 가장 존재감 높은 오브제로 활약 중이다. 플로리스트 친구에게 부탁해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날씨와 계절에 어울리는 꽃을 받아 핀란드의 호수를 꼭 닮은 이 화병에 가득 꽂아둔다. 평화로운 주말을 시작하는 나만의 의식이다.
정재연(포토 프로듀서)
친한 지인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책갈피.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내 취향을 살펴 골라준 물건이라 특별히 아낀다. 숟가락을 구부려 만든 독특한 디자인도, 옴폭하게 패인 부분에 쓰여진 글귀 ‘Fell asleep here(여기에서 잠들었다)’의 위트도 좋아한다. 그 문장을 읽을 때마다 어떤 이야기들이 떠올라 살짝 들뜬 기분도 느껴진다. 책갈피로 쓰다가 어떤 날에는 책꽂이 위에 오브제처럼 툭 올려놓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떤 책에 시선이 가면 그걸 꺼내 읽기도 한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 책 읽기를 설레게 만들어주는 도구다.
박선아(작가, 젠틀 몬스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웨지우드, 재스퍼웨어 스몰 디시와 빈티지 문진
」 아름답고 쓸모없는 물건을 집 여기저기에 두고 감상하는 일, 그중에서도 물건에 담긴 얘기까지 수집하게 되는 빈티지 아이템을 좋아한다. 빈티지 접시를 수집하는 친구 덕에 2~3년 전부터 테이블웨어를 조금씩 모으고 있다. 그 자체로 장식미가 뛰어난 웨지우드 재스퍼웨어 시리즈는 선반에 툭 놓아도 존재감 있다. 나는 거기에 매일 즐겨 차는 진주 목걸이나 반지 등을 담아둔다. 원래의 쓰임새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 또한 그 물건의 의미와 쓸모를 존중하는 방식이라고 여긴다.
이은진(스타일리스트)
책도, TV도, 유튜브도 금세 밋밋해져 버릴 땐 아예 모든 전자기기를 끄고 고도주 한 잔을 천천히 마신다. 좀 더 추워지기 전, ‘온더록스’가 가장 맛있을 계절인 지금은 위스키와 진이다. 마음에 드는 걸 골라 얼음 위에 붓고 천천히 마신다. 주먹만큼 크고 단단한 얼음이 이 한 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 늘 괜찮은 얼음 틀에 집착하는 편이다. ‘Eat & Drink, Better.’라는 슬로건 아래 세련된 미식생활의 도구를 만드는 W&P 디자인의 대왕 사각 얼음 틀은 최근에 ‘직구’한 것. 색감도 색감이지만 살짝만 건드려도 얼음이 쏙 빠져 더 마음에 든다.
손기은(푸드 칼럼니스트, 바 ‘라꾸쁘’ 대표)